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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기로 캐내고 논리로 밝히고 황당함으로 튀다

등록 2016-10-12 05:01수정 2016-10-12 11:27

정치BAR_한겨레 기자들이 꼽은 ‘국감스타’
2016년 국정감사는 여러모로 특별하다. 4월 총선을 통해 야당에 과반 의석을 뺏긴 소수여당이 국정감사를 거부하는 진풍경을 연출했기 때문이다. 9월26일부터 시작된 국정감사는 파행을 겪은 뒤 10월4일에야 여당도 참여하는 온전한 모습이 됐다. 누구는 뒤늦게 정상화한 국정감사를 빛냈지만 누구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몰상식을 드러내기도 했다. 정치BAR에서는 현장기자들의 평가를 모아 진행 중인 2016년 국감 풍경을 소소하게 정리해봤다.

경륜과 노력이 낳은 성과

이번 국감 과정에서의 가장 큰 발굴은 미르 재단 모금의 강제성을 재확인해준 한국문예위원회 회의록이었다. 도종환 의원은 박병원 경영자총연합회 회장이 “정부가 대기업 발목 비틀고 있다”는 내용이 삭제된 문예위 회의록의 원본을 ‘다른 경로’로 찾아내 9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 국감에서 질의를 이어갔다. 도 의원은 원래 정부가 작성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는 소문의 진위를 지난해부터 1년 넘게 확인 중이었다. 이를 위해 입수한 문예위 회의록에서 ‘미르재단’이라는 핵심단어를 찾아낸 것이다. 물론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일타쌍피였다.

5일 국회 기획재정위의 기획재정부 국감에서는 경제학 박사 출신 거물 정치인들의 질의가 돋보였다. 이혜훈 새누리당 의원은 한국자산관리공사와 한국교육학술정보원 등 공공기관의 상습적인 임금 체불 행태를 지적해 “시정하겠다”는 유일호 경제부총리의 답변을 바로 받아냈다. 유승민 의원은 미르·K스포츠 재단 모금을 주도해 논란의 중심에 선 전경련 해체론을 주장하면서 정부가 전경련을 상대 안 하면 된다. 정책 협의 등을 안 하면 스스로 대기업 이익집단으로서 자기 살 길과 정체성을 찾을 것”이라는 구체적인 해법을 내놓아 눈길을 끌었다. ‘경제민주화’ 전도사인 김종인 더민주 의원은 “경제적인 이해가 깊었고 전체적으로 흐름과 맥을 잘 이해하고 질문을 하는 느낌이었다”(박승헌 기자)는 현장의 평가가 나왔다.

초선 샛별의 등장

“올해 말에 퇴직하면 퇴직금 568억원을 받게 됩니다. 적정하다고 생각합니까?”

4일 국회 정무위 국감에서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채 의원은 지난해 대한항공이 회장의 퇴직금 지급 규정을 1년에 4개월분에서 6개월분으로 늘려놨고 그 결과 조 회장이 받게 될 천문학적 퇴직금 액수를 계산해냈다. 한진해운 물류 대란 등 계열사가 위험에 빠졌는데도 총수가 회사를 떠나며 거액을 챙기는 행태를 꼬집은 것이다. 이를 지켜본 이정훈 기자는 “경제개혁연대에서 10년간 일한 그가 20대 국회 ‘재벌 저격수’가 될 것이라는 평가가 틀리지 않았다”고 촌평했다.

환경노동위의 서형수 의원은, 정부가 서울시의 청년수당 사업보다 훌륭한 사업이라며 홍보하는 취업성공패키지 상담원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지적하는 ‘한우물 정책국감’으로 주목받았다. 서 의원은 고용노동부 국감에서는 증인·참고인을 한 명도 부르지 않고 6일 열린 지방노동청 국감에 집중했다. 취업성공패키지 상담사 노조 지부장과 자활센터협회 노조 서울지회장을 불러서 격무에 시달리고 민원인들의 언어폭력과 성희롱에 노출돼있는 그들의 고충을 들은 것이다. 국감 현장을 취재한 박태우 기자는 “의원들은 보통 피감기관을 비판하는 ‘조짐성’ 보도자료를 내는데 서 의원은 이들 노조와 함께 한 설문조사 결과를 묶은 실태조사 자료집을 냈다. 그런 부분이 신선해보였다”고 평가했다.

안전행정위의 이용호 국민의당 의원은 6일 열린 경찰청 국감에서 경찰 간부 아들들의 의경 합격률이 높다는 사실을 조리 있고 명료하게 질의해 좋은 인상을 남겼다. 표창원 더민주 의원은 이철성 경찰청장에게 “여야 의원들과 함께” 백남기 농민 조문을 요청해 이 청장에게서 긍정적인 답변을 끌어내기도 했다. 현장을 취재한 김지훈 기자는 “표 의원이 인간성을 지켜나가는 정치를 하겠다는 것을 실천하는 것으로 보였다”고 평가했다.

건강보험공단과 심사평가원을 대상으로 한 국회 보건복지위 국정감사(4일)에서는 의사 출신인 건보공단 이사장과 심평원장에게 백남기 농민 사인 답변을 이끌어낸 기동민 더민주 의원도 돋보였다. 기 의원은 “서울대 의대생을 비롯해 전국 12개 대학의 의대생이 (고 백남기씨의 사망진단서와 관련해) 선배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후배의 물음에 의학적 소견을 밝혀달라”고 거듭 요구해 “외인사가 맞다”, “외인사로 판단하는 게 상식적”이라는 답을 얻어냈다.

군사전문가인 김종대 정의당 의원도 날카로운 지적으로 눈길을 끌었다. 방산 비리를 제대로 규명할 거라는 기대에 부응해 김 의원은 2011~2015년 무기 도입 사업의 42.5%가 법령에 규정된 전력소요 검증 절차를 밟지 않고 추진된 사실을 밝혀내며 대책을 따졌다.

첨단장비 동원에 동공이 휘둥그레

7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미방위)에서는 최첨단 기기가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KT 전무 출신의 새누리당 초선 비례대표 송희경 의원의 보좌관은 국감장에 두툼한 백팩을 메고 등장했다. 지진이 났을 때도 통신을 가능하게 하는 배낭형 이동통신 기지국 장비였고 송 의원은 이 장비의 도입을 주장했다. 배덕광 새누리당 의원은 분해한 스마트폰 회로도를 공개하며 국내 업체들이 FM 라디오 수신 칩을 비활성화 상태로 출고해 유료 데이터망을 쓰는 앱을 깔지 않고는 라디오를 들을 수 없게 해놓은 상황을 지적하기도 했다.

감싸고 우기고 뻗대고

피감기관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보다 몰상식한 철학을 맘껏 설파하라고 ‘멍석을 깔아주는’ 여당 의원의 행태도 반복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강효상 의원이다. 미방위 소속인 강 의원은 10일 문화방송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국정감사에서 고영주 이사장과 우호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문재인 더민주 전 대표를 향해 “공산주의자”라고 주장했다가 1심 판결에서 패소해놓고 판사의 성향을 문제삼은 고 이사장과 주거니 받거니 하며 그의 발언을 적극 옹호한 것이다. “2009년 9월 <월간조선>에 따르면 (1심 판사가 소속된) ‘우리법연구회’는 사법부의 상당히 특이한 이념성향의 집단으로 언론에서 보도된 바 있고 대한변협에서도 해체하라는 주장을 한 바 있다. 재판할 때 몰랐다고 하셨는데 이런 것은 당연히 미리 아셨어야 한다. 법관 기피 제도가 있다. 이런 제도를 모르셔서 활용 못했나”라는 게 강 의원의 질의였다. 그의 ‘따스한 위로’에 고 이사장은 “제 불찰이고 꾸중하면 달게 받을 수밖에 없다. 너무나 황당하고 편향된 판결이어서… 판사님이 어느 소속인지 찾아볼 생각 못했다”며 맞장구를 쳤다. 이에 대해 강 의원은 “고 이사장을 감싼 게 아니다. 대선 후보급 인사(문재인)에 대한 비판과 검증은 폭넓게 인정돼야 하고 고 이사장의 주장 역시 언론의 자유 차원에서 충분히 보호받아야 했다. 우리법연구회 소속이었던 판사의 판결이 그렇지 않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고 이사장에게 그런 취지로 질문한 것”이라고 정치BAR에 알려왔다.

국방부 차관 출신인 백승주 새누리당 의원은 5일 국방부 국감에서 ‘영창 발언’의 진위를 가리자며 김제동씨를 국감 증인으로 부르겠다고 해, 논란을 키웠다. 김씨의 말대로 “웃자고 한 얘기에 죽자고” 달려든 것이었다. 교육문화체육관광위의 이은재 새누리당 의원은 6일 서울시교육청 국감에서 교육청이 일선 학교가 쓰는 MS워드와 한글 프로그램을 일괄 구매한 것을 엉성하게 지적하다가 조희연 교육감에게 “자질이 없다. 사퇴하라”고 소리를 질러 여론의 호된 질타를 받기도 했다.

새누리당 강성친박 4인방 중 1명인 김태흠 의원은 국회 파행의 책임을 애먼 사람에게 떠넘기려 했다. 5일 국회 농림해양수산위 국감에서 김 의원은 이경섭 농협은행장에게 “김 장관이 처음 대출받은 금리는 2~3%대였지만 변동금리를 택했기 때문에 자연히 1%대로 내려간 것이지 특혜는 아니지 않냐”고 묻자 이 행장은 “그렇다. 특혜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우대금리를 적용했지만 특혜는 아니라고 판단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김 의원은 “이 행장이 지난 청문회 때 ‘김 장관이 농협 정책을 담당하는 직무에 있어 걸맞은 혜택을 줬다’고 시인해 모든 언론에서 ‘특혜를 시인했다’고 보도했다. 은행장 답변 하나로 나라가 시끄러워졌고 김 장관이 파렴치한 사람으로 몰려 해임건의안이 제출됐다. 나아가 여야가 정쟁으로 몰아가고 국감이 파행됐다. 이런 사태의 일부 원인을 제공한 은행장은 책임지고 물러날 생각이 없냐”고 몰아세웠다. 국회 파행의 책임을 엉뚱하게 농협은행장에게 씌우려 한 것이다. “송구하게 생각한다”고 답한 이 행장은 2~3%대의 금리가 1%대로 내려가는 과정은 특혜가 없었지만, 처음 2~3%대 금리를 제공할 때는 김 장관이 농협 정책을 담당한 공직자였기 때문에 “우대했다”는 내용을 거듭 확인했다. 김태흠 의원이 “김 장관이 사장으로 있던 농수산식품유통공사와 농협은 서로 경쟁관계 아니냐”며 ‘우대 금리’의 고리를 깨뜨리려 했지만 이 행장은 “협조관계가 맞다”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피감기관장의 뻣뻣하고 황당한 기행도 적지 않았다. 11일 열린 국회 산업자원위의 한국수력원자력 국감에서는 한수원이 “원자력 문제의 선거 쟁점화 차단”을 위해 시민단체·언론·정치권을 분석한 보고서가 도마에 올랐다. 보고서에서는 “19대 국회에서는 민주통합당 유인태 우원식 의원을 중심으로 한 ‘탈핵모임’과 김제남 정진후 의원 등 통합진보당을 주축으로 한 ‘아이들에게 핵 없는 세상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이 결성됐다”는 문구가 들어있다. 우원식 더민주 의원이 “사실상의 야당 사찰 아니냐”고 따지자 조석 한수원 사장은 “그럴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당당하게 받아쳐, 소동이 일었다. 오후에 속개된 국감에서 조석 사장은 “정치적으로 개입할 의도는 없었다.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산자위 내부에서는 “조석 사장이 한수원 사장을 오래했고 연임할 생각이 없어 저런 태도를 보인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임을 위한 행진곡’ 논란을 증폭시키고 중소기업진흥공단에 아들 취업을 청탁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은 “보훈처장을 하는 동안 (야당으로부터) 감사 청구 2번, 검찰 고발 3번, 해임촉구결의안 3번 등 수없는 업무방해를 받았다. 헌정사상 최장수 정무직 기관장을 하는데, 정부와 더민주의 국가 공직자 판단 기준이 정반대라는 사실을 국민들을 상대로 논의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여 여당 의원에게서도 주의를 받았다. 이기동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 국감 도중 위원장의 허락도 받지 않고 화장실에 갔다가 “새파랗게 젊은 것들한테 이 수모를 당하고 못해먹겠다”고 말한 사실이 드러나 물의를 빚기도 했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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