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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처럼 몸싸움하던 ‘동물국회’ 사라졌지만…

등록 2016-10-11 16:26수정 2016-10-11 16:31

정치BAR_보좌관 Z의 여의도 일기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공복이 되겠다”고 다짐합니다. 머슴이 되고픈 의원의 손과 발과 머리가 되는 사람들이 보좌관입니다. 정치부터 정책까지 의원과 가장 가까이에서 호흡하며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사람들입니다. 정치 현장 최일선에서 뛰고 있는 익명의 여러 보좌관들이 보고 듣고 느낀 ‘정치의 속살’을 전합니다.


2009년 7월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날치기 처리를 막으려고 야당 의원들이 몸싸움을 하며 격렬하게 항의하는 모습.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2009년 7월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날치기 처리를 막으려고 야당 의원들이 몸싸움을 하며 격렬하게 항의하는 모습.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몸싸움은 누구나 싫어한다. 특히 국회의원들이 싸우는 건 더 싫어한다. 다행히 지금은 사라졌지만, 때만 되면 국회에서 벌어진 몸싸움은 국민들을 분노하게 했고 정치를 외면하게 만든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나 역시 오랫동안 국회에 몸담으면서 가장 지긋지긋했던 일 중의 하나가 몸싸움이었다. 그런데도 지금 그 험악했던 몸싸움의 ‘추억’이 떠오르는 것은 여소야대로 국회 지형이 바뀌었음에도 되는 일도, 안 되는 일도 없는 요즘 상황에 대한 답답함 때문일 터이다.(그렇다고 몸싸움이 부활해야 한다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날치기 막을 방법은 ‘몸’밖에…

18대 국회까지는 몸싸움을 하는 것도 의정활동의 일부였다.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을 지원하는 것이 임무인 보좌진도 당연히 함께 나서야 했다. 만약 거들 생각이 없다면 사표 낼 각오를 해야 했을 정도다. 글 잘 쓰는 것뿐 아니라 몸싸움 잘하는 것 역시 보좌진의 장점으로 꼽혔다.

국회 몸싸움은 여야가 첨예하게 격돌할 때 벌어진다. 대개 다수당인 집권 여당이 안건을 강행처리하려 하고 야당이 이를 막으려 할 때다. 여야 지도부가 협상을 거듭하지만 여당의 안건 직권상정이 임박한 상황에 이르면, 국회의사당 주변은 전운이 감돈다. 평소에는 국회의원을 제외한 일반인들의 출입이 제한되는 곳이 본회의장뿐이지만, 이때가 되면 국회의사당 본관 전체에 출입 통제령이 내려진다. 통제가 시작되기 전에 보좌진들은 재빨리 본관에 먼저 들어가서 대기해야 한다. 1차 몸싸움의 시작은 여기부터다. 미처 본관에 못 들어간 보좌진들이 진입을 시도하면서 이를 막는 국회 경비들과 산발적으로 실랑이를 벌인다.

2차 몸싸움은 본회의장 입구에서 전개된다. 안건 처리를 강행하려는 여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에 입장하려고 하면 야당 의원들이 이를 막는 과정이다. 여기에 여야 보좌진들이 모두 합세하면서 본회의장 앞 중앙홀에선 밀고 밀리는 집단 몸싸움이 벌어진다. 이때 고성과 야유 속에, 일부 폭력 행위가 발생하고 부상자가 나올 때도 있다. 앞쪽에 의원들이 서고 바로 뒤쪽에 보좌진들이 바짝 붙어 여당 의원들을 밀어낸다.

여당 의원들 입장하면 의원들끼리 본게임

야당의 방어 포인트는 본회의장으로 통하는 주 출입구와 옆문 2곳, 국회의장 전용 출입구, 방청석·속기사 출입구 등이다. 이를 상임위원회별로 나눠서 막는다. 가뜩이나 야당은 여당에 비해 보좌진 수가 적은데, 부족한 인원을 분산시키니 더 소수가 된다. 여당의 공격 지점은 방어망이 제일 취약한 곳이다. 쉽게 뚫릴 만한 곳을 골라 의원과 보좌진을 집중 투입해 공략한다. 결국 승리는 막는 야당보다는 머릿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여당에 돌아간다. 그러나 결과와 상관없이, 야당 보좌진의 전투력이 더 강하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싸울 때 보면 여당 보좌진은 마지못해 동원된 듯하고, 야당은 어떻게든 막겠다며 강한 의지를 보인다. 아마 날치기를 강행하려는 여당보다 이를 막는 야당이 더 명분이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여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으로 들어가고 나면 보좌진의 몸싸움은 끝난다. 사실 보좌진들은 본회의장으로 진입하는 시간을 지연시키는 데 쓰일 뿐이다. 그 이후엔 본회의장에서 의장석을 둘러싸고 의원들끼리 몸싸움을 벌인다.

이처럼 한바탕 몸싸움을 벌이고 나면, 무조건 동원 대상이 돼 전투를 벌인 보좌진들끼리는 동지애 같은 결속력이 생겨난다. 그러나 허탈한 순간들도 많다. 한때 같이 일했던 동료 보좌관이 이제는 소속 정당이 달라져 대치를 벌일 때다. 우연히 눈이 마주칠 때의 그 어색함이란. ‘비애’라고 해야 할까, 가슴 한복판에 전류가 찌릿 흐르는 느낌이 든다.

몸싸움 사라졌지만 협치도 없고 소통도 없고

사실 국회는 권력을 잡고 이를 방어하려는 여당과 그것을 차지하기 위한 야당의 공격이 끊임없이 진행되는 정치의 전쟁터다. 그러나 무기는 ‘말’이어야 한다. 본래 의회를 뜻하는 ‘팔러먼트’(parliament)의 어원도 프랑스어 ‘말하다’(parler)에서 왔다. 하지만 다수당에는 항상 수적 우위를 이용한 법안 강행처리 유혹이 있었고, 소수당은 이를 물리력으로 막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 처리, 2007년 대선 직전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를 둘러싼 의혹을 밝혀내기 위한 비비케이(BBK) 특검법안 통과였다. 특히 이명박 정부와 궤를 같이한 18대 국회는 몸싸움이 가장 빈번하고 격렬했다. 해머와 소방호스, 최루탄까지 등장한 가운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종합편성채널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은 미디어법안, 정권 차원에서 밀어붙인 4대강 사업이 반영된 예산안 등이 지루한 몸싸움 끝에 날치기 처리됐다.

결국 18대 국회 말기인 2012년 5월, 국회법이 개정되면서 몸싸움은 과거 속으로 사라졌다. 쟁점 법안의 경우 의결정족수 기준을 강화하는 신속처리안건 지정제도가 신설됐고,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요건도 강화하면서 압도적 다수(5분의 3)가 아니면 몸으로 싸워서 목표를 달성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그러나 몸싸움은 사라졌어도 여전히 국회는 소통부재 상태다. 여권의 독선도 여전한 것 같다. 전에 짐승들이 싸우는 것 같다며 ‘동물국회’라고 불렸던 국회는 이제 ‘식물국회’로 또다시 조롱받는다. 소통의 정치, 즉 협치는 결국 제도의 문제에 앞서 문화와 태도의 문제라는 생각이 절실하게 드는 요즘이다.

몸싸움이 서글펐던 한 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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