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고위 공직자들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26일부터 다시 시작됩니다. 26일 한승희 국세청장 후보자, 28일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자, 29일 김상곤 교육부 장관 후보자와 조명균 통일부 장관 후보자, 30일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7월3일 김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일정이 확정됐습니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28일, 유영민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는 7월4일,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는 7월5일로 잠정 합의된 상태입니다. 아직 발표하지 않은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도 7월에 열릴 것입니다.
김상곤 교육부장관 후보자.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28일 미국에 갔다가 7월2일 돌아옵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일할 고위 공직자들에 대한 국회 청문회 일정이 문재인 대통령 미국 방문 앞뒤로 빼곡히 잡혀 있는 모양새입니다.
인사청문회가 진행되는 동안 텔레비전 시청률은 많이 올라갈 것입니다. 청문회에 나서는 후보자들은 힘들겠지만, 청문회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후보자가 고위 공직을 맡을 수 있는 도덕성과 인품, 정책 역량을 갖춘 사람인지 흥미롭게 살펴볼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고위 공직자 인사청문회 제도는 김대중 정부 때인 2000년 6월 처음 도입됐습니다. 헌법에 국회의 임명동의를 받게 되어 있는 국무총리, 대법원장, 감사원장, 헌법재판소장, 대법관(13명), 그리고 국회에서 선출하는 헌법재판관(3명)과 중앙선거관리위원(3명) 등 모두 23명을 대상으로 인사청문회를 실시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에 따라 이한동 국무총리 후보자를 시작으로 국회 인사청문회가 차례차례 열렸습니다.
그 뒤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 시절인 2003년 2월 국가정보원장, 국세청장, 검찰총장, 경찰청장 등 이른바 4대 권력기관장이 인사청문회 대상자로 추가됐습니다. 또 2005년 7월에는 국무위원 모두(현재 17명)와 대통령 임명 헌법재판관 2명, 대법원장 지명 헌법재판관 3명, 그리고 대통령 임명 중앙선관위원 3명, 대법원장 지명 중앙선관위원 3명이 추가됐습니다. 이후에도 합동참모의장, 방송통신위원장, 공정거래위원장, 금융위원장, 국가인권위원장, 한국은행 총재, 특별감찰관, 한국방송공사 사장 등이 차례로 인사청문회 대상에 추가됐습니다. 현재 국회가 인사청문회를 하는 고위 공직자는 모두 63명입니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지난달 27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는 동안 증인으로 출석한 광주 518 당시 시민군 버스를 운전했던 배용주씨가 이를 듣고 있다. 당시 김 후보자는 군 법무관 신분으로 배씨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인사청문회 결과는 공직 후보자 임명이나 지명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국회 동의가 필요한 국무총리 등은 어차피 투표로 가부가 결정됩니다.
국회 동의가 필요하지 않은 장관 후보자, 4대 권력기관장 등의 경우에는 인사청문 경과 보고서를 국회의장이 대통령·대법원장 등 임명권자나 지명권자에게 송부하도록 하고 있을 뿐입니다. 인사청문 경과 보고서에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규정은 없습니다. 여야의 의견이 엇갈려 인사청문 경과 보고서를 채택하지 못해 국회의장이 보고서를 송부하지 못하면 임명권자나 지명권자가 후보자를 임명 또는 지명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공직 후보자 낙마는 인사청문회 때문일까
청문회 없던 김영삼 정부 장관 낙마 사태
검증소홀 청와대 역량 부족이 근본 원인
26일 청문회 재개…자유한국당 기세등등
김상곤·송영무·조대엽 후보자 낙마 별러
문재인 대통령 정치적 역량 시험대 올라
국정수행 지지도 높아 무난한 돌파 예상
6월14일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이 “인사청문회는 결정적 하자가 없다면 대통령이 인사권을 행사하는 데 참고로 하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한 것이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런데 박수현 대변인이 사용한 ‘참고’라는 단어가 대통령이 국회를 무시하는 것으로 해석되면서 정치적 논란이 일었습니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인사청문회는 국회법에 따라 진행되고 또 정당의 의견과 절차의 틀에서 전달되고 임명권자도 이를 존중하는 풍토가 바람직하다. 국회 인사청문회는 참고용이 돼선 절대 안 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매우 온당한 의견입니다.
그런데 실상은 좀 다릅니다. 국회에서 야당의 반대로 인사청문 경과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았는데도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하는 사례가 꽤 많았습니다. 그런 사례가 이명박 정부에서는 16.5%인 17건, 박근혜 정부에서는 17.4%인 15건이었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학계에서도 인사청문회 제도에 대한 논의가 한창입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국가리더십연구센터와 한국행정연구소가 6월12일 ‘대통령 리더십과 인사청문회’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습니다. 임현정 국가리더십연구센터 연구원이 발제했고 6명이 토론자로 참여했습니다. 임현정 연구원은 인사청문회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과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 해외 사례 등을 소개한 뒤 다음과 같은 결론을 제시했습니다.
“국회 인사청문 대상은 제도 도입 이래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확대는 제도의 순기능 및 역기능에 대한 과학적 접근에 기인한 것이라기보다는 진영 논리 내지는 소속 집단의 이해에 기인한 것이었다고 판단된다. 제도의 성과에 대한 증거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청문 대상 범위를 확장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커 보인다. 더욱이 외국의 사례를 참고할 때 대통령의 참모격인 장관의 경우에는 인사청문을 수행하지 않거나, 또는 하더라도 형식적으로 운용하는 데 그친다는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인준을 거부하는 사례나 자진 철회하는 사례도 우리의 경우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반면 외국의 경우 운영의 독립성을 위해 특정한 임기를 보장하는 기관의 장이나 법관 후보자에 대해서는 훨씬 강도 높은 검증이 이뤄지고 있다. 이와 같이 인사청문 대상의 범위를 설정함에 있어 ‘기관의 독립성’을 중요한 기준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즉 사법부 및 독립적으로 운영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공공기관(임기를 법으로 보장하는)의 경우 청문 대상 범위를 보다 확대할 필요가 있으며, 대통령이 임명하는 정무직 인사의 경우 외국의 사례와 같이 의회 청문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쉽게 얘기하면 정무직으로 대통령의 참모인 장관은 인사청문회 대상에서 제외하고, 법관이나 임기를 보장하는 독립기관장은 인사청문회 대상에 포함하자는 제안입니다. 토론자들은 임현정 박사의 발제에 대해 대체로 공감하면서도 장관을 인사청문회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거나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견해를 보였습니다.
장관들을 인사청문회 대상에서 제외하자는 축소론의 근거는 헌법상 권력분립 원칙에 위배되며 행정 공백과 국정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사생활 등 부정적 요소를 부각시키는 운영 방식 때문에 청문회 이후 입각하는 장관들의 리더십이 훼손되는 등 청문회 제도의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더 크다는 것입니다. 일리가 있는 지적입니다.
그러나 인사청문회 제도의 역기능 가운데 상당 부분은 사실은 인사청문회 제도가 아니라 다른 데 원인이 있다고 봐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장관들이 도덕성 문제에 휘말려 낙마하기 시작한 것은 1993년 김영삼 정부 출범 때부터입니다. 박양실 보사부 장관, 허재영 건설부 장관, 김상철 서울시장이 임명된 직후 부정축재 시비에 휘말려 물러났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이 전격 실시한 고위 공직자 재산 공개로 장관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들의 재산이 낱낱이 드러나면서 여론이 들끓었기 때문입니다.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되기 7년 전의 일입니다.
그 이후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낙마한 장관 후보자들도 대부분 인사청문회가 아니라 언론의 검증에 의해 부도덕성이 드러나면서 여론에 밀려 사퇴했습니다. 장관 후보자들의 사생활 등 부정적 요소가 부각되는 것은 인사청문회 제도 때문이 아니라 대부분 사생활에 대한 1차 검증을 소홀히 한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의 도덕적 해이와 능력 부족 때문이라는 얘깁니다.
최근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리기도 전에 언론의 의혹 제기로 낙마한 사례입니다. 도덕성 시비에 휘말려 하차한 김기정 전 국가안보실 2차장이나 사퇴 압력을 받고 있는 탁현민 행정관은 아예 인사청문회 대상도 아닙니다.
이처럼 인사청문회 축소론은 공직자 임명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를 엉뚱하게 국회와 인사청문회라는 제도 탓으로 돌리는 오류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이 공직 후보자의 정책수행 역량이 아니라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논문표절, 탈세 등 가장 기본적인 자질을 따지는 장면이 매번 계속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학계에서는 도덕성과 관련된 검증은 예비심사에서 철저하게 하고 청문회에서는 공직 적합성을 중심으로 검증할 수 있도록 청문회 절차를 이원화하자는 주장이 활발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예비심사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전제되어야 성립하는 대안입니다.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당장 26일부터 다시 시작되는 문재인 정부 고위 공직자 인사청문회는 어떻게 진행될까요? 야당에서는 일단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 송영무 국방부 장관 후보자,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를 낙마시키겠다고 벼르고 있습니다. 표적은 더 늘어날 것입니다. 야당 중에서도 자유한국당의 기세가 가장 등등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24일 오후 전북 무주 태권도원에서 열린 WTF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개막식을 마친 뒤 북한 시범단원과 악수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그렇다면 이제부터 문재인 정부 장관 후보자들이 무더기로 낙마할까요?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이유는 여론 때문입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6월19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여야가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채택에 합의하지 못한 후보자에 대해 ‘국정 정상화를 위해 임명을 강행해도 된다’는 의견이 61.4%로, ‘여야 협치를 위해 지명을 철회해야 한다’는 의견(31.3%)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임명 강행에 대해서도 ‘잘했다’ 65.4%, ‘잘못했다’ 30.0%였습니다.
압도적 여론의 배경은 물론 문재인 대통령의 높은 인기입니다. 한국갤럽의 6월 20일~22일 문재인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는 ‘잘하고 있다’가 79%였습니다. 정당 지지도는 더불어민주당 50%, 자유한국당 9%, 국민의당·바른정당·정의당 7%였습니다.(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고)
이런 민심 지형에서는 자유한국당이 문재인 정부 고위 공직자에 대해 아무리 반대를 외쳐도 힘이 실리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따라서 문재인 대통령이 지명한 고위 공직 후보자들은 국회 인사청문회 결과와 관계없이 대부분 그대로 임명될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도덕적 결함이 명백한 후보자나 청문회에서 업무수행 능력이 형편없는 것으로 드러난 후보자까지 문재인 대통령이 끌어안고 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자칫하면 한두 사람 때문에 집권 초기의 개혁을 위한 동력이 훼손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야흐로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적 역량이 시험대에 오르고 있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수없이 많은 경험을 쌓은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어지간해서는 실수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