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BAR_진짜 의회권력 투쟁을 둘러싼 한판 전쟁
20대 국회 원 구성 협상이 한창입니다. 지난 4월13일 국회의원 다 뽑아놨는데 국회 구성을 왜 또 한다는건지 의아하다구요? 국회의원 300명 중 국회의장·부의장 뽑고, 상임위원장 정하고, 의원들 개별 상임위에 배정하는 작업이 필요하거든요. 이 작업을 ‘원 구성’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그걸 왜 여야가 ‘협상’ 하냐구요? 매 국회마다 두차례씩 겪어야 하는 원 구성 협상의 모든 것을 ‘정치BAR’가 정리했습니다.
13대 국회부터 시작된 협상…핵심은 상임위원장 배분 당초 원 구성 협상이란 건 없었습니다. 6대 국회(1963년 12월~1967년 6월)부터 12대 국회(1985년 4월~1988년 5월)까지는 다수당이 상임위원장직을 모두 차지했기 때문이죠. 관행이 바뀐 건 13대 국회(1988년 5월~1992년 5월)부터입니다. 여당인 민주정의당이 과반의석을 확보하지 못해 헌정 사상 처음으로 ‘여소야대’가 됐습니다. 처음 겪는 정치형태였죠. 여야는 상임위원장 자리를 의석비율대로 나눠갖기로 하고 협상을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원구성을 협상하는 관행이 생겼습니다. 중요 쟁점은 ‘어느 상임위원장 자리를 어느 정당이 차지하느냐’입니다. 상임위는 국회의원이나 정부가 법안을 발의하면 이를 정밀하게 심사하는 단위에요. 환경부와 고용노동부 관련 법안은 환경노동위원회, 국방부 관련 법안은 국방위원회, 국토교통부 관련 법안은 국토교통위원회가 심사하죠. 상임위원장은 상임위 의사일정 결정권을 무기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회의를 열지 않을 수 있거든요. 법 개정이 필요한 사업의 경우 회의 무산이 곧 사업 무산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각 정당들은 자신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상임위에 반드시 소속 의원을 위원장으로 앉히려고 합니다.
특히 몇몇 상임위는 어떤 정당이든 시대를 가리지 않고 차지하려고 합니다. 대표적인 상임위가 법제사법위원회입니다. 법사위는 검찰이나 법원 등 사법기관 관련 법안을 심의합니다. 동시에 다른 상임위에서 통과된 법률안이 기존 법률과 충돌하는 건 없는지, 자구에는 문제가 없는지 등을 따지는 관문 역할도 합니다. ‘상원 상임위’라고 불리죠. 법안이 관련 상임위를 통과했어도 법사위를 통과하지 못하면 본회의에 올라갈 수 없습니다. 막강하죠?
법사위의 이런 권한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다른 상임위원들의 반발을 사기도 합니다. 법사위가 법안의 핵심이 되는 ‘내용’까지 수정한다는거죠. 2013년 4월 임시국회에서 법사위와 환경노동위원회가 한바탕 맞붙기도 했습니다. 환노위 소속 여야 의원들이 합의해서 법사위로 넘긴 ‘유해화학물질 관리법안’이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과정에서 대폭 수정·완화됐기 때문입니다. 환노위는 “앞으로 이런 행태를 반복할 경우 국회법을 개정해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권한을 국회 법제실로 이관하겠다”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법사위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해 6월11일 박영선 법사위원장과 여야 간사는 “체계·자구 심사 범위를 넘어 수정안을 제시할 수밖에 없는 법안을 법사위로 보내지 말라”는 공문을 15개 상임위에 발송했어요.
법사위 권한 축소 요구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제기됐었죠. 17대 국회에서는 입법 기능을 지원하는 국회 입법조사처 신설을 전제로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권한을 없애자는 법안이, 18대 국회에서는 국회 법제실로 해당 권한을 넘기는 법안이 발의됐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위헌 여부 등을 심사할 보완 조처가 필요하다’는 반론과 ‘여론 수렴, 의견 조율’이라는 법사위 순기능이 힘을 얻으며 폐기되곤 했습니다. 법사위는 여전히 막강합니다.
국회운영에 관한 사항과 대통령비서실을 다루는 운영위도 힘이 셉니다.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이 오전 10시에 이와 관련한 첫 보고를 서면으로 받은 뒤, 오후 5시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방문할 때까지 대면보고를 받지 않은 사실이 드러난 곳도 청와대 비서실의 국회 운영위원회 업무 보고장이었죠. 그외 국가의 재정·경제정책을 다루는 기획재정위, 군사·외교를 다루는 외교통일위 및 국방위, 국가정보원을 다루는 정보위원회 등이 선호되는 상임위입니다.
국회입법조사처 자료를 보면, 여당은 다수당이었던 13대~15대 국회 전반기까지 운영위, 법사위, 외무통일위, 내무위, 재무위, 국방위, 정보위를 차지했습니다. 반면, 다수의석을 갖지 못한 15대 국회 후반기~16대 국회 후반기까지는 운영위, 국방위, 행정자치위, 문화관광위, 정보위를 가져갔어요. 여당이 다수당이든 소수당이든 반드시 위원장 자리를 확보한 상임위는 운영위, 내무(행정자치)위, 국방위, 정보위 등이었다는 뜻입니다.(‘국회 원 구성 과정의 특징과 문제점’ 2012년 5월)
국회의장도 권한이 큽니다. 하지만 다수당이 가져간다는 관행이 대체로 유지돼 큰 쟁점이 되진 않습니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가 ‘국회의장 새누리당 양보론’을 거듭 주장해 잠시 논란을 빚긴 했지만 최근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자’는 원론적 입장으로 돌아섰습니다.
원 구성보다 힘들었던 등원협상 12대 국회(1985년 4월~1988년 5월)는 임기개시일 33일을 넘겨 문을 열었습니다. 당시로선 늑장 개시 역대 기록이었죠. 다수당이 상임위원장 전부를 가져가던 시절입니다. ‘원 구성 협상’이 없던 때인데 왜 그랬을까요? 당시 103석 거대야당이 된 신민당은 김대중씨 등 재야인사들에 대한 사면·복권과 ‘양심수’ 석방을 끈질기게 요구하면서 등원을 거부했습니다. 소수당은 종종 등원 거부를 무기삼아 다수당에게 정치적 요구를 합니다. 다수당이라해도 혼자 국회 문을 여는 것은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이죠. 야당의 ‘벼랑끝 전술’은 국회 원 구성 협상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곤 했습니다. 18대 국회는 ‘쇠고기 정국’으로 개원에 애를 먹었습니다. 결국 가축전염병예방법을 개정하기로 여야가 합의하면서 가까스로 문을 열었습니다. 19대 국회는 민간인 불법사찰 국정조사, 내곡동 대통령 사저 의혹 특검, 언론사 파업 청문회 개최 등 3대 쟁점에서 여야가 맞서면서 개원에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때와 비교하면 20대 국회 풍경은 낯섭니다. ‘이런저런 조건을 들어주지 않으면 국회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야당의 요구가 없습니다. 여소야대 상황이라 야당이 굳이 ‘벼랑끝 전술’을 펼칠 필요가 없기 때문이죠.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개원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원 구성 협상 자체가 지난 국회보다 훨씬 복잡해졌기 때문입니다. 일단 교섭단체가 3개입니다. 일부 상임위를 쪼개고 합쳐 3개 정당이 나눠가져야합니다. 여야는 오랜만에 3차 방정식을 풀어야 합니다.
법사위를 차지하기 위한 공방도 예전에 비해 더욱 뜨거워졌습니다. 국회선진화법 체제에서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요건은 매우 까다롭습니다. 각 상임위 통과 법안을 본회의에 넘길지를 결정하는 ‘최종 수문장’인 법사위원장이 버티면 어떤 법안도 본회의에 상정되기 어려운 구조죠. 어느 때보다 몸값이 높습니다.
제1당이 야당이라는 점도 상황을 복잡하게 만듭니다. ‘국회의장=제1당, 법사위원장=야당’ 관행을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헷갈리기 때문입니다. 새누리당은 더민주가 국회의장직을 가져간다면 법사위원장 자리는 무조건 여당이 맡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최근 “야당도 외교안보, 국방을 경험해보는 게 필요하다”며, 전통적으로 여당 몫이었던 외교통일위와 국방위를 내줄 테니 법사위를 달라는 뜻을 시사했습니다. 더민주는 국회의장직과 별개로 전통적으로 야당 몫인 법사위를 절대 여당에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의당은 ‘법사위원장은 국회의장을 맡는 정당과 다른 정당이 맡아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이제까지 국회는 문 여는 데만 몇 달씩 소비하곤 했습니다. 14대 국회는 4개월, 18대 국회는 3개월, 19대 국회는 1개월을 넘겼죠. 20대 국회는 어떻게 될까요? 새누리당 김도읍, 더민주 박완주, 국민의당 김관영 의원 등 3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지난 11일 첫 상견례를 하고 법이 정한 기한 내에 원 구성을 마치기로 했습니다. 15일에도 만나 협상에 속도를 내기로 했죠. 20대 국회는 언제 문을 열까요? 3당 체제가 첫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김원철 기자 wonchul@hani.co.kr
[언니가 보고있다_#18_무기력한 새누리당의 한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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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신임 원내대표가 8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주부터 3당 원내대표간 원 구성 협상을 시작하자고 제안 드린다”고 밝히고 있다. 우 원내대표는 신임 원내부대표단 인선을 발표한 뒤 ”5월 중 원 구성을 마무리하고 6월 원 구성이 정상적으로 되도록 하자고 제안 드린다”며 이같이 밝혔다. 연합뉴스
13대 국회부터 시작된 협상…핵심은 상임위원장 배분 당초 원 구성 협상이란 건 없었습니다. 6대 국회(1963년 12월~1967년 6월)부터 12대 국회(1985년 4월~1988년 5월)까지는 다수당이 상임위원장직을 모두 차지했기 때문이죠. 관행이 바뀐 건 13대 국회(1988년 5월~1992년 5월)부터입니다. 여당인 민주정의당이 과반의석을 확보하지 못해 헌정 사상 처음으로 ‘여소야대’가 됐습니다. 처음 겪는 정치형태였죠. 여야는 상임위원장 자리를 의석비율대로 나눠갖기로 하고 협상을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원구성을 협상하는 관행이 생겼습니다. 중요 쟁점은 ‘어느 상임위원장 자리를 어느 정당이 차지하느냐’입니다. 상임위는 국회의원이나 정부가 법안을 발의하면 이를 정밀하게 심사하는 단위에요. 환경부와 고용노동부 관련 법안은 환경노동위원회, 국방부 관련 법안은 국방위원회, 국토교통부 관련 법안은 국토교통위원회가 심사하죠. 상임위원장은 상임위 의사일정 결정권을 무기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회의를 열지 않을 수 있거든요. 법 개정이 필요한 사업의 경우 회의 무산이 곧 사업 무산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각 정당들은 자신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상임위에 반드시 소속 의원을 위원장으로 앉히려고 합니다.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가 2013년 5월30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상임위원장단 간사단 연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1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20대 국회 원 구성과 관련한 입장을 말하고 있다. 연합사진
원 구성보다 힘들었던 등원협상 12대 국회(1985년 4월~1988년 5월)는 임기개시일 33일을 넘겨 문을 열었습니다. 당시로선 늑장 개시 역대 기록이었죠. 다수당이 상임위원장 전부를 가져가던 시절입니다. ‘원 구성 협상’이 없던 때인데 왜 그랬을까요? 당시 103석 거대야당이 된 신민당은 김대중씨 등 재야인사들에 대한 사면·복권과 ‘양심수’ 석방을 끈질기게 요구하면서 등원을 거부했습니다. 소수당은 종종 등원 거부를 무기삼아 다수당에게 정치적 요구를 합니다. 다수당이라해도 혼자 국회 문을 여는 것은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이죠. 야당의 ‘벼랑끝 전술’은 국회 원 구성 협상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곤 했습니다. 18대 국회는 ‘쇠고기 정국’으로 개원에 애를 먹었습니다. 결국 가축전염병예방법을 개정하기로 여야가 합의하면서 가까스로 문을 열었습니다. 19대 국회는 민간인 불법사찰 국정조사, 내곡동 대통령 사저 의혹 특검, 언론사 파업 청문회 개최 등 3대 쟁점에서 여야가 맞서면서 개원에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광범 특별검사가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변호사교육문화관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의혹에 대한 특별검사팀 수사결과를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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