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BAR_보좌관 Z의 여의도 일기_잘 가라, 능력자여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공복이 되겠다”고 다짐합니다. 머슴이 되고픈 의원의 손과 발과 머리가 되는 사람들이 보좌관입니다. 정치부터 정책까지 의원과 가장 가까이에서 호흡하며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사람들입니다. 정치 현장 최일선에서 뛰고 있는 익명의 여러 보좌관들이 보고 듣고 느낀 ‘정치의 속살’을 전합니다.
국회 의원회관 복도에서 보좌관들이 오가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직언 하는 ‘피섞인’ 보좌관들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엔, ‘영감’(의원)이 배지를 달기 이전 예비후보자 시절부터 일했던 친인척 보좌진이 있었다. 예비후보자로 등록한 선거운동 초기에 그 의원의 지역 내 인지도는 2%도 넘지 못했다. 이렇게 당선 가능성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상황에서 후보를 도와줄 사람은 친인척, 선후배가 전부인 경우가 많다. 혈연으로 맺어지지 않은 다른 사람을 뽑고 싶어도 그러지 못할 때도 많다. 선거 사무실의 중요한 내부 정보가 밖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으로 친척 후보자를 도와 선거운동을 하다가 운좋게 당선도 시킨 한 보좌관이 있었다. 여의도로 함께 입성해 5년 넘게 일했던 그는 평도 좋았다. 일을 잘했고, 성격이 급한 의원이 앞뒤 사정 안 보고 보좌진들을 다그칠 때 앞에 나서 직언할 수 있는 파워도 있었다. 친인척이라는 사실을 숨기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특권을 누리지도 않았다. ‘스펙’도 좋아서 더 좋은 직장을 구하는 것도 가능한 수준이었다. 오히려, 의원 친인척이라는 것 때문에 끌려와서 개고생한다는 생각에 빨리 그만두고도 싶어했다. 하지만 의원이 계속 말리며 놓아주지 않아 이마저도 어려웠다. 그러던 와중, 친인척 보좌진 사태가 터졌다. 그는 뒤돌아보지 않고 사표를 썼다. 나중에 들어보니, 그는 드디어 친척 의원에게서 해방됐다며 만세를 불렀다고 했다. 오히려 같이 일하던 의원실 내 다른 직원들의 눈앞이 캄캄해졌다고 한다. 또 다른 안타까운 사례도 있다. 그는 조용한 사람이었다. 주변에선 그가 의원의 ○촌이라고 알았던 사람도 별로 없었다. 궂은 일도 내색 않고 꿋꿋하게 해냈다. 일 많기로 소문난 의원실이었는데도 오랜기간 버텼다. 그렇지만 그 역시 이번에 잘렸다. 더, 더, 안타까운 사례도 있다. 그 보좌관은 의원의 조카였다. 경력도 탄탄했고 머리가 좋았고 성품도 온화했다. 보좌관으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해냈다. 그는 선거에 나가 선출직 공무원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의원의 조카라는 사실이 알려진 뒤부터 그의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남들의 편견 어린 시선이 점점 부담스러워졌다. 그러다보니 여러 의원실을 옮겨다녔다. 자신의 능력과는 무관하게 의원의 친인척이기에 짊어져야 할 세간의 비정한 시선을 경험했다고 했다. 어느새 선거에 출마하는 꿈도 접었다. “당 공천 과정에서 경쟁자가 특혜 시비를 걸면 앉아서 당하기 십상”이라고 했다. . 이를 종합해보면, 친인척 보좌진 채용은 분명히 득보다 실이 더 많다. 능력과 자질보다도 혈연·지연·학연이 우선시되는 풍토를 바꿔야 한다는 사회 정의 차원에서 문제고, 본인 자신의 미래를 봐서도 그렇다. 이번 기회에 잘못된 채용 관행을 없애는 것, 중요하다. 하지만 나는 의원 부인의 7촌, 8촌까지 들춰내 친인척 채용이라고 딱지붙이고 사표를 내게 만드는 ‘마녀사냥’엔 반대한다. 의원의 친인척, 그들도 생활인이기에 국회를 떠난 이후 새로운 일자리를 구해야 할 것이다. 혹, 친인척이라는 이유로 국회를 그만둔 사유 때문에, 도매금으로 넘어가 새 직장을 구할 때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슬며시 걱정이 들기도 한다. “열 명의 범죄자를 잡지 못해도 한 명의 억울한 피해자는 만들지 말라.” 이 격언이 생각나는 때다. 아쉽지만 사직을 축하해주고픈 보좌관
능력도 갖췄지만 ‘도매금’ 면직
놀고먹고 모함까지 일삼는
최악의 경우와 함께 정리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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