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들은 “국민의 공복이 되겠다”고 다짐합니다. 머슴이 되고픈 의원의 손과 발과 머리가 되는 사람들이 보좌관입니다. 정치부터 정책까지 의원과 가장 가까이에서 호흡하며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사람들입니다. 정치 현장 최일선에서 뛰고 있는 익명의 여러 보좌관들이 보고 듣고 느낀 ‘정치의 속살’을 전합니다.
2015년도 국정감사가 계속된 21일 국회 한 상임위원회 앞 로비에서 관계자들이 가득 쌓인 국정감사 자료들 위에 앉아 잠시 쉬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 언제 주실 건가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보좌관 생활 4년 동안 가장 많이 한 말이다. 시민단체 활동가, 학계 연구자였을 때도 자료는 중요했다. ‘좋은 자료’를 구하기 위해 돌아다녔고 홈페이지와 검색사이트를 샅샅이 훑었다. 정보공개청구로 괜찮은 자료를 구하기도 했지만 성에 차는 경우는 드물었다. 조금이라도 민감하면 ‘비공개’가 일쑤였고, 요청 취지와 다른 무성의한 자료를 제공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그럴 때도 양해나 설명은 제대로 없었고 소송 아니면 다툴 방법도 마땅치 않았다. 국회 보좌관이 되니 달랐다. 자료에 관한 한 막강한 권한이 부여돼있음에 깜짝 놀랐다. ‘신세계’가 따로 없었다.
주로 기관들과 연결된 업무망을 통해 자료를 요청하지만 팩스나 전화, 때로는 직접 구두로 요청한다. 형식이 가끔 문제되기도 하지만 큰 쟁점은 되지 않는다. 그쪽에서 해달라는 형식으로 다시 하면 된다. 자료 제출 요구를 ‘공식적’으로 해 달라고 하기도 하지만 반대 경우도 적지 않다. 제출‘기록’이 남는 게 꺼림칙한 피감기관에선 대면보고 과정에서 건네기도 한다. 물론 모든 일이 평화롭게 술술 풀리는 건 아니다. 열람만 가능하다며 제출을 거부하고 ‘눈팅’만 하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민감한 자료, 이른바 ‘좋은 자료’일수록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 자료가 의원실로 들어온 이상 그냥 돌아가게 내버려 두는 보좌관은 거의 없다. “열람에는 필사가 포함된다”며 베껴 쓰고, “사진촬영은 필사와 같다”며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열람 →필사→촬영’으로 이어지는 놀라운 문명사적 진화가 이뤄지는 셈이다. “잠시 읽어 보겠다”며 낭독을 하며 휴대전화로 녹음을 하기도 하고 몰래 복사하기도 한다. 고성이 오가고, 몸싸움에 가까운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긴급상황(SOS) 연락을 받고 달려온 담당 국장이나 장·차관까지 직접 나서기도 한다. 위법이라며 항의하기도 하고, 인간적 정리를 내세우기도 한다. 반발하는 표면적 이유는 “언론에 공개되면 정책 혼선과 국민 혼란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러면 점잖게 이렇게 말한다. “오해와 혼선이 생기지 않도록 충분히 설명해 주십시오. 저희가 잘 이해해야 언론에 정확히 알리고 국민을 설득할 수 있습니다.”
제출받은 자료라 하더라도 함부로 공개하는 것은 부담스럽다. 자료의 입수 경위와 내용, 의미와 파장까지 깐깐하게 챙긴다. 자료의 ‘무엇’만큼이나 ‘왜’와 ‘어떻게’도 중요하다. 피감기관에서 자료 요청 이유를 묻기도 한다. 의도를 파악한 뒤 자료 제출 여부와 범위를 정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자료 요청의 이유를 설명해 주기도 하지만 ‘이유불문’ 요구하기도 한다. 극단적 행태가 “○○ 관련 자료 일체”식의 요구다. ‘저인망식’ 접근일 때도 있지만 피감기관에 대한 보좌관의 불만이나 그저 게으름 때문에 그런 경우도 없지 않다.
그렇게 제출받은 자료에서 보물이 발견되기도 한다. 물론 예외적이다(‘자료일체’에서 보물을 찾아내는 것은 분명 능력이다). 하지만 국회의원이 흔들어댈 수 있는 자료, 말하자면 ‘단독’이나 ‘특종’은 대체로 ‘제보’나 ‘기획’을 통해 구한다. 의원실로 들어 온 제보는 그대로 믿을 수 없다. 자료 요청과 설명 요구를 통해 지루할 정도의 확인 작업이 필요하다. 특정 사안에 가설을 설정하고 ‘기획’을 통해 사안에 접근할 경우엔 사전 작업이 더욱 중요하다. 질문이 구체적이면 구체적일수록 원하는 ‘좋은 자료’를 제출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결국 시작과 끝은 ‘의심’과 ‘질문’이다. 국회의원에게는 헌법과 국회법으로 보장한 ‘질의권’과 ‘자료 제출 요구권’이 있다. 국회의원은 국민을 대표하고, 보좌관은 의원을 대신해 자료를 요청하고 설명을 요구한다. 권리이자 임무이다. 그래서 보좌관은 답변서가 아니라 질의서를 쓰는 것이며, ‘좋은 질문’ 없이 ‘좋은 자료’는 나올 수 없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자료를 받아 내는 게 보좌관의 일이지만 의원의 힘을 빌릴 때도 있다. 상임위 전체회의 등에서 국회의원이 자료 제출을 직접 요구함으로써 쐐기를 박는 것이다. 물론 너무 잦아서는 곤란하다.
자료를 제출받았다고 끝이 아니다. 제목만 같거나 대충 비슷한 자료일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최대한 빨리 확인하고 다시 요구해야 한다. 결국 보좌관의 목소리가 크다고, 인간성이 좋다고 ‘좋은 자료’가 구해지진 않는다. ‘무엇’을, ‘왜’ 요구하는가에 대한 이해와 확신이 중요하다. 나의 자료 요청에 피감기관이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자료를 준비하고 있는지, 아님 뭉개고 있는지)도 잊지 말고 체크해야 한다. 자료 요청도 결국 끈기와 체력이 필요한 ‘싸움’이다.
자료 요청 ‘신세계’ 탐험가
◎ 정치BAR 페이스북 바로가기 ◎ 정치BAR 텔레그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