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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구 획정 지체로 불이익? 선거 치렀으니 됐잖아!

등록 2016-04-29 10:33수정 2016-04-29 14:58

정치BAR_헌법재판소의 ‘각하’는 누굴 위한 것인가
헌법재판소에서 선거구 획정과 관련한 공직선거법 25조 등의 위헌확인 헌법소원 사건에 대한 선고를 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헌법재판소에서 선거구 획정과 관련한 공직선거법 25조 등의 위헌확인 헌법소원 사건에 대한 선고를 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현행 공직선거법에서는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위원회는 국회의원 선거일 전 13개월 전까지 선거구 획정안을 국회의장에게 제출하도록 돼있다. 획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면 새로운 선거구가 확정된다. 지역구 국회의원을 꿈꾸는 선수들이 뛸 수 있는 ‘링의 모양’이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20대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은 위법투성이였다. 여야는 4·13 총선 13개월 전인 2015년 11월13일까지 선거구 획정안을 도출하지 못했다. 비례대표 의석을 확대해 선거를 치르면 “의석 수가 줄어든다”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개혁안을 완강히 거부한 새누리당의 책임이 가장 컸다.(참고 기사 : 선거구 무법 상태…새누리당을 고발합니다 http://me2.do/5sSZPxpW) 여야는 헌법재판소가 지역구 간 인구 편차를 문제삼으며 선거구 획정 마감 시한으로 제시했던 2015년 12월31일까지도 결론을 내지 못했다. 2016년 새해 들어 선거구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무법천지’가 빚어진 셈이다. 국회는 선거를 40여일 앞둔 3월2일에야 선거구를 확정했다.

피해를 입는 건 부지런히 얼굴을 알려야 하는 예비후보들이었다. 선거구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일단 명함을 돌리기는 했지만 선거구가 사라진 새해부터는 선거운동을 아예 할 수 없었다. 이미 인지도가 있고 의정보고회를 통해 홍보가 가능한 현역의원들과 비교하면 엄청난 불이익을 받은 셈이다. 그래서 서울 종로에 출마를 희망하고 있던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등 6명의 예비후보들이 2015년 12월 말~2016년 1월 초에 걸쳐 동시다발적으로 헌법소원을 냈다. 국회가 선거구 획정 의무를 소홀히 한 것은, 자신들의 선거운동의 자유를 침해한 위헌적 행태임을 확인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이른바 국회의 ‘선거구 입법 부작위 사건’이다.

헌법재판소는 4월28일, 재판관 5 대 4 의견으로 ‘각하’ 처분을 내놨다. ‘각하’란 위헌 여부를 따질 것도 없이 헌법소원의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박한철·김이수·이진성·김창종·강일원 재판관 5인은 “국회는 입법 개선 시한을 도과하여 선거구 공백 상태를 초래해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고자 하는 사람의 선거운동의 자유가 온전히 보장되지 못하고 선거권자의 선거 정보의 원활한 취득을 어렵게 했다”며 “선거구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야 할 헌법상 입법의무의 이행을 지체하였다고 봐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들은 “국회가 2016년 3월2일에 선거구 획정안을 가결했고 그 다음날 시행됐다. 획정된 선거구에서 국회의원 후보자로 출마한 사람들의 주관적 목적도 달성됐으므로 권리보호이익이 없어 부적법하다”고 결론 내렸다. 뒤늦게라도 선거 통과돼 출마까지 했으니까 됐잖아, 그러니까 위헌 여부를 따질 것도 없어서 킬, 이라는 얘기다. 총선이 끝난 지 보름 뒤, 선거구가 없어진 ‘무법’ 상태로부터 4개월이 지난 시점에서의 ‘허무한’ 결론이었다.

그러나 이정미·안창호·서기석·조용호 재판관의 소수의견은 사뭇 달랐다. 이들은 선거구 획정이 지연돼 발생한 문제점을 조목조목 제시했다.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하고자 하는 사람의 선거운동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국회의원 선거권자의 선거정보 취득을 어렵게 하는 등 국민주권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를 매우 위태롭게 하며 △선거운동의 자유가 온전히 보장되지 못한 채 제한된 선거정보로 실시된 선거는 민주적 정당성의 약화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4인의 재판관은 “국회의 입법 부작위는 의무를 게을리 한 것으로 중대한 헌법 위반 행위”라고 결론 내렸다. 또 “앞으로도 이러한 선거구 공백 사태가 반복하여 발생되지 않으리라고 단정할 수 없다”며 “선거구에 관한 법률을 마련하지 않은 부작위가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에 관하여 아직까지 헌법적 해명이 이루어진 적이 없으므로 이 문제에 대한 헌법적 해명은 헌법질서의 수호·유지를 위하여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덧붙였다. 선거 제대로 치렀으니 ‘그까이거 대충’ 넘어갈 게 아니라 책임을 물어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지난 1월5일 오전 서울 국회앞에서 현재의 선거구 미획정사태에 대해 항의하며 1인시위를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지난 1월5일 오전 서울 국회앞에서 현재의 선거구 미획정사태에 대해 항의하며 1인시위를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녹색당은 28일 논평을 통해 신속하게 사건을 다루지 않은 헌재의 게으름을 질타했다.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헌법소원을 낸 게 2016년 1월5일이고 국회가 선거구 획정안을 통과시킨 3월2일까지 2달의 시간이 있었고, 그 사이에 심리가 끝났다면 “국회의 선거구 미획정은 당연히 위헌”으로 결정났을 거라는 얘기다. 녹색당은 “선거가 끝난 후에야 뒤늦게 선고를 하면서 위헌결정을 회피하기 위한 궤변을 늘어놓았다”며 유감의 뜻을 나타냈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언니가 보고있다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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