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커뮤니티 ‘주식갤러리’가 찾아낸 동영상
‘유출’된 전화번호로 청문회 박영선 의원에 전달
김 전 실장 “최순실 이름 안다…죄송” 받아내
“존경하는 박영선 의원님. 위증을 하고 있는 김기춘의 증거 영상입니다.”
최순실 국정농단 2차 청문회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던 7일 밤 9시4분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휴대전화에 이런 내용의 카톡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유튜브 영상 링크와 함께였다.
박 의원은 바로 “내용을 문자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답장을 보냈고 여러 차례 메시지가 오가기 시작했다. “최근 보도가 나오기 전에는 최순실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딱 잡아떼던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코너로 몰 수 있었던 협업은 이렇게 시작됐다.
박 의원의 보좌관은 제보자가 보내온 영상 분석을 시작했다. 2007년에 열린 한나라당 대선후보 검증 청문회 영상이었다. 김 전 실장은 박근혜 캠프의 법률자문위원장 자격으로 박 후보의 코 앞에 앉아있었고 박 후보와 최태민씨의 약혼설, 최순실씨와 그의 재산 취득 과정 등이 거론되고 있었다. 박 의원은 밤 10시께 “이래도 최순실을 모른다는 것인가”라고 추궁했고 김 전 실장은 “저도 이제 나이가 들어서…이제 보니까 최순실이라는 이름을 못 들었다고는 말할 수 없겠다.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철벽 태세를 유지하던 김 전 실장을 무너뜨린 이 동영상 제보자는 박 의원과는 일면식이 없는 사람이다. 박 의원의 보좌관은 “최근 탄핵 국면에서 국회의원들의 휴대전화 번호가 알려졌는데 그걸 보고 연락을 해오신 것 같다”고 말했다. 국회의원들의 휴대전화 번호가 ‘유출’되면서 국회의원과 국민 간의 핫라인이 형성된 셈이다. 제보자는 박 의원뿐만 아니라 손혜원·안민석 의원에게도 거의 동시에 동영상 링크를 보냈고 다른 의원들도 분석 작업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영상은 인터넷 커뮤니티인 디시인사이드의 주식 정보 게시판 ‘주식갤러리’ 게시판에서 집단지성으로 발굴됐다고 한다. ‘주식갤러리’에서는 최근 주식 이야기보다 최순실 게이트 이야기가 더 많이 올라왔으며 결국 2차 청문회에서는 모르쇠와 거짓말로 일관하던 김 전 실장을 압박할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내 국회의원에게 직접 제보하는 개가를 올린 것이다. 8일에는 급기야 이 게시판의 이름이 ‘주식갤러리’에서 ‘명탐정갤러리’로 바뀌면서 게시판 정체성의 변화로까지 이어졌다.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국면에서 활약 중인 여러 이슈에 대한 정보 추적에 능해 “주식 빼고는 다 잘한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오고 있다.
박영선 의원도 일면식 없는 국민의 제보를 접하고 3분만에 바로 응대하면서 협업의 속도를 더욱 높일 수 있었다. 신속한 신고를 받고 바로 출동해 거짓말을 일삼던 김 전 실장을 현행범으로 체포한 셈이다. 박 의원은 8일 주식갤러리를 방문해 “여러분의 용기가 세상을 바꿉니다. 이젠 주식도 대박 나세요! 감사합니다”라는 글을 올리고 친필 메시지를 들고 있는 인증샷도 함께 첨부했다.
이런 방식의 직접 접촉 사례는 점점 늘고 있다. 지난 6일 박영선 의원은 이재용 삼성 부회장을 상대로 “모르는 게 많고, 부족한 게 많고, 죄송한 게 많은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을 하는 것 보다는, 전문경영인에게 경영권을 넘기는 것이 낫지 않느냐”는 ‘국민 의견’을 소개했다. 박 의원이 자신의 SNS를 통해 직접 받은 일반 국민의 메시지였다. 날카로운 이 지적에 이 부회장은 “저보다 훌륭한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지 경영권을 넘기겠다“는 답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박 의원의 보좌관은 “의원실에서 구글 독스 형식으로 청문회에서 할 질문도 수집했고 의원님이 직접 SNS 메신저로 받으신 것도 많다”며 “이번 국정농단 청문회는 국민들이 정말 많이 보고 의견도 많이 주시고 있다. 국민 청문회라고 할 만하다”고 말했다.
◎ “최순실 몰랐다”는 김기춘 거짓말 들통나는 동영상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