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주년 광복절인 1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타임스퀘어 CGV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사진 오른쪽 김미경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덕혜옹주 관람에 앞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 공동취재단
“내가 여기(더불어민주당) 혼자 왔잖아. 혼자 왔는데 나를 가장 많이 도와준 사람이 우리 집사람이야. 여기 올 적에 연설도 집사람이 써줬어.”
지난 21일, 당 대표 퇴임을 앞둔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기자단과의 점심식사 자리에서 한 말이다. ‘제1야당의 당 대표 연설문을 정치인도 아닌 사람이 써줬다?’ 당황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김 대표의 아내의 면면을 알면 그의 말을 이해할 만하다.
더민주 입당에 부인 권유 결정적…입당 연설문도 써줘
김 대표의 아내는 김미경 이화여대 식품영양학과 명예교수다.(공교롭게도 김 대표가 정치인으로서 혹평하는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의 부인과 이름이 똑같다) 정치인 남편을 둔 ‘내조형’ 아내들과 달리 김 교수는 김 대표의 정치적 파트너에 가깝다. 기자들을 직접 만나거나 김 대표의 연설문을 써주고, 정무적 조언도 많이 하는 편이다. 지난 1월 김 대표가 문재인 전 대표의 설득으로 더민주에 입당할 때 연설문도 김 교수가 직접 썼다. 김 대표는 “(문 전 대표가 영입 제안을 했을 때) 처음엔 완강히 거부하며 ‘일주일의 시간을 달라’고 했지만 집사람이 문재인씨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측은한 생각이 들었는지 지금 결정하자고 해서 (그 자리에서)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의 더민주행에도 김 교수가 큰 영향을 미친 셈이다. 예비 초선 신분이었던 박용진 의원이 김 대표의 비서실장을 맡게 된 것도 종편에 출연한 박 의원을 보면서 호감을 갖게 된 김 교수의 평가가 크게 작용했다. 이런 까닭에 “대표님께 전해달라”며 당내 중진들까지 김 교수에게 정무적 부탁을 해오기도 했다.
박정희 비서실장 김정렴의 조카…정무적 감각 뛰어나
정치에 대한 김 교수의 관심은 성장기에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그의 아버지는 김정호 전 한일은행장, 작은아버지는 8년 넘게 박정희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김정렴씨다. 정치에 대한 대화가 많은 집안 분위기에서 자연스레 감각을 익혔을 것으로 보인다.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의 손자인 김 대표와는 중매로 만났다. “농담도 할 줄 모르고 다정한 말도 절대 할 줄 모르는” 35살의 노총각은 “대화가 통하는” 파트너를 찾아 수십 차례 선을 보다 김 교수를 만난 지 두 달 만에 결혼했다.
에두르지 않는 화법은 김 대표와 김 교수 두 사람이 서로 닮았다. 지난달 12일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과 함께 연극을 보기 위해 만난 자리에서 박 위원장을 먼저 알아본 김 교수가 “형수”를 자청하며 “우리 남편 좀 그만 혼내세요”라고 지청구를 한 일은 유명하다. 박 위원장이 “제가 어떻게 형님을 괴롭히겠느냐”고 농담을 하자 “오늘도 규탄한다고 하시지 않았느냐”고 되받아치기도 했다. 김 교수는 기자들의 이름을 외고 기자들이 쓴 기사를 하나하나 기억해 대화를 건넬 정도로 사교적인 편이다. 기자들의 질문에 대개 ‘단답형’으로 응수하는 김 대표와 대조적이다.
지난 6월21일 김 대표가 국회 교섭단체대표 연설에 나서 ‘기본소득’과 ‘4차 산업혁명’을 언급한 것도 김 교수의 작품이었다고 한다. “이튿날 연설을 할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가 분명히 4차 산업혁명 얘기를 할 거라고 생각해서 우리가 먼저 하자고 했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1989년 김 대표가 보건사회부 장관 시절 삼양라면이 공업용 우지로 라면을 만든다는 ‘우지파동’이 일어 정치적 위기를 맞았을 때도, 식품영양학 전문가인 김 교수가 학회 인맥을 총동원해 우지의 안전성을 알렸다. 우지파동은 ‘해프닝’으로 마무리됐다. ‘원맨 플레이어’인 김 대표에겐 늘 아내 김 교수가 ‘배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언니가보고있다 #32_박용진, 민노당 대변인에서 김종인 비서실장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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