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 참석과 몽골 공식방문을 위해 14일 오후 성남 서울공항에서 출국하며 환송나온 관계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모두가 가끔은 도망을 치고 싶다. 나도 가끔은 도망을 치고 싶다. 몸은 피곤하고 일은 생각처럼 되어가지 않고 사람들은 말을 듣지 않을 때 그냥 도망을 치고 싶다. 커다란 결정을 앞두고 있는데 도무지 그 결정의 결과에 확신이 없을 때도 도망을 치고 싶다. 몇 번인가는 정말 도망을 쳐야겠다고 생각했다. 휴가 신청서를 작성하고 비행기 티켓을 알아보고 막상 도망을 치겠다고 계획을 세우다 보니 웬걸, 그럴 수가 없었다. 가봐야 뭘 하겠는가. 돌아오기 이틀 전부터 스트레스로 인한 과민성대장증후군에 시달리며 입맛을 잃어가다가 돌아오는 순간 지옥이 펼쳐질 따름이다.
한국 정치인들도 도망을 친다. 지도자들도 도망을 친다. 정치인도 사람이다. 지도자도 사람이다. 우리와 똑같은 마음으로 도망을 치고 싶다. 그게 가끔은 좀 과하게 웃긴다는 게 웃길 따름이다. 이를테면 사드 배치에 대한 주민설명회를 위해 경북 성주를 찾았다가 계란과 물병 세례를 맞은 황교안 말이다. 그는 일가족이 탄 자동차를 들이받고 뺑소니를 칠 정도로 다급하게 도망을 쳤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그걸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계란이라니, 생각만 해도 오금이 저리는 그런 무시무시한 흉기를 맞으면서도 버틸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별로 존재하지 않는다.
황교안이 그러는 동안 박근혜 대통령은 몽골로 갔다. 박 대통령은 현재까지 25회 해외를 순방했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김대중 대통령은 23회, 노무현 대통령은 27회, 이명박 대통령은 49회다. 횟수로 따지자면 압도적이지는 않다. 물론, 아직 임기가 남아 있으니 어쩌면 박 대통령도 이명박 대통령의 횟수에 비슷하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뛰어넘기는 좀 힘들어 보이기도 한다. 49회라니, 그런 건 그냥 기록적이니까.) 그런데 박 대통령이 떠나는 일정을 굳이 패턴화시키자면, 그렇다. 그는 뭔가 중요한 결정을 앞둔 순간, 혹은 결정을 내린 뒤 후폭풍을 감당해야 하는 시점에 외국을 간다. 하지만 그것도 이해하려고 노력해보자. 당신도 그런 욕망을 강하게 느끼면서 살 테지만 박 대통령에게는 그것을 감행할 수 있는 초월적으로 엄청난 용기가 있을 따름이다.
황교안이 그러고 박근혜 대통령이 그러는 동안 문재인은 네팔을 갔다 왔다. 물론 박근혜 대통령의 해외순방과는 다른 이야기다. 다만, 이목을 집중시키지 않겠다던 그의 방문은 산을 바라보며 했다는 다소 시적인 표현까지 기사로 뿌려졌다. 수염을 기른 도인 같은 사진들도 여기저기 공개됐는데, 여기까지 온 참에서 이걸 ‘개인적인 방문'으로 말하기는 당신도 나도 조금 부끄러울 것이다. 하여간 <한겨레>에 따르면 네팔로 떠나기 전 가덕도 시위에 참석했던 그가 김해공항 확장 결정이 나는 동안 네팔에 있었던 걸 두고 기자들은 “트레킹 타이밍이 기가 막힌다”고 했단다. 이것 역시 우리는 이해해야 한다. 이 모든 건 어쩌면 그가 히말라야에서 배워 온 공수래공수거 정신을 피케이(PK·부산경남) 주민들에게 전파하고 싶어서일지도 모른다. 대인에게는 대인의 뜻이 있기 마련이다.
모두가 도망친다. 김무성은 옥새를 들고 부산으로 도망친다. 공천을 받지 못한 정치인들은 이념적으로 반대편에 있는 정당으로까지 도망친다. 머리가 아플 땐 일단 외국으로 도망친다. 과학적 이론으로 이걸 해석하려 노력해보자면, 도망을 쳐야 한다는 정치적 본능은 한강 다리를 폭파하고 달아난 이승만 이후 한국 정치인들의 디엔에이에 태어날 때부터 박혀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런 건 타고난 것이므로 고쳐지지 않는다. 태어나자마자 ‘엄마'라는 말 전에 ‘김치!’라고 외치는 한국인의 입맛과, 외국 연예인들에게 ‘두 유 라이크 김치?’라고 묻고 싶어지는 한국인의 본능을 떠올려보면 과학적으로 이해가 갈 것이다. 뭐? 당신은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김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당신은 한반도에 살 자격이 없다. 당장 이 국가로부터 도망치라.
허핑턴포스트코리아 편집장
김도훈은 온라인 미디어 허프포스트의 한국판 편집장이다. 그는 하드뉴스는 소프트뉴스를 더 존경해야하고, 소프트뉴스는 하드뉴스를 더 경의해야한다고 믿는다. 종종 이 칼럼은 고양이가 대신 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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