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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나타난 정유라가 펑펑 울며 하던 말은…

등록 2016-12-30 11:41수정 2016-12-30 13:05

정치BAR_언니가 보고 있다 46회_송년특집 눈으로 읽는 팟캐스트

2016년의 마지막 ‘언니가 보고 있다’ 초대손님은 비선실세 최순실의 존재를 맨 처음 세상에 알린 한겨레 미르TF의 김의겸 선임기자, 방준호 기자였습니다. 4개월 동안 박근혜·최순실 일당의 국기문란 행태를 파헤치고 이제 ‘시즌2’를 준비하는 그들을 서울 동교동 미디어카페후 스튜디오에서 만나 50분간 얘기를 나눴습니다.

유쾌하게 대화를 마치고 녹음파일을 USB에 고이 모셔놓고 편집자에게 넘기기 전에 음성을 들어봤는데 아무런 소리가 들지 않았습니다. ‘사고’였습니다. 이게 대체 왜 이러지? 혹시 국정원의 공작? 섬뜩한 기운이 머리를 스쳐갔지만 사고의 원인은 이내 밝혀졌습니다. 최근 스튜디오 콘솔의 설정이 변경됐는데 ‘언니가 보고 있다’ 피디이자 엔지니어인 제가 음성녹음을 위해 꼭 필요한 버튼 하나를 누르지 않은 거였습니다. 아, 문과생으로서 팟캐스트 파일을 옮길 때마다 불안불안했는데 2016년 마지막 주에 일은 터지고야 말았습니다. 출연자들에게 사죄의 톡을 날리고 망연자실하며 지하철을 탔습니다. 꿀밤라떼로 허기를 달랜 속이 쓰려왔습니다. 그리고 결심했습니다. ‘그래, 우리의 노동을 이렇게 허망하게 날릴 수야 없지. 기록을 남기자.’

그래서 ‘언니가 보고 있다’ 46회는 송년특집 ‘읽는 팟캐스트’입니다. 미르TF 기자들의 결산 후일담을 기사로 담았습니다. 그들의 육성을 들을 순 없지만 진실을 향한 열정만은 오롯이 전달되길 기원합니다. ‘언니가 보고 있다’, 새해에는 사고 없는 방송, 결방 없는 팟캐스트로 성실하게 찾아뵙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언니가 보고 있다’ 46회에 출연한 미르TF의 김의겸 선임기자와 방준호 기자. 사진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언니가 보고 있다’ 46회에 출연한 미르TF의 김의겸 선임기자와 방준호 기자. 사진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최순실의 흔적을 찾기 위해 9월 초에 팀이 구성됐으니 약 4개월입니다. 팀을 꾸린 김의겸 선임기자는 초기만 해도 깊게 잠을 못자고 중간에 깨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12월9일 이후 그동안 못 잤던 꿀잠을 “마치 신생아처럼” 몰아서 자고 있다고 하네요. 미르TF의 막내로서 최순실의 정체와 정유라 이대 특혜를 낱낱이 밝히며 활약한 방준호 기자. 10월20일 ‘언니가 보고 있다’ 38회(도망자 최순실, 턱밑까지 추격했다)에 출연해 “정의로운 이대 벗들의 도움으로 많은 보도를 할 수 있었다”며 깜찍한 감사 인사를 한 적이 있는데요. 방 기자의 깜찍 워딩에 이화여대 내부 게시판에서는 “방준호 기자 재밌다능”이라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고 합니다.(이대 나온 방 기자의 동기가 전해준 얘기랍니다) 이대생들에게서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방준호 기자는 아직 ‘혼자’입니다. (그래도 안 생겨요) 취재 기간 동안 방 기자의 꿈에는 최순실 게이트 관련 인물들이 많이 등장했다고 합니다. 꿈에 나온 정유라씨는 펑펑 울면서 많은 얘기를 했는데 안타깝게도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고 하네요.

김의겸 선임기자는 최씨가 K스포츠재단 설립을 주도했다는 특종 보도를 한 직후인 9월22일 ‘언니가 보고 있다’ 34회(‘친구 없는 사람’의 ‘동네 친구’, 최순실 편)에 출연해 “최순실은 교양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김 기자는 “최순실이 가지고 있는 능력, 역량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었구나, 하는 걸 사후에 뒤늦게 알게 됐다”고 말합니다. 최씨가 “교양은 없을지 모르지만 동물적이고 감각적으로 사람을 부릴 줄 알고 논리적으로 들어가기보단 직관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사람을 휘어잡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거죠. 소녀적 감성으로 온실 속에서 공주로 살아온 박근혜 대통령과 비교했을 때 최씨는 “야전에서” 비선권력을 쟁취할 수 있었다고 그는 분석했습니다.

‘세월호 7시간’의 비밀에 대해 김의겸 선임기자는 박 대통령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퍼져있었거나 △전날 어떤 시술을 하고 후유증으로 아침을 맞이했을 상황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태의 심각성이 알려진 이후에도 올림머리를 하고 있었다는 행태를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갓난아이가 방치돼 죽었을 때 아이엄마가 게임에 빠져서 아이를 돌보지 않았다면 오히려 설명이 된다. 그러나 아이가 배가 고프다고 죽도록 우는데도 아무 생각 없이 가만히 있어 아이를 죽게 했다면 그건 소스라치게 놀랄 일이다. 형법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상황을 처벌하는 부작위범이라는 게 있다. 공감능력이 전혀 없었던 박근혜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스튜디오 바깥에서 모니터링 중인 엔지니어 김태규 기자의 뒷모습. 녹음이 불발되리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사진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스튜디오 바깥에서 모니터링 중인 엔지니어 김태규 기자의 뒷모습. 녹음이 불발되리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사진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미르TF(김의겸·류이근·송호진·하어영·방준호)는 최근 고려대 언론인교우회가 수여하는 ‘장한 고대언론인상’을 수상했습니다. 수상을 계기로 이들이 모두 같은 학교 출신이라는 점이 비로소 알려졌는데요. 김남일 기자는 “고대 출신 이명박 대통령이 망친 나라를 그 대학 출신들이 이렇게라도 회복시키려고 한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미르TF 팀장인 김의겸 선임기자는 “편집국장에게 정치·경제·사회부에서 인원을 빼달라고 해서 팀을 꾸렸는데 최근까지 같은 대학을 나왔는지도 몰랐다”며 “거기 대학 나온 사람들을 그렇게라도 평가해주니 고맙다”고 했습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열리고 특검의 수사도 점차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박영수 특검이 택시를 탔는데 박 특검을 알아본 기사님이 택시비를 안 받을 정도로 국민적 성원도 뜨거운데요. 특검취재팀으로 파견 나간 김남일 기자는 한국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는 박근혜 대통령 처벌보다 국민들의 노후 자금을 경영권 승계에 악용했다는 의혹의 중심에 서있는 삼성을 처벌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2008년 삼성비자금 특검 수사 때도 이건희 일가의 불법을 옹호하던 수구기득권의 동맹은 굳건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외국 투기자본 엘리엇의 공세에 맞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불가피했다는 논리가 수구언론을 중심으로 스멀스멀 유포되고 있습니다. 2017년에는 인간 박근혜가 수면 위로 올린 온갖 해상쓰레기가 이번 기회에 깨끗하게 청소될 수 있을까요. ‘언니가 보고 있다’ 진행자인 이유주현 정치 데스크는 ‘적폐 청산’에 적극 동의하면서도 ‘조기 대선’을 준비해야 하는 정치팀의 고단함을 떠올리며 김남일 기자의 조속한 원대 복귀를 희망했습니다.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어 눈으로 읽을 수밖에 없는 ‘언니가 보고 있다’ 46회는 여기까지입니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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