조경태 기획재정위원장(자유한국당)이 2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의원들의 전자담배에 대한 개별소비세 신설문제에 관한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흡연이 질병이라고 하면서 왜 담배를 파나? 이 기회에 담배 판매를 금지하는 것을 적극 알아봐 달라.”
28일 오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 사회를 보던 조경태(자유한국당) 기재위원장이 “정부가 국민건강 운운하면서 세금을 올리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둥 돌출 발언을 쏟아냈다. “기재위가 악덕 담배재벌에 놀아난 거 같아 참 걱정스럽다”며 외국산 전자담배에 낮은 세율이 매겨진 과정에 대한 감사원 감사청구가 필요하다(이종구 바른정당 의원)는 지적이 나오자 대뜸 “케이티앤지(KT&G)를 포함해서 왜 (담배 판매를) 독점하는지도 보자”며 ‘물타기성’ 발언을 한 것이다.
지난 22일 기재위 조세소위원회는 다국적 담배회사인 필립모리스와 비에티(BAT)코리아가 각각 판매하는 궐련형 전자담배 ‘아이코스’와 ‘글로’ 한 갑(20개비)당 일반 담배와 동일한 개별소비세 594원을 부과하는 개별소비세법 개정안 대안을 의결해 기재위 전체회의로 넘겼다. 현재 궐련형 전자담배에는 파이프담배 개별소비세인 126원이 ‘임시과세’되고 있는데 이를 일반 담배 수준으로 올리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각 상임위별로 여야의 전면전이 예고되는 상황에서 민감한 담뱃세 부과에 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이 ‘일치단결’한 흔치 않은 법안인 셈이다.
이는 “증세가 아닌 과세공백을 피하기 위한 정당한 과세 근거 마련”이라는 여야 기재위원들의 공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일반 담배 한 갑(4500원)에 매기는 세금·부담금은 3323원인데, 액상형 전자담배와 달리 일반 담배처럼 담뱃잎을 사용하는 궐련형 전자담배 한 갑(4300원)에는 불과 1740원의 세금·부담금이 붙는다. 개정안을 발의한 김광림 자유한국당 의원은 “일반 담배의 차익은 1177원에 불과한 반면 다국적 담배회사는 한 갑 당 2560원의 차익을 가져간다. 이 때문에 전자담배 시장점유율이 1%포인트만 올라가도 세금 손실이 연간 500억원에 달한다”는 추정치를 내놨다. 박남춘(민주당)·박인숙(바른정당) 의원도 유사한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그러나 조 위원장은 지난 23일 전체회의에서 “심도 있는 논의가 부족하다”며 법안 처리를 미루더니, 28일 또다시 의사봉 두드리기를 거부한 것이다.
조 위원장은 “국민 부담과 직결되는 간접세를 올리는 증세”, ”유해성 조사 뒤 세율 확정”을 주장하고 있고, 일부 경제지들도 2015년 박근혜 정부의 담뱃값 인상처럼 “밀실 꼼수 증세”라며 거들고 있다. 해당 담배회사들도 가격 인상이나 투자 철회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이날 전체회의에서 조 위원장 외에도 민주당 김종민, 자유한국당 심재철·박명재 의원이 “젊은층이 선호하는 전자담배의 소비자가격 상승 우려”, “유해성의 높고 낮음에 따른 세율 조정” 등을 주장했다. 특히 조 위원장은 “외국은 일반 담배 대비 40% 안팎의 세율을 적용하는데 우리나라만 100% 동일 세율”이라며 외국 사례를 거듭 강조했다.
궐련형 전자담배. 액상 니코틴 등을 사용하는 기존 전자담배와 달리, 담뱃잎으로 만든 고체형 스틱(막대)을 충전식 전자장치에 꽂아 전기로 가열하는 방식의 전자담배다. 연합뉴스
그러나 여야 조세소위 기재위원들은 지난 6월 첫 출시된 뒤 불과 석 달 만에 2000만갑(아이코스 기준)이 팔리는 동안에도 개별소비세가 제대로 부과되지 않는 과세공백을 강조했다. “과세근거를 마련하자는 게 어떻게 증세냐”는 것이다. 국민의당 김성식 의원은 “개별소비세만 조세 사각지대에 있다. 다국적 담배회사만 앉아서 돈을 버는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 박광온 의원은 필립모리스가 기획재정부에 제출한 자료를 근거로 “담배회사 영업전략 때문에 세율을 올린다고 담뱃값이 그만큼 오를 것이라는 우려는 성급하다”고 지적했다. 실제 아이코스에 가장 높은 57%의 세율을 부과하는 러시아의 경우 일반담배(155루불)와 아이코스(150루불) 가격에 차이가 거의 없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도 “증세는 전혀 아니다. 일반 담배도 유해도에 따라 세율에 차등을 두지 않는다”며 조속한 법안 처리를 강조했다.
그러나 조 위원장은 이날 오전 법안 처리 요청을 묵살하고 일방적으로 정회를 선포했다. 오후 늦게 조 위원장과 민주당, 자유한국당 등은 세율 75%선인 ‘한갑당 개별소비세 450원’ 수정안을 제시했지만, 이종구 의원이 반대하며 이날 법안 처리는 무산됐다. 이 의원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수정안의 경우 1억갑만 팔아도 150억원이 외국 담배회사로 넘어가게 된다. 이런 수정안에 찬성한 여당도 비판받아야 한다”고 했다.
김남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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