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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 국회 인턴아, 힘내라!

등록 2016-08-03 09:42수정 2016-08-03 19:36

정치BAR_보좌관 Z의 여의도 일기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공복이 되겠다”고 다짐합니다. 머슴이 되고픈 의원의 손과 발과 머리가 되는 사람들이 보좌관입니다. 정치부터 정책까지 의원과 가장 가까이에서 호흡하며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사람들입니다. 정치 현장 최일선에서 뛰고 있는 익명의 여러 보좌관들이 보고 듣고 느낀 ‘정치의 속살’을 전합니다.

국회 의안과 직원들이 국무위원 후보자 인사청문요청안 자료들을 국회의원들에게 배부하기 위해 21일 오후 국회 문서 배부실에서 정리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국회 의안과 직원들이 국무위원 후보자 인사청문요청안 자료들을 국회의원들에게 배부하기 위해 21일 오후 국회 문서 배부실에서 정리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우리 사무실 6급 남자 비서는 오늘도 복사기 앞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법안 개정을 위해 개정안을 복사하는 것이다. 국회에서 법안을 개정하려면 300명의 의원에게 개정안 공동발의 요청서와 법안을 전달해야 한다. A4 용지 5장, 300명이니 1500페이지를 복사해야 하고 스테이플러 작업도 300번을 해야 한다. 보좌관인 내 입장에서는 미안해지는 타이밍이고, 6급 비서에게는 한숨이 절로 나오는 순간이다. 정부 부처의 과장, 국장들로부터 ‘비서관님’이라 불리며 때로는 어깨를 나란히(우리만의 착각인 상황이 많겠지만) 하며 논쟁도 하고 때로는 윽박도 지르지만 이 순간만큼은 복사기의 친구, 인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2년 동안 인턴으로 고생해서 정식 직원이 되고도 수년 고생 끝에 저 자리까지 왔건만, 다시 ‘인턴’인 셈이다.

사회생활도 군대도 소위 말하는 쫄다구가 생기고, 가르치고 부려먹는 재미로 길고 긴 고통(?)의 시간을 버틸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불행히도 다른 의원실엔 두 명씩 있는 인턴이 우리 방엔 없다. 지역사무실에서 간단 사무를 처리하는 보조원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인턴 자리를 다 가져갔기 때문이다.

덕분에 우리 6급은 2년째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의 막내다. 고통의 시간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


‘국회 인턴’ 고위층 자녀 경력쌓기로 악용되기도 하지만

‘국회 인턴’은 국회 보좌진으로 진입하기 위한 과정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처음 제도를 만들 때와 비교하면 의미가 많이 퇴색됐다. 국회 보좌진으로서 입법과 예산 등을 다뤄보고 싶어 하는 후배들의 첫 도전 자리이기도 하지만, 좋은(?) 직장과 진학을 위한 ‘스펙 쌓기용’ 징검다리로 전락하기도 했다. 일부 국회의원은 자신의 자녀나, 지역구에서 힘 좀 쓰는 사람 친인척의 스펙 쌓기용으로 부담이 적은 인턴직을 활용하곤 한다.

이런 치들이 차라리 스펙 쌓기용으로 잠깐 머물다 떠나면 그나마 다행이다. 일부는 그냥 눌러앉아 능력과 상관없이 승진하면서 사무실을 난장판으로 만든다. 국회의원의 ‘뜻’인 것처럼 의사결정에 개입하거나(공천 녹취록에서 입증됐듯 윗분의 ‘뜻’은 언제나 중요하다), 얼마 되지도 않는 사무실 공금에 손을 대기도 한다.

최근에는 방학 중 잠깐 입국하는 ‘검은머리’ 한국 학생들이 스펙 쌓기용으로 국회 인턴직을 활용하는 게 트렌드다. 이들은 철저한 주5일 근무와 ‘9 to 6’(오전 9시 출근-오후 6시 퇴근), 휴가까지 챙기며 2~3주 사무실에 머문 뒤 외국에 있는 학교로 돌아간다. 유급 인턴이 아니라 무급 입법보조원이기 때문에 이런 근무가 가능한데, 이들에게도 ‘경력확인서’-방학 기간에도 놀지 않고 고국에서 현장학습했다!-가 발급된다. 물론 국회를 경험하고 싶다는 의지를 보이는 이도 있다. 하지만 그 짧은 기간에 그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이며, 그들은 무엇을 배워 갈 수 있을까? 남는 건 확인서뿐이다(입대까지 남은 한 달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실의 무급 입법보조원으로 ‘알차게’ 활용했던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아들이 반드시 그랬다는 건 아니다).


보좌관 지망생엔 하늘의 별따기…근성 있는 인턴만이 살아남아

이처럼 부조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많은 보좌진 인턴 후배들이 국회에서 계속 일하고 싶어 한다. 10여년 전 내가 처음 국회에 왔을 땐 인턴제도도 없었을뿐더러 대부분이 대학 졸업자였다. 대학원을 졸업한 나는 나름 가방끈이 긴 축이었고 바로 정식 직원으로 채용됐다.

이제는 세상이 달라졌다. 인턴을 모집하기 위해 국회 누리집(홈페이지)에 모집공고를 올리면 수백장의 지원서가 몰려든다. 대부분 석사학위 소지자들이다. 대졸자는 정말 드물다. 그중에는 외국의 유명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인재들도 꽤 있다. 외국에서 학위를 받기 위해 감내한 시간과 노력에 비해 인턴이라는 지위가 너무 초라하기에 미안한 마음까지 들 지경이다.

이렇게 어렵게 들어온 인턴들 중 살아남는 자는 소수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첫째, 소위 말하는 ‘곤조’가 있다. 상대방의 직급이나 지위와 관계없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설명하고 설득해서 내 뜻을 관철시킬 수 있는 집요함이 있다. 상대의 허점과 문제점을 밤을 새워서라도 끝까지 찾아내는 ‘질김’이 있다. 둘째, 총선이라는 절체절명의 전투, 당 대표나 최고위원 선거 때 전국고생투어를 함께 치르고 견뎌낸다. 군대 다녀온 사람들은 알 것이다. 사격장 사선에 서거나, 유격이나 혹한기 훈련 같은 ‘개고생’을 함께 한 뒤에야 비로소 전우가 된다는 것을.

나는 오늘도 낮 동안 전화와 민원인에 시달리다, 밤 10시 넘어서야 자리잡고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옆 사무실도 국정감사를 위해 퇴근을 미룬 채 일하고 있다. 그 안에서 고생하고 있을 인턴 후배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보좌진으로 왜 일하고 싶은지, 어떤 보좌진이 되고 싶은지 항상 고민하되 ‘곤조’와 ‘개고생’은 기본 옵션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렇게 단련된 흙수저 인턴이야말로 벽돌보다 단단한 보좌진이 된다는 것을.

너무 쉽게 보좌관이 돼 미안한 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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