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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가 자유한국당으로…무언가 빠졌다

등록 2017-02-14 14:58수정 2017-02-14 15:41

정치BAR_보수정당 당명 변경의 역사
새누리당이 13일 이름을 자유한국당으로 바꿨다.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이름 바꾼 지 딱 5년 만이다. 민주당 계열 정통야당이 분열과 통합을 거듭하며 이름을 자주 바뀌었던 것과 달리 영남을 지역 기반으로 하는 보수정당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생명력을 유지했다. 그렇지만 정치적 격변기에 보수정당은 당명 교체로 쇄신 이미지를 풍기고 위기를 탈출하려고 애썼다. 민자당에서 자유한국당까지 영남 보수정당의 당명 변천사를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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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국의 결의’로 탄생한 민주자유당 (1990.1~1995.12)

1990년 1월22일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총재가 청와대에서 3당 합당을 선언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1990년 1월22일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총재가 청와대에서 3당 합당을 선언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1990년 1월22일, 민주정의당 총재였던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총재가 청와대에 모였다. 그리고 ‘새역사 창조를 위한 공동선언문’을 읽어내려갔다. “이제 우리는 당파적 이해로 분열·대결하는 정치에 종지부를 찍기로 했다”는 ‘구국의 결의’라고 했다. 3당 합당이었다. 2년 전 총선에서 집권당인 민정당은 과반의석인 150석에 한참 못미치는 125석을 얻는 데 그쳤다. 김영삼이 이끄는 통일민주당(59석)은 김대중의 평화민주당(70석)에 제1야당 자리를 내줬다. 87년 분열로 민주정권 수립에 실패하고 DJ와 불구대천의 원수가 된 YS는 다음 대선에서 야권 후보로 정권을 잡기가 더 어려워졌다. 박정희 정권의 2인자였던 김종필 총재는 내각제 개헌을 고리로 한 집권을 꿈꿨다. 각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이들의 동상이몽 결합은 영남과 충청이 호남을 고립시키는 DJ 포위·소외 전략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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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 JP 내치고 창당한 신한국당 (1995.12~1997.11)

1996년 2월 신한국당 창당 전당대회 때 입당한 이회창(오른쪽 끝), 박찬종(왼쪽 끝)씨가 김영삼 대통령, 김윤환 대표의 손을 잡고 당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1996년 2월 신한국당 창당 전당대회 때 입당한 이회창(오른쪽 끝), 박찬종(왼쪽 끝)씨가 김영삼 대통령, 김윤환 대표의 손을 잡고 당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민자당 대선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돼 문민정부를 표방한 김영삼은 당에 대한 장악력을 높이려 했다. 유신 잔당인 공화계의 수장 김종필과의 갈등은 불가피했다. 김영삼은 세계화라는 국정과제를 구호로 내걸고 개혁을 위해 환골탈태가 필요하다며 당 대표였던 김종필에게 2선후퇴를 종용했다. 결국 김종필은 1995년 3월 당을 뛰쳐나가 충청 기반의 지역정당인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했다. 그해 6월 열린 첫 지방선거는 여당의 참패였다. 자민련은 대전·충남·충북·대구·강원 지역을 석권했다. 지방선거 참패 뒤 김영삼은 5공화국 색채가 강한 민자당 리모델링 작업을 더욱 서둘렀고 1995년 12월, 신한국당을 창당했다. ‘대쪽 총리’ 이회창, ‘깨끗함의 대명사’ 박찬종, ‘모래시계 검사’ 홍준표, 진보정당 민중당 출신 이재오·김문수·이우재 등을 영입하며 개혁성을 강화했다. 신한국당은 1996년 4월 총선에서 과반의석을 얻지는 못했지만 139석을 얻으며 선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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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 내쫓은 이회창의 한나라당 (1997.11~2012.2)

1997년 11월21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린 신한국당과 민주당의 합당 전당대회에서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후보와 조순 총재가 손을 맞잡고 들어 단합을 과시하고 있다. 이날 신한국당과 민주당의 합당으로 한나라당이 출범했다. 장철규 기자 chang@hani.co.kr
1997년 11월21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린 신한국당과 민주당의 합당 전당대회에서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후보와 조순 총재가 손을 맞잡고 들어 단합을 과시하고 있다. 이날 신한국당과 민주당의 합당으로 한나라당이 출범했다. 장철규 기자 chang@hani.co.kr

김영삼 대통령의 인기는 정권 말기, 아들 김현철씨와 측근들의 비리, 외환위기 등으로 급전직하했다. 대통령 자리를 놓고 김대중과 혈투를 벌이던 신한국당 대통령 후보 이회창은 ‘인기 없는 남자’ YS에게 신한국당 탈당을 요구했다. 그리고 김대중이 정계복귀를 하며 창당한 새천년국민회의에 합류를 거부한 ‘미니 민주당’과 합당을 추진한다. 이회창 신한국당 후보와 조순 민주당 후보가 후보 단일화에 합의한 1997년 11월7일, 김영삼 대통령은 신한국당을 탈당했다. 그리고 신한국당과 민주당은 11월21일 합당했고 새롭게 꾸린 정당의 이름이 한나라당이다. 김영삼을 제거한 이회창의 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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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를 위한, 박근혜에 의한, 박근혜의 새누리당 (2012.2~2017.2)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이 2012년 3월2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제19대 총선 중앙선대위 발대식 행사 전 빨간색 점퍼를 입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이 2012년 3월2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제19대 총선 중앙선대위 발대식 행사 전 빨간색 점퍼를 입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이회창은 특유의 카리스마로 한나라당에서 ‘제왕적 총재’의 지위를 누렸으나 1997년, 2002년 대선에서 승리하지 못했다. 한나라당의 최대 위기는 2번의 대선 패배 뒤에 닥쳤다. 야당이었지만 원내 1당이었던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의 선거법 관련 발언 등을 문제삼아 대통령 탄핵소추에 나선 것이다. 국민들은 대통령을 끌어내리려는 의회의 행태에 촛불을 들어 항의했고 그해 4월 총선에서의 심판을 별렀다. 한나라당의 궤멸적 패배가 눈에 보이던 누란의 위기에 재선의 박근혜 의원이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1998년 대구 보궐선거를 통해 정계에 입문한 그가 박정희의 딸이라는 후광을 업고 거대야당의 대표가 된 것이다. 그는 천막당사로 옮겨가 ‘한나라당은 차떼기 정당’이라는 오명을 벗으려 했고 대중적 인기를 바탕으로 전국을 누비며 총선을 진두지휘했다. 결국 한나라당은 121석을 얻어 부활의 기회를 얻게 됐고 박근혜는 당의 중심으로 우뚝 선다. 2007년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패했지만 2012년은 ‘박근혜의 해’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정권 말기 측근비리로 휘청거렸고 한나라당은 중앙선관위 디도스 공격과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사건으로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2011년 12월 당의 추대로 비상대책위원장이 된 박근혜는 당의 이름을 새누리당으로 바꿨다. 이명박 대통령은 당에 남았지만 흔적이 사라졌고 당의 주인은 박근혜와 그 추종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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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청산 없이 이름만 바꾼 자유한국당 (2017.2~?)

인명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과 정우택 원내대표 등이 1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타임스퀘어에서 열린 전국위원회에서 새 당명을 통과시킨 뒤 박수를 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인명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과 정우택 원내대표 등이 1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타임스퀘어에서 열린 전국위원회에서 새 당명을 통과시킨 뒤 박수를 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박근혜의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국정농단이 만천하에 알려지자 새누리당 의원 30여명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를 주장했고 당을 떠났다. 1995년 JP가 민자당을 뛰쳐나간 이후 20여년 만의 대규모 분화였다. 새누리당 내부에선 박 대통령 제명과 친박 축출 등이 논의됐으나 비박계가 빠진 새누리당은 쇄신 동력을 급속도로 상실했다. 그리고 2017년 2월13일 당 이름을 자유한국당으로 바꿨다. 전례와 달리 인기 없는 대통령을 내치지도 못했고 국정파탄 세력을 제거하지도 못했다. 인적청산 없는, 알맹이가 빠진 당명 변경인 셈이다. 5년 동안 쌓아온 새누리당의 인지도를 넘어서, 자유한국당이 얼마나 지지율 제고 효과를 낼지는 미지수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약칭을 한국당으로 불러달라’는 그들의 요청에 “아메리카당, 닛폰당, 영국당이 있나. ‘최순실 게이트’를 감추기 위해 국호를 동원하는 게 정치적으로 온당한 일이냐”며 “저는 자유당으로 부르겠다”고 말했다. 자유당은 수구 세력이 ‘국부’로 추앙하는 이승만의 정당이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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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보고있다 #51_명예도 이름도 사라질 새누리 ‘아스팔트 피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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