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BAR_다시 시험대 선 86그룹
2000년 전후 ‘젊은 피’로 수혈
17대 총선땐 12명 입성했지만
당 대표·유력 대선주자 밑에서
주요당직 도맡으며 보호막 노릇
“특권 해체·약자 대변 실패” 자성
떠들썩한 등장 ‘세대론’은 범박하다. 삶의 배경과 경험의 구체성이 다른 이들을 하나로 묶는 것은 거친 평가 방법이다. 하지만 격변의 시기를 지난 어떤 세대에선 공유된 경험의 강도와 밀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1980년 광주 민주항쟁부터 1991년 ‘분신정국’에 이르기까지 함께 반정부투쟁에 집중했던 86세대는 날카로운 정치의식과 강력한 연대감을 공유하는 세대다. 하지만 정치권에 처음 발 디딘 뒤 이 “뜻있고 젊은 일꾼들”(김대중 전 대통령)은 줄곧 ‘기대 이하’라는 평을 받아왔던 게 사실이다.
영광보다 상처 그들만의 ‘동지애’는 때로 ‘패거리’ 문화로 비치기도 했다. 2014년 7월 보궐선거 공천을 앞두고 정동영·천정배 등 당 중진들의 출마설이 나돌자, 이를 견제하려 ‘중진 험지 출마’를 요구하는 연판장을 돌리거나, 학생운동 ‘동지’인 허동준 서울 동작을 지역위원장을 집단적으로 지지해 공천을 압박한 일이 대표적이다. 이런 행태는 후배 세대로부터도 비판받기 시작했다. 지난해 4월 보궐선거 전패 뒤 꾸려진 당 혁신위원회 소속 이동학 혁신위원은 86그룹을 향해 공개편지를 썼다. 30대 정치인인 이 혁신위원이 볼 때 86그룹은 “후배 세대들의 사다리를 걷어차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데 실패”했다는 내용이었다. 86그룹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없지 않았다. 고려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김영춘 전 의원(20대 총선 당선자)은 2013년 5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에 ‘386 책임론’을 참회하는 반성문을 띄웠다. “민주당 386 정치인들은 정치적 견해에 따른 정파활동보다는 줄서기, 줄잡기에 급급한 행태를 보였다. 불공정한 특권구조의 해체와 사회경제적 약자의 대변이라는 소명에 부응하지 못했다”고 그는 적었다. 그에 앞서 3월엔 당내 86그룹 모임 ‘진보행동’이 해체를 선언했다. 운영위원을 맡고 있던 우상호 의원은 당시 진보행동의 마지막 토론회에서 “우리는 기존의 정치문법을 배웠고, 기존의 관행을 혁파하는 데 주저했다”고 자성했다. 하지만 그 뒤 잇따른 탈당·분당 사태에서도 86그룹은 ‘진지한 성찰 없이 뒤로 숨어버렸다’는 게 당 안팎의 평가다. 우 원내대표 정도가 탈당파와 ‘주류’ 가운데서 중재에 나섰던 이로 꼽힌다. 김태일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86 정치인들이 가치를 위해 단결해왔다면 긍정적으로 평가받겠지만 그들은 여태껏 주류와 함께 일을 도모하며 기술자 구실만을 해왔지,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야권이 분열되는 소용돌이 속에서도 치열함을 보여주지 않았다. 아픈 시간을 거친 만큼 더는 옛 연줄로 타인을 배척하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86그룹
‘현장형 86’의 합류 ‘86그룹 퇴조’, ‘힘 빠진 86그룹’, ‘흔들리는 친노·운동권’…. 4·13 총선을 앞두고 언론이 내놨던 전망이다. 김종인 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운동권 정치 청산’에 방점을 찍은데다 강기정·오영식·정청래 의원 등 86그룹의 대표선수들이 여럿 낙천하면서 “86의 시대가 갔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번 총선에서 역설적으로 86그룹은 더 ‘강하게’ 살아 돌아왔다. 26명의 전대협 간부 출신 본선 출마자 가운데 10명이 당선됐다.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내 전대협 간부 출신 당선자가 12명인 것을 고려하면 적지 않은 수다. 초선 당선자 57명 가운데 학생운동의 기억을 가진 86세대는 기동민 원내대변인을 비롯해 10명이 넘는다. 하지만 20대 국회에서 30명쯤 되는 더민주의 86그룹들이 기존에 비판받아온 ‘강성 운동권’ 이미지와 패거리 문화를 고수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삶의 궤적이 천차만별이어서다. 16~17대 총선에서 금배지를 단 86그룹 정치인 중엔 학생운동·재야운동의 경험만을 가진 ‘총학생회장’ 출신이 많았다. 이들 중 20대 총선 당선자는 송영길·우상호·이인영·김영춘 정도다. 이에 견줘 이번 초선 당선자 중엔 학생운동 뒤 전문직이나 생활밀착형 정치를 경험한 86세대가 많다. 20여년간 농민운동을 해온 김현권, 25살 때부터 김대중 총재의 비서를 해온 김한정, 치과의사인 신동근, 검사 생활을 하다 검찰을 비판하고 나온 백혜련 당선자 등이다. 모두 ‘86그룹’이라고 불린다고 해서, 이들에게 가치의 동질성을 요구하는 것에도 무리가 있다. 우 원내대표는 “정치권에 ‘질서있게’ 들어온 것(영입)은 나를 비롯해 이인영, 오영식, 임종석 등으로 대표되는 전대협 의장 그룹뿐이어서 그밖의 인물들은 안면은 있어도 ‘정치적 결사’로 보긴 어렵다”고 설명한다. 상처 많은 ‘선발대’와 생활 현장의 경험을 가진 ‘후발대’의 만남이 20대 국회에서 어떤 화학작용을 일으킬까. 한때 86그룹 내 자기비판에 앞장섰던 김영춘 당선자는 “86그룹이 변증법적인 과정을 거쳐 업그레이드됐다”고 평가했다. 김 당선자는 “한때 86 정치인들은 과잉 책임감 때문에 ‘모두를 만족시키는 정치’를 시도하고, ‘시장’에 경도돼 보수화한 모습을 보였다”며 “최근의 모습을 보면 노동자·농민·서민 등 우리가 대변해야 할 이들에게 천착하는 집중력이 강화된 것 같다”고 말했다. 제주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제주도의회에서 10년간 일해온 위성곤 당선자도 “이번에 국회에 들어온 이들은 현장 속에서 스스로의 힘을 증명해온 이들”이라며 “기존 86그룹의 중앙정치 경험과 우리의 생활정치 경험이 만나 시너지를 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보다 민생, 성공할까
“운동권” 공세에도 30명 가까이 당선
면면도 학생회장 ‘명망가’ 넘어
전문직·생활밀착형 등 다양해져
민생TF 등 현장강조 ‘변화 조짐’
우상호 중심 새정치 해낼지 관심
또다른 도전 아직 미미하지만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지난 13일 처음 열린 더민주 당선자 워크숍에서 우상호 원내대표 등이 주도해 분야별 민생 태스크포스(TF)를 꾸리기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더민주는 △청년 일자리 △서민주거 △가계부채 △사교육비 등 4개 분야 티에프를 두고 앞으로 6개월간 현장 방문을 통해 시급한 정책 과제를 만들어가기로 했다. ‘정치’보다 ‘민생’에 무게를 둔 것이다. 2004년 17대 국회가 4대 개혁입법(국가보안법 폐지, 사립학교법 개정안, 과거사기본법제정안, 언론관계법안)으로 진통을 앓았던 것과 대비된다. 86그룹의 ‘막내’ 격인 박홍근 의원은 “86그룹의 가치지향성이 현실정치를 움직이는 실력과 같이 가야 한다는 데 다들 공감하고 있다”며 “사회경제적인 의제들에서 합리적 진보 노선을 강화하되, 외교·안보는 실용주의 노선을 택하자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패거리’ 문화를 극복하기 위한 우상호 지도부의 노력도 시작되고 있다. 원내부대표단에 속한 한 초선 당선자는 “현안이 있을 때마다 부대표들이 담당하고 있는 의원들 한명 한명의 의견을 묻고 있다”며 “다들 반가워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우상호 원내대표가 86그룹의 대리인으로 호명된 것이든 그렇지 않든, 우상호 체제의 성패가 86그룹의 정치적 미래에 연동돼 있다는 데 당내 의견이 모인다. 그가 호평을 받으면 다가올 전당대회에서 86그룹이 당대표를 배출하는 것은 물론이고, 대선주자도 배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교수는 “86세대 정치인들은 집단적인 기억 말곤 ‘가치’에 의거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구성한 적도 없고, 그 세대를 대변하는 뚜렷한 의제를 제공한 적도 없다”며 “지나온 날 무엇을 했는가보단,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가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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