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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장벽 뛰어넘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해피엔딩’

등록 2016-10-04 16:22수정 2016-10-04 16:37

정치BAR_보좌관 Z의 여의도 일기_금지된 연애 성공담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공복이 되겠다”고 다짐합니다. 머슴이 되고픈 의원의 손과 발과 머리가 되는 사람들이 보좌관입니다. 정치부터 정책까지 의원과 가장 가까이에서 호흡하며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사람들입니다. 정치 현장 최일선에서 뛰고 있는 익명의 여러 보좌관들이 보고 듣고 느낀 ‘정치의 속살’을 전합니다.



지도교수님의 추천으로 정치외교학과 4학년이던 2003년 국회 인턴으로 보좌진 생활의 첫발을 내디뎠다. 돌이켜 보면 인턴부터 시작해 31살에 5급 비서관이 되기까지 나는 ‘자아를 잊은 머슴’의 삶을 살았다. 그래도 몇 날 며칠 밤을 새워 준비했던 것들이 텔레비전과 신문 뉴스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 무척이나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2003년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한 이래, 내 의지와 상관없이 당명은 무수히 바뀌었지만, ‘전라도 빨갱이’ 출신인 나는 ‘민주당 의원’을 모시는 것이 내 천직이라고 생각했다.

호남 출신 야당 보좌관, 상대당 의원실 ‘여신’ 영접

그러던 어느 날, 고등학교 선배가 재보궐선거를 통해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는 소식에 사무실로 축하 인사를 드리러 갔다. 나와는 소속이 다른 보수 정당 의원이었지만 동문 선배이니 찾아가 인사는 해두는 것이 좋겠다 싶었다. 그런데 나는 그곳에서 인생의 ‘귀인’을 만나고야 말았다. 그 의원실에서 근무하던 한 여성을 보자마자 첫눈에 반하고 만 것이다. 사람인지 여신인지 알 수 없을 정도의 뛰어난 미모에 눈이 부셨다. 그의 뒤에서 퍼지는 광채 때문인지 아니면 스스로 부끄러워서인지 나는 얼굴도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다.

그렇게 마음만 끓이다 3년 만에 드디어 연애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내 연애’는 조심스러웠다. 여의도란 곳이 벽을 쳐다보고 이야기해도 금방 소문이 퍼지는 곳이기 때문에 몰래몰래 연애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었다. 과감하게 단둘이 함께 다녀도 별 소문이 나지 않았다. 땀을 뻘뻘 흘리던 복날 단둘이 보신탕을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당의 이념과 노선이 워낙 다르니, 주변 사람들은 설마 무슨 일이 있겠나 싶었던 것 같다.

나는 아내의 마음을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아내는 공부를 더 하겠다며 대학원에 등록한 상태였다. 나는 승부수를 띄웠다. “오빠가 박사까지 공부도 시켜주고 좋은 승용차도 사줄 테니 결혼하자.” 결국 연애를 시작한 지 100일째 되던 날 나는 예비 장인·장모님을 찾아가 결혼 승낙을 받아냈다.

우리가 곧 결혼한다고 ‘커밍아웃’을 하자, 여의도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국회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고 했다. 로미오네 몬터규가는 전라도, 줄리엣네 캐풀렛가는 충청도 출신이었다. 셰익스피어의 원작과는 달리, 몬터규가와 캐풀렛가 모두 우리의 결혼에 큰 반대는 하지 않았다. 다만, 나는 어른들 앞에서 절대로 출마는 하지 않겠다는 약조를 했다. 어른들은 선거 치르다 재산 날리고 귀한 딸 고생 시킬까봐 걱정이 크셨던 것이다. 장인·장모는 무사히 ‘패스’했지만, 집안의 정치적 분위기는 양가가 사뭇 달랐다. 상견례 뒤 명절 때 아내의 큰집에 인사를 드리러 갔더니 호남 출신 사위는 내가 유일했다. 한 어르신은 “노무현-김정일 핫라인이 정말 청와대에 있었냐”, “왜 김대중·노무현은 그리 북한에다 퍼줬냐”며 연신 진땀나는 질문을 퍼부으셨다.

결혼 성공 뒤 아내도 민주당행…장인·장모도 줄줄이 ‘전향’

애초 로미오와 줄리엣은 소박한 결혼식을 치르길 원했으나, 각기 다른 소속 정당 양쪽으로부터 하객과 화환이 몰리는 바람에 성대한 예식이 돼버렸다. 우리가 각자 모시던 영감(국회의원)님들을 포함해 예전에 보좌했던 의원들이 참석해 여야의 거물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된 것이다. 화환이 어찌나 많이 왔던지 대기업 시이오(CEO)이신 큰아버지도 깜짝 놀라셨다고 나중에 털어놓으셨다.

결혼 초기 보수 정당의 당대표를 모시던 아내와 민주당 의원을 모시던 나는 서로의 당과 의원실에 대해 퇴근 뒤 절대 이야기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자칫 공허한 입씨름을 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하고 나자 줄리엣은 ‘전향’을 선언했다. ‘남편이 야당 비서관인데 내가 어찌 여당에 남아 있겠느냐’ 뭐 그런 논리였다. 아내는 내가 있는 당으로 입당했다. 2011년 분당 재보궐선거에서 아내는 처음으로 ‘2번’을 찍었다고 고백했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평생 여당만 찍으셨던 분인데, 2012년 대선 때는 사위가 야당 후보 대선 캠프에서 고생하는데 어찌 새누리당을 찍을 수 있겠느냐며 인생 최초로 2번을 찍으셨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내와 나는 2012년 19대 국회부터 나란히 같은 민주당 의원의 보좌진으로 일하게 되었다.

요즘 나와 아내, 그리고 5살짜리 딸 우리 세 식구는 매일 아침 국회로 출근한다. 국회에 있는 어린이집을 보내기 위해 우리는 아예 국회 근처로 이사 왔다. 국회 잔디밭에서 뛰노는 걸 좋아하는 딸아이가 “아빠, 나 나중에 커서 국회의원이 될 거야”라고 말할 때면, ‘내가 비록 아니더라도 국회의원의 아빠가 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10여년 동안 나와 아내는 몸까지 아플 정도로 혹독하게 마음고생시키는 의원도 만나봤고, 성품 좋고 매너 좋은 의원도 모셔봤다. 국회는 내게 뜨거운 권력의 맛과 부질없는 야망, 인생의 희로애락을 알게 해준 곳이다. 힘들 때도 많았으나 이곳에서 평생의 천생연분을 만났으니, 국회는 참으로 오묘한 곳이더라.

국회에서 인생의 동반자를 만난 한 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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