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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님’들에게 ‘연애편지’를 썼다

등록 2016-06-29 10:17수정 2016-07-06 13:55

정치BAR_보좌관 Z의 여의도 일기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공복이 되겠다”고 다짐합니다. 머슴이 되고픈 의원의 손과 발과 머리가 되는 사람들이 보좌관입니다. 정치부터 정책까지 의원과 가장 가까이에서 호흡하며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사람들입니다. 정치 현장 최일선에서 뛰고 있는 익명의 여러 보좌관들이 보고 듣고 느낀 ‘정치의 속살’을 전합니다.

국회사진기자단
국회사진기자단



내가 모시는 ‘영감’(보좌진들이 국회의원을 부를 때 쓰는 은어)은 ‘야망’이 없다. 선수가 높아져도 마찬가지다. 대선 후보는 언감생심, 계파도 줄서는 것도 주류에 못 낀다. 오히려 주류 비판에 앞장서서 찍히기 일쑤다. 나나 영감이나 청와대 구경은 물건너갔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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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찔했던’ 원내대표 경선 도전

물론 우리도 ‘커보려’ 노력했다. 원내대표 선거에 나갔던 거다. 사람들은 국회의원이라고 하면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모든 역량을 쏟아붓고 당선되면 편하게 4년을 지내며 지역구 사업이나 챙기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그들만의 전쟁, 당내 경선이 있다. 아무리 지역구에서 승리하고 인기가 있다고 하더라도 동료 의원들의 평가는 사뭇 다르다.

○○년 원내대표 선거. 그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달아오른다. 50평도 안 되는 회의실에 의원들과 기자들, 보좌진, 당직자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었다. 저만치, 긴장한 영감의 얼굴이 보였다. 나는 개표 참관인으로 들어간 다른 의원 보좌관과 사전에 신호를 주고받기로 약속한 터였다. 왼쪽 어깨로 고개를 숙이면 ‘승리’, 양쪽 눈을 두 번 연속 깜빡거리면 ‘패배’ 같은 식으로. 드디어 몇달 동안 준비했던 선거 결과가 확인됐다. 분하게도 패배다. 절로 탄식이 흘러나왔다.

원내대표 경선은 당 대표·최고위원 경선에 비하면 들이는 돈과 노력이 100분의 1 정도 될 것이다. 그러나 당내 서열은 당 대표에 이은 2위. 모든 언론의 주목을 받고, 국회의원의 상임위 배정권을 틀어쥐게 된다.(상임위 임기가 2년이기 때문에 국회의원 임기 1·3년차 원내대표만 그렇고 2·4년차엔 진짜 별거 없다!) 그래서 많은 의원들이 재수는 기본이고 삼수까지 한다.

비록 주류는 아니지만 사람 좋고 매너 좋고 인물 좋은 우리 영감이 선수를 쌓자, 언제부턴가 기자들은 원내대표 선거철만 되면 ‘출마 예상자’로 이름을 올려왔다. 아마도 거기에 영감이 ‘업’돼서 출마를 결심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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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표 호소하려 편지 대필까지 했건만

그러나 마음먹은 일처럼 현실은 간단하지 않았다. 원내대표 경선은 너무나 힘들었다. 선거운동이 날로 업그레이드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마치 대학생 시절 기말 리포트 쓸 때 선배로부터 받은 파일에 그림 하나, 참고문헌 하나씩 더 붙여 제출해야 하는 것과 비슷했다. 내 머리에서는 더는 나올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상대 후보들은 동료 의원들한테 또 뭔가를 ‘선물’하는 꾀를 부렸다. 우선, 지방에 있는 의원들의 집을 찾아가서 3~4시간 기다리는 것은 기본이었다. 서울에 사는 의원들은 집을 방문해도 표가 나지 않는다. ‘주말’에 사전 약속 ‘없이’ 지방의 지역구에 내려간 의원을 찾아가서 ‘무작정’ 기다려야 성의를 알아준다. 우리 영감도 몸이 달아 누굴 찾아가야 하는지, 몇시에 집에 있는지를 알아보라고 닦달했고, 꼭두새벽에 지방에 살고 있는 의원 집 문을 두드리기를 여러번 했다. 빈손으로 가는 법도 없다. 전에는 책을 가져가거나 (여성 의원에겐) 꽃바구니를 곁들였는데, 트렌드도 변했다.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고 해서 손편지를 쓰는 게 대세였다. 바쁜 의원을 대신해서 비슷한 글씨체를 지닌 보좌진이 쓰는 경우도 있었다. 나도 20대에 한창 연애할 때 이후 진짜 오랜만에 펜을 잡아봤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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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유권자 표 얻기 쉽지않네

하지만 그렇게 열과 성의를 다했는데도 영감은 또 ‘배신’을 당했던 것이다. 의원들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수준 높은(닳고 닳은) 유권자다. 눈앞에선 찍어준다, 도와준다고 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선거 초반엔 주류들도 계파를 떠나서 도와준다고 했다. 세가 없으니 오히려 공정할 거 같아 도와준다고도 했다. 영감은 주류 의원들로부터 상임위원장과 간사, 예결위 계수조정소위 위원, 원내대변인, 원내수석부대표 등을 조건으로 표를 가져왔다고 장담했다. ㄱ의원은 자신이 ○○지역의 표를 몰아올 테니 자기한테 순서가 돌아오지 않는 상임위원장 자리를 달라고 적극적으로 나서기까지 했다. 그런데 선거 막판으로 오면서 분위기가 180도 변했다. 주류 쪽에서 원내대표를 ‘자기 계파 사람’으로 밀겠다고 결의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애가 탄 영감은 경선을 이틀 앞두고 주류 쪽 대장인 의원을 찾아갔다. 여전히 도와주겠다는 답이 돌아왔고 영감은 그걸 믿는 눈치였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의원회관 흡연실에 모였던 주류 쪽 보좌진들의 눈치가 빤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우리가 남이가’라는 분위기였다. 상임위원장 자리를 달라고 했던 ㄱ의원은 우리보다 좋은 조건을 내건 다른 후보자로 선거 당일 배를 갈아탔다고 했다.

암튼, 우리는 주류의 마음을 얻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딜도 상큼하게 해내지 못한 셈이 됐다. 마음이 무거운 건, 영감은 또다시 원내대표 경선에 도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찌감치 다음 선거 준비하자고, 영감은 당장 오늘 저녁에라도 얘기할지 모른다. 내가 영감을 바꾸지 않는 한 난 또다시 손편지를 써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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