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윤상현·이정현·염동열·김진태 의원. 친박계인 이들은 모두 4·13 총선 과정에서 선거법을 위반한 혐의로 수사를 받았지만 지난 13일 모조리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검찰의 일괄 무혐의 처분 직후에 선관위는 염동열·김진태 의원 사건, 더불어민주당은 이정현 의원 사건의 재정신청서를 법원에 접수했다. 재정신청은 검찰의 불기소 처분이 합당했는지 법원이 다시 한 번 따져볼 수 있는 제도다. 법원이 검찰의 무혐의 처분을 ‘봐주기’라고 판단하면 직권으로 기소할 수 있으니 이들은 아직 긴장을 늦출 수 없다. 하지만 최경환·윤상현 의원은 재정신청마저 피할 수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이라 확실하게 빠져나갈 수 있었던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이정현·염동열·김진태는 선관위·더민주 고발 덕에 재정신청까지
선거법에서는 재정신청의 대상으로 정당의 중앙당과 선거관리위원회, 후보자가 직접 고발한 사건으로 제한하고 있다. “시민단체로부터 공약을 70% 이상 지켰다는 평가를 받았다”는 허위사실을 문자 메시지로 유포한 김진태 의원, 19억원 재산을 5억원으로 낮춰 신고한 염동열 의원은 애초에 선관위가 고발한 사건이었다. 자신이 발의한 국립보건의료대학병원 설치·운영법을 홍보하면서 야당의 비슷한 법안이 순천이 아닌 서울을 위한 법이라고 주장한 이정현 의원 사건은 더민주가 고발했기에 검찰의 무혐의 뒤 재정신청이라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김성회 전 의원을 협박한 최경환·윤상현 의원 사건의 고발인은 시민단체(참여연대와 인천평화복지연대)였고, 더민주 등 야당과 선관위는 손을 놓고 있었다. 안호영 더민주 법률위원장은 “애초에 당에서 고발을 했어야 했는데 고발을 안 해서 재정신청 자격을 얻지 못했다”고 말했다. 더민주 당직자는 “고발할지 말지도 검토가 안 됐다”고 말했다. 최경환·윤상현 두 의원이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측근인 만큼 검찰의 ‘봐주기’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대처를 했어야 했는데 야당은 이 사건을 접하고 그냥 흘려보낸 것이다.
선관위도 마찬가지다. 선관위 관계자는 “저희한테 녹취록을 가지고 제보를 했다면 조치를 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며 “시민단체에서 고발을 해서 수사를 받게 됐기 때문에 저희가 별도로 고발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런데 모든 고발 사건은 재정신청이 가능한 것 아니냐”고 반문해, 재정신청의 요건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형법상 피해자 본인이 직접 나서는 모든 고소 사건은 재정신청이 가능하지만 제3자가 나서는 고발 사건은 직권남용, 가혹행위 등 공무원의 일부 범죄에 한해서만 재정신청이 가능하다. 시민단체가 고발한 최경환·윤상현 의원의 선거법 위반 건은 애초에 검찰 단계만 잘 버티면 끝나는 일이었다.
경선 방해와 협박 혐의가 명백한 최경환·윤상현 의원의 발언은 다음과 같았다.
“○○ 지역은 당연히 보장하지. 경선하라고 해도 우리가 다 만들지. 친박 브랜드로. ‘친박이다. 대통령 사람이다’…”(윤상현)
“(다른 지역구로 옮기면 후보 될 수 있게) 우리가 그렇게 도와주겠다는 것이고. 감이 그렇게 떨어지면 정치를 어떻게 하나”(최경환)
서청원 의원 지역구인 경기 화성갑에서 비켜 특정 지역구로 옮기면 후보 자리를 보장하겠다는 얘기다. 경선후보자로 나선 사람에게 공·사의 직을 제공하거나 이를 약속한 것만으로도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이라는 선거법 230조 위반이다.
‘다른 지역구 후보 자리를 주겠다’는 약속을 못 믿겠다며 김성회 전 의원이 박근혜 대통령과 최경환 의원 등의 보장을 요구하자 윤상현 의원은 한 발 더 나아간다.
“까불면 안 된다니까… 형, 내가 별의별 것 다 가지고 있다니까, 형에 대해서. 아이 씨.”
지역구를 옮기지 않으면 뒷조사한 것을 공개하겠다는 태세다. 경선후보자(경선후보자가 되려는 사람까지 포함)를 협박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이라는 선거법 237조 위반이다.
최경환·윤상현에 야당·선관위 수수방관…검찰 노골적 ‘봐주기’에 속수무책
이들의 은밀한 통화 내용은 방송을 통해 생생한 육성으로 공개됐다.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부장 이성규)가 수사했지만 검찰은 황당한 논리로 친박 핵심들에겐 죄가 없다고 선언했다. 수사를 지휘한 이정회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는 “전화 파일을 전체 분석한 결과 피고발인들(최경환·윤상현)은 김성회와 친분이 있는 상태에서 새누리당 후보와 경쟁하지 않도록 조언하는 취지였다”며 “김성회 전 의원도 피고발인의 발언을 협박으로 느끼지 않았다고 진술했으므로 협박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 간부 출신의 한 변호사는 “거리에서 칼을 들고 난리를 치는데 어떤 담대한 사람이 ‘나는 협박으로 느끼지 않았다’고 하면 협박이 안 되는 건가”라며 “피해자의 심리는 협박 여부가 모호할 때 따지는 것이다. 협박이 명백한 사안을 저런 논리로 봐주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선거법 위반 혐의가 매우 농후한데도 친박 핵심인 최경환·윤상현 의원은 예상대로 법의 심판을 피할 수 있었다. 무능한 야당과 선관위는 법원에 사건기록을 가져갈 수 있는 재정신청 카드마저 쓸 수 없었고 검찰의 노골적인 봐주기를 방조한 셈이 됐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 정치BAR 페이스북 바로가기 ◎ 정치BAR 텔레그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