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BAR_인터뷰_‘필리버스터 투데이’ 운영자 ‘쇼동’
4년 전 미국 국회도서관에 있는 ‘쇼동’님의 모습. 그는 이름과 얼굴 공개를 꺼렸다. 얼굴이 식별되지 않는 옆모습이나 다른 상징물도 좋다고 했더니 15분 간 고민한 뒤 이 사진을 보내왔다.
A. “저희 팀 이름은 ‘Team Spoon’이고, 세 명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 만난 친구들이고, 졸업 이후에도 사회와 정치에 대한 관심으로 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엊그제 했다는 <오마이뉴스> 인터뷰(http://me2.do/5xoV742N)가 눈에 들어왔다. 3명의 친구가 미국 보스턴, 위스콘신, 서울에 뿔뿔이 흩어져 있단다. 몸은 떨어져 있는데 마음만으로 의기투합한 ‘세 친구’의 태평양을 넘나드는 글로벌 프로젝트였던 것이다. Q. 그러면 지금 인터뷰에 응하시는 분은 서울에 계신 거고요?
A. “아뇨 저는 보스턴에 있습니다 ^^.” 40대 아저씨의 고정관념을 사정없이 내려치는 대답. 보스턴 현지 시각은 3월2일 저녁 8시였다. 이들이 더욱 궁금해졌다. 이름을 물었더니 밝히길 꺼린다. 대신 ‘쇼동’이라는 아이디를 알려줬다. 위스콘신에 있는 친구는 ‘우석선생’, 서울에 있는 친구는 ‘양사장’이란다. 본격적으로 탐구에 나섰다. Q. 쇼동님은 학생이라고 하던데 보스턴에서 어떤 공부를 하세요?
A. “경제학 박사과정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관심 갖는 분야는 정치경제학이구요.” Q. 위스콘신에 계신 우석선생의 전공은요? 서울에서 직장 다니시는 분은 아이티 업계 쪽인가요?
A. “위스콘신에 있는 친구는 마케팅이구요, 서울에 다니는 친구는 IT에 관련이 있는 업종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정치에 관심이 있어도 이런 홈페이지를 만들고 운영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결행하게 된 ‘결정적 순간’이 궁금했다. Q. 처음에 필리버스터 투데이를 누가 만들자고 하셨어요?
A. “처음 사이트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는 제가 냈구요. 다른 두 친구가 적극적으로 동의해주고, 또 요약을 주된 콘텐츠로 삼자는 아이디어도 내줘서 밤새 사이트를 만들었습니다.” Q. 이걸 꼭 해야겠다, 딱 필(feel)이 꽂힌 계기나 장면이 있을까요?
A. “은수미 의원님께서 좋지 않은 몸으로 10시간 넘게 발언하시다가 내려오셔서 다른 의원님들과 포옹하며 눈물 흘리는 장면, 그 장면이었던 것 같아요. 여기에 담긴 드라마는, 정치가 우리 국민에게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촉매제가 되기에 충분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필리버스터투데이 캡처 화면.
A. “아뇨, 오히려 한국시간으로 사람들이 많이 보실 만한 시간에 실시간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노력하느라 제시간에는 잠을 거의 못 잤습니다 ㅠㅠ.” Q.의원들의 발언을 계속 들으면서 요약 작업하신 건가요?
A. “여러 가지 방법이 쓰였는데요, 실시간 요약을 하는 한편 <오마이뉴스>와 <한겨레>에서 올려주셨던 속기록(http://me2.do/5wK93TeF)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희가 놓친 부분에 대해서는 속기록을 보고 요약을 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이 부분이 업데이트가 빠르지 않아서 의원실에 일일이 문의를 드렸습니다. 필리버스터에 참여하신 의원님들 위주로요 ^^. 많은 의원님들께서 답장을 해 주셨는데, 그 중에서도 홍종학 의원님 의원실에서 매일 속기록을 하나씩 보내주셔서 정말 큰 도움이 되었어요.” 그는 “이 자리를 빌려 홍종학 의원님과 의원실 여러분께 큰 감사의 말씀 드리고 싶다”고 했다. Q. 반응도 뜨거웠죠?
A. “네. 저희는 더 많은 분들께 이 내용을 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이었는데 정말 많은 분들이 찾아주셨어요. 처음에는 몇천 명 들어오시는 것만 봐도 깜짝 놀라고 그랬는데 끝나고 보니 40만명에 달하는 사람들께서 찾아주셨네요.” Q. 특별히 기억에 남는 반응이 있었다면요?
A. “페이스북에 오셔서 응원글 남겨주시는 분들 한분 한분의 메시지가 다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건, 정진후 의원님께서 필리버스터 발언 도중 살아있는 민주주의의 현장, 생생한 민주주의의 경험을 많은 국민들께서 하고 계신다고 말씀하시면서 필리버스터 투데이를 언급해 주셨어요. 마침 생중계 요약을 하고 있었는데, 들으면서 깜짝 놀라 웃었습니다.” 8일 넘게 이어진 필리버스터를 3명이서 챙기는 건 체력적으로 벅찬 일이었다. 그는 “하루에 두세 시간 자면서도 제대로 된 요약을 위해 정말 열심히 집중해야 했다. 정말 몸이 많이 축났던 것 같다”고 말했다. 너무 힘들었던 시간이었기에 “새누리당이 타협안을 마련해줘서 얼른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Q. 그런 상황에서 결정된, 더민주의 필리버스터 중단 소식은 그들에게 어떻게 다가왔을까?
A. “새누리당에서 한 발짝도 안 물러나겠다고 하고 결국 더민주는 필리버스터를 끝까지 안 하기로 결정을 했죠. 조금 살 만해졌으니까 이제 몸이 좀 안 축나니까 기뻐야 하는데 그게 그렇지가 않더라구요. 의원님들께서 해주시는 소중한 말씀, 이제는 못 전해 드린다는 게 너무나 아쉬웠고 국민들과 정치인이 정말 소통하는 이 절호의 기회가 이대로 날아간다는 점이 너무나 속상했습니다.” 필리버스터 중단이 결정됐다고 해서 기록 작업을 중단할 순 없었기에 불편한 마음으로 모니터링을 하고 있는데, 심상정 정의당 대표의 일갈이 가슴을 울렸다고 했다. “심상정 의원님께서, 야당을 굴복시켰다고 기세등등한 새누리당에게, 당신들 발밑에 있는 패배자가 도대체 누구인가, 그것은 바로 여러분의 국민이다, 이러셨잖아요. 그때 갑자기 막 심장이 엄청 빨리 뛰기 시작하는 거예요. 이게 몸이 이상해서 이런 건지 사자후를 들어서 감동해서 그런 건지….” Q. 가슴 속에서 뭉클한 뭔가가 터진 거 아닐까요?
A. “잘 알 수는 없었지만 그런 기억이 납니다 ㅋㅋ.” 쇼동, 우석선생, 양사장, 3명은 올해부터 ‘하루 5분-스푼’이라는 이름의 ‘비영리’ 모바일 뉴스 큐레이션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했다. “지친 현대인들에게 중요한 이슈만, 좋은 기사만 모아서 하루에 5분간 편안하게 읽을 수 있게 시작한 비영리 프로젝트”라고 소개했다. 모든 전통언론사와 언론 관련 서비스 업체가 수익모델을 고민하는데 ‘비영리’를 강조하니 낯설었다. Q. 뉴스 큐레이션 등 디지털 서비스는 수익모델이 기본적인 화두인데, 비영리 프로젝트라는 건 어떤 의미로 봐야 하는지요?
A. “저희는 모바일 앱인 ‘하루 5분 스푼’을 통해서 수익을 창출하는 쪽으로는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어쩌면 영리 프로젝트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우리나라 대중의 영리를 위해 일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니까요. 팀 스푼은 앞으로도 비슷한 프로젝트를 꾸준히 해나갈 생각입니다.” Q. 모바일 앱 개발 비용이나 운영비도 많이 들 것이고. ‘비영리’라면 그런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나요?
A. “저희가 각자 본업을 가진 채 남는 시간을 이용해 재능기부를 한다는 생각으로 진행되고 있구요, 저희의 인지도가 높아지고 경험이 쌓인 후에는 사회적기업으로 전환할 생각도 가지고 있습니다.” 가슴이 시키는 대로 행동했기에 ‘필리버스터 투데이’ 운영도 가능했을 거다. ‘필리버스터 투데이’ 홈페이지의 시계는 이제 멈춰섰다. 임시국회 회기가 끝나는 3월10일을 시한으로 카운트 되던 시계였다. 남은 시간은 8일 4시간 26분 45초. 쇼동은 “남은 시간만큼의 소통은 앞으로 선거를 치르면서 모든 정치인들이 10배, 100배로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말했다. 홈페이지는 당분간 열려있다. 얼마 지난 뒤에는 필리버스터 기록의 흔적을 다른 페이지로 옮겨놓을 계획이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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