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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1975년 신년사 “국론분열 일삼으면 안보 위협”

등록 2016-02-19 16:36수정 2016-02-25 17:59

박정희-박근혜.
박정희-박근혜.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막전막후 61]
박 대통령 국회연설서 언급한 ‘국론분열’
박정희때 사용하던 용어 그대로 동원해
북 위협 명분 정권유지한 독재논리 빼닮아

여당과 보수 언론 “야당이 분열 앞장” 동조
그들이 말하는 비판근거는 합당한 것인가?
박근혜 대통령의 지난 2월16일 국회 연설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북한이 각종 도발로 혼란을 야기하고 남남갈등을 조장하고 우리의 국론을 분열시키기 위한 선전·선동을 강화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 사회 일부에서 북한 핵과 미사일 도발이라는 원인보다는 ‘북풍의혹’ 같은 각종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정말 가슴 아픈 현실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 모두가 북한의 무모한 도발을 강력 규탄하고 북한의 무모한 정권이 핵을 포기하도록 해도 모자라는 판에 우리 내부로 칼끝을 돌리고 내부를 분열시키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북한의 도발로 긴장의 수위가 최고조에 다다르고 있는데 우리 내부에서 갈등과 분열이 지속된다면 대한민국의 존립도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외부에서 닥친 위기 앞에 국민의 단결을 호소했습니다. 얼마든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연설의 몇 대목이 유난히 귀에 거슬렸습니다. 이유가 무엇인지 저 스스로 궁금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몇개의 단어와 표현 때문이었습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정부와 학교, 언론에서 유난히 많이 사용하던 구시대의 단어들 말입니다. ‘북한의 무모한 도발’, ‘혼란 야기’, ‘국론 분열’, ‘선전·선동 강화’ 같은 단어들 말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6년 현재의 상황을 40~50년 전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에 사용하던 단어와 개념을 동원해서 설명하고 있다는 것은 참 놀라운 일입니다. ‘박정희’ ‘국론 분열’을 검색어로 옛날 기사를 찾아보았습니다.

1975년 1월1일 <매일경제> 1면에 박정희 대통령 신년사 기사가 있었습니다. 제목은 ‘국론분열 일삼으면 안보 위협’이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중대시국을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국론의 분열만을 일삼게 된다면 국가의 안전보장은 또다시 정권투쟁의 제물이 되어 북괴 공산주의자들의 재침을 자초하는 비극을 낳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략) 박 대통령은 “과거 우리 조상들은 난국을 내다보면서도 설마하는 안일한 생각과 당쟁 때문에 국가안보를 소홀히 하여 급기야는 민족사에 커다란 오점을 남긴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지적, “유감스럽게도 작금의 일부 동태로 미루어볼 때 근본적인 상황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고 말했다.

1975년은 유신독재 시기의 한복판이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당시 북한의 위협을 명분으로 정권에 대한 도전을 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했습니다. 전형적인 독재 논리였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에서 몇개의 단어와 몇 가지 표현이 귀에 거슬렸던 이유는 아마도 과거 유신체제에 대한 저의 거부감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유신독재 시절 중고교를 다닌 저같은 사람은 ‘북한’보다 ‘북괴’라는 단어에 더 익숙했습니다. ‘사회통합’보다는 ‘사회불안’이라는 단어에 더 익숙했습니다. ‘국론’이라는 단어에서 ‘통합’이 아니라 ‘분열’을 연상했습니다. 심지어 ‘불순’한 사람으로 낙인찍히기 않기 위해 ‘순수’한 생각을 하려고 애썼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도 의식의 한켠에 그런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일종의 트라우마입니다. 참 슬픈 일입니다.

아무튼 박근혜 대통령은 연설에서 “안보위기 앞에서 여야 야, 보수와 진보가 따로일 수 없다”며 “국가안보와 국민의 안위는 결코 정쟁의 대상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북한이 로켓(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한 지난 2월7일 이후 언론은 야당이 뭐라고 주장하는지 제대로 소개한 적이 별로 없습니다. 뉴스의 대부분은 청와대, 통일부, 국방부 등 행정부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야당의 논리와 주장은 여당의 주장 뒤에 붙여서 간단히 소개하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안보 쟁점의 특성상 언론이 그럴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일부 보수 성향의 언론들은 기사와 사설 등을 동원해 야당을 매우 강력히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야당이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사드) 주한미군 배치와 개성공단 전면 중단에 반대했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엄중한 안보 위기 앞에 야당이 대안도 없이 한가한 소리나 하고 있다는 비판이었습니다. 야당이 북풍 의혹을 제기해 4·13 선거에서 정치적 이득을 보려한다는 비판이었습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전쟁 불안감을 부추긴다’는 비판이었습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국회 의원회관에서 새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국회 의원회관에서 새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김무성 대표도 가세했습니다. 2월15일 최고위원회에서 김무성 대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국회가 정치적 단결을 해도 부족한 시기에 야당에서는 ‘개성공단 폐쇄는 선거에 이용하려는 것이자 신북풍공작’이라는 터무니없는 중상모략으로 국민분열에 앞장서고 있다. 게다가 한반도 안보환경이 급변했는데도 자신들의 집권 시절 만들었던 대북포용정책을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발언을 하고 있는데, 북한 김정은 정권의 파렴치한 행각을 본만큼 제발 착각과 망상에서 벗어나주길 바란다.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개성공단 전면 중단은 단순한 찬반 문제가 아니며 여야가 정쟁으로 접근해야 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고 말한 것과 달리, 막후 실력자인 문재인 전 대표는 ‘냉전시대로 돌아가는 무모한 처사다’라는 식으로 비난을 하면서 당내 운동권세력 논리를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야당 내 발언 가운데 어느 것이 민낯이고, 어느 것이 가면인지 국민 앞에 정확하게 밝혀주기 바란다.”

“야당 내 운동권세력 등의 국론분열 발언은 북한 김정은 정권을 이롭게 하는 이적행위임을 인식하고 우리 국가의 안보와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총력대응에 야당도 적극 동참해줄 것을 촉구한다.”

이상하게도 야당은 이에 대해 별다른 반박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첫째, 논리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역량이 달리는 것 같습니다. 둘째, 남과 북, 미국과 중국의 무력시위 대결에 기가 눌린 것 같습니다. 여론지형이 불리한 탓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일부 보수 성향 언론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주장대로 과연 야당은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해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요? 정말로 북풍 의혹을 제기해 선거에서 이득이나 보려고 하는 것일까요? 문재인 전 대표는 4·13 선거에 눈이 멀어 전쟁 불안감을 부추기고 있는 것일까요?

이게 다 사실이라면 박근혜 대통령의 표현대로 우리 야당은 ‘국가안보와 국민의 안위를 정쟁의 대상으로 삼아’ 정치적 이득이나 보려는 한심한 집단일 것입니다.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10년 집권 경험이 있는 우리나라 제1 야당과 그 야당의 대선후보였던 유력 정치인이 국가안보 위기를 이용해 선거에서 이득을 보려는 수준의 집단이나 사람이라는 주장이 정말 사실이라고 믿어지십니까?

이럴 때는 자료를 다시 찾아보고 정확히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북한이 로켓(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한 직후 열린 지난 7일의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거듭된 경고를 무시하고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강행한 것은 한반도 평화에 무한한 도발이다. 강력히 규탄하는 바이다. 한반도 비핵화는 동북아 평화 안정을 지키는 대전제이다. 남과 북 정상들이 합의한 내용이기도 하다. 북한이 남과 북의 약속을 저버리고 핵무장을 가속화하는 것은 연쇄적인 핵무기 경쟁을 불러올 수 있는 위험천만한 일이다.

핵무기 전쟁은 평화에 역행하고 민족 대결의식을 고취할 뿐이다. 핵무기 개발은 북한을 더욱 고립시킬 뿐이다. 고립은 북한 주민의 생활을 더욱 어렵게 할 수밖에 없다. 북한이 주민들의 삶을 위해 선택할 것은 핵무기 개발이 아니라 국제 규범을 준수하고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 복귀하는 것이다.

핵 개발과 경제 발전은 함께 갈 수 없다. 이점에 있어서 북한은 과거 소련의 경험을 잘 인식해야 한다. 과거 소련이 핵이 없어서 국가가 무너진 것이 아니다. 국민의 삶에 대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핵을 개발한다 할지라도 결국은 와해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철저히 갖기 바란다.”

북한에 대한 강력한 규탄입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사드 배치를 전격 결정하자 더불어민주당은 “사드 배치는 대 중국 설득과 비용 문제에 대한 분명한 입장 정리가 반드시 선행되어야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고 우려하는 공식 논평을 냈습니다. 또 개성공단 전면 중단에 대해서는 “개성 공단의 전면 중단은 곧 남북 관계의 전면 차단이며 이는 남북 관계에 대결만 존재하고 교류와 협력은 존재하지 않는 냉전 시대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것”이라며 반대 의견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기자회견하는 문재인 대표 (서울=연합뉴스) 김현태 기자 =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표가 19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신년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6.1.19 mtkht@yna.co.kr/2016-01-19 10:10:38/
기자회견하는 문재인 대표 (서울=연합뉴스) 김현태 기자 =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표가 19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신년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6.1.19 mtkht@yna.co.kr/2016-01-19 10:10:38/
문재인 전 대표도 나섰습니다. 그는 지난 2월11일 트위터에 이런 글을 띄웠습니다. 좀 길지만 그대로 인용하겠습니다. 맥락을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현재 한반도는 6·25 전쟁 이후 최악의 총체적인 안보 위기 상황을 맞고 있습니다.

일차적인 원인은 분명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에 있습니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은 이러한 위기를 관리하고 해결하는 데 실패하고 있습니다. 개성공단 중단 결정으로 한반도는 더욱 위험해졌습니다. 개성공단은 남북관계의 완충지대로 최후의 안전판 역할을 해왔습니다. 정부가 스스로 안전판을 걷어차 버린다면 한반도의 불안정성은 더욱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역대 정부의 오랜 노력으로 이룩한 남북관계의 발전을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고 냉전시대 대치상황으로 돌아가는 무모한 처사입니다.

한반도 위기를 관리하고 국민을 안심시켜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는 정부가 오히려 위기를 키우고 국민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정말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입니다. 경제도 어려운데 안보마저 불안해 우리 국민은 심각한 이중고를 겪고 있습니다.

정부는 그동안 무비전, 무전략, 무행동으로 북핵 사태를 방치하여 왔고, 북한의 핵능력만 고도화시켰을 뿐입니다. 이제야말로 냉정한 전략적 판단이 절실한데도 정부는 즉흥적으로 그리고 감정적으로 개성공단을 중단시키는 자충수를 두고 말았습니다.

국내정치 목적의 정략적인 대응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잘 짜인 일련의 연속된 조치와 해법들이 절실합니다.

대북제재는 국제공조가 필수입니다. 또한 단계적이면서도 치밀하게 진행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실효적인 제재가 가능합니다.

개성공단을 중단한다면 이후에는 어떤 단계로 갈 것인지, 어떤 전략적 방법을 강구할 것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습니다. 과연 전략이 있기는 한 건지 의문입니다.

국제공조에 있어 가장 중요한 지렛대는 중국입니다.

그러나 군사전략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그 효용성이 제대로 검증이 안 된 사드배치 논의로 중국을 노골적으로 자극하고 국제공조를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것이 외교전략이고 대북정책인지 도대체 한심한 일입니다.

개성공단 중단은 제재의 실효성은 적은 반면, 오히려 우리 기업들의 피해가 막심합니다. 이미 실효성 없는 것으로 판명난 5·24 조치가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개성공단 입주업체들 뿐 아니라 협력업체들까지 포함하면 우리가 입는 경제손실 규모는 가늠하기 어려울만큼 큽니다.

나아가 우리 경제의 돌파구가 될 한반도 경제통일의 디딤돌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우리 경제의 미래를 포기하는 것이나 진배없습니다.

지금 한반도는 평화냐 무력충돌이냐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김정은 정권은 핵무기와 미사일이 결코 정권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히려 정권을 고립시키고 북한 인민의 고통만 가중시킬 뿐입니다. 우리 정부도 그 어느 때보다 냉정하고 치밀한 대응이 필요합니다.

정부는 개성공단 중단 결정을 철회하고, 6자회담 당사국 등 긴밀한 국제공조의 틀을 복원해야 합니다.

우리의 명운이 걸린 일입니다. 한반도 운명의 주인은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자신입니다. 위기가 곧 기회라는 각오로 한편으론 실효성 있는 국제제재를 강구하고, 다른 한편으론 근본적인 해법을 찾는 대화와 협상에 나서야 합니다.”

그리고 2월14일 다시 트위터에 이런 글을 띄웠습니다.

“1. 정부가 국민을 이렇게 불안하게 해도 되는 것입니까. 여당 일각에선 전쟁불사와 핵무장을 주장하고, 국민안전처는 전쟁발발에 따른 국민행동요령을 배포하고 있습니다. 위험천만한 발상입니다. 진짜 전쟁이라도 하자는 것인지, 자식을 군대에 보낸 부모들과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가는 국민들을 안중에나 두고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국민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진정한 안보입니다. 국민을 불안하지 않게 것이 정치의 역할입니다.

안보를 국내정치 목적으로 활용하면서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경제가 무너져도 상관없다는 식의 태도는 무모하기 그지없는 태도입니다. 안보를 책임져야 할 정부여당이, 무능한 것도 모자라 무책임하기까지 합니다.

2. 정말 심각한 것은 경제입니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이 124개에, 협력업체만 6,000개에 달합니다. 그동안 북한 노동자 임금으로 한 해 1억달러를 주고 우리는 5억달러가 넘는 이익을 봐왔습니다. 시설투자 피해만 2조원 상당에 달합니다. 이들 중소기업 피해가 막심합니다.

게다가 경제상황 전반이 안 좋습니다. 세계경제가 불안하고 주식도 급락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코리아 리스크를 줄이기는커녕 개성공단 중단으로 안보위기를 조장하고 있습니다. 코리아 리스크는 더욱 커졌습니다. 한반도에서는 평화가 없으면 경제도 없습니다. 평화가 곧 경제입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한국 경제의 돌파구, 한국 경제의 미래마저 정부 스스로 포기했다는데 있습니다. 개성공단 중단으로 북한에 진출하는 우리 경제의 출구가 막혔습니다. 사드 배치로 중국과의 경제협력도 흔들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가면 한반도 경제를 축으로 대륙으로 진출하는 우리 경제의 미래도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3. 박근혜 정부가 공언한 대북정책, 대외정책은 철저한 실패입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개성공단 중단으로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동북아평화 협력 구상도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 러시아와의 갈등으로 무너졌습니다. 러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가겠다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도 마찬가지 운명입니다. 박근혜 정부는 경제에 이어 안보와 외교에서도 무능을 드러냈습니다.

개성공단 중단으로 북한의 태도를 바꿀 수 있다는 건 오판입니다. 북한 핵무기 개발 자금줄을 끊었다고 하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북한은 매년 70~80억달러를 중국과의 대외무역으로 벌어들입니다. 개성공단 임금으로 벌어들이는 건 고작 1억달러정도입니다. 개성공단 폐쇄로 북한 핵무기 자금줄을 끊는다는 것은 애초에 말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개성공단을 중단한다고 해서 중국이 대북제재에 동참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중국과 러시아는 사드 배치에 반발하며 공조하는 태세입니다. 도대체 대한민국의 국익은 어디로 갔습니까? 정부여당은 과연 국익을 생각이나 하고 있는 것입니까?

4. 박근혜 정권의 무능으로 한반도는 강대국 간 힘의 각축장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한반도가 신냉전 갈등의 진원지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동북아 대결구도의 최대 피해자는 결국 우리입니다. 19세기 열강의 각축장이 되었던 아픈 역사를 또다시 반복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대한민국은 더 이상 열강에 휘둘리는 19세기의 힘없는 나라가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갖춘 나라입니다. 동북아 대결을 평화와 번영의 시대로 전환하고, 이를 주도해 나갈 저력이 있는 나라이고 국민입니다.

안보든 외교든 감정으로 풀어가선 안 됩니다. 국민 최우선, 국익 중심으로 현 상황을 냉정하고 차분하게 풀어가야 합니다. 그것만이 전쟁을 체제유지 수단으로 삼고 외교·안보를 무기로 국민을 다스리는 북한과 다르게 우리가 이기는 길입니다.”

문재인 전 대표의 말이 다 옳을 수 없습니다. 최근 사태에 대한 그의 인식과 처방에 대한 비판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들여다봐도 문재인 전 대표의 주장이 “전쟁 불안감을 부추기는 과거 좌파·운동권식 대북·안보관”은 아닌 것 같습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발언과 문재인 전 대표의 발언도 그리 큰 차이가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문재인 전 대표는 2012년 대통령 선거 공약에서 북핵문제 해결의 3원칙으로 ‘북핵 불용’, ‘9·19 공동성명 준수’, ‘포괄적 근본적 해결’을 내세웠습니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북미, 북일 관계 개선을 추구하면서 북핵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또 “집권 초기에 한반도 평화 구상 초안을 만들어서 한미, 한중 정상회담 등 주변국들과 정상회담에서 협의하고, 이후 남북정상회담을 통해서 실현가능한 방안을 완성시키겠다. 2014년에는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를 위한 6개국 정상선언을 도출하여 한반도 평화의 설계도를 그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물론 그는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했기 때문에 그의 이런 공약은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문재인 전 대표의 논리와 주장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실행되었던 대북포용정책의 연장선에 놓여 있습니다. 대북포용정책은 1998년부터 2007년까지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이었습니다. 간단히 ‘좌파·운동권식 대북·안보관’이라고 폄하할 일이 아닙니다.

따라서 야당을 국론분열 세력으로 몰아붙이는 일부 언론과 새누리당의 주장은 온당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국가 위기 사태를 이용해 국내 정치에서 반대 세력을 제압하려고 시도한다면 그건 정말 사악한 일입니다. 그런 음모와 공작은 박정희 독재 정권의 수법이었습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박승화 기자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박승화 기자
현재의 야당 세력은 북한의 핵실험과 로켓(장거리 미사일) 발사의 원인과 해법을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이라는 큰틀에서 찾고 있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세현 전 장관이 <경향신문> 김재중 기자와 지난 11일 인터뷰를 했습니다. 정세현 전 장관은 현재 야권의 대북 전문가 중에서도 비중이 큰 인물입니다. 내용 가운데 두 토막만 소개하겠습니다.

-정부는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장거리 로켓을 쐈는데 평소처럼 있을 순 없지 않느냐면서 북한 책임론을 편다. 어느 쪽의 책임이 더 큰가.

“어느 쪽의 책임이 더 큰가를 따지기 전에 핵개발을 중지시키기 위해서, 미사일을 중지시키기 위해서 개성공단을 폐쇄한 것 자체가 사리에 맞지 않다. 핵문제 성격부터 따져야 한다.

북한이 1990년대 초부터 핵개발을 하려다가 속된 말로 미국에게 들켰다. 클린턴 정부 때 핵활동 중단 대가로 수교협상을 시작하고 경수로를 지어준다는 약속을 받고 중단했다. 그러다 부시 정부 들어 2002년 10월 미국은 북한이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약속을 번복했다. 협상을 통해 다시 2005년 9월19일 9·19 공동성명이 만들어진다.

거기 보면 북한의 핵폐기 대가로 미·북수교, 일·북수교,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 등이 약속돼 있다. 북한은 그때 약속을 지켜달라는 것이다. 수교해주고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해달라는 것이다. 당시 중국과 러시아, 일본도 공감대가 형성됐다. 그걸 합의해놓고 미국은 다시 방코델타아시아(BDA) 제재로 약속을 깼다. 그간 북한이 핵폐기 수순을 밟으려고 했을 때는 어떤 때였나. 수교와 평화협정이 핵폐기의 반대급부라는 기대가 있어서였다.

그런 저간의 사정을 다 빼버리고 핵실험은 나쁜 짓이라고 하면서 제재해야 한다는데 제재로 풀릴 일이 아니다. 처음부터 제재하든지, 제재가 아니라 협상으로 반대급부를 주겠다고 해놓고 안주니까 결과적으로 북한의 핵능력은 커졌다. 제재가 약해서 북한이 핵실험을 네번이나 했다, 미사일을 개발했다, 이런 논리는 그야말로 형식논리다. 이런 논리는 표면적인 현상은 설명할 순 있으나 북핵문제 본질은 설명하지 못한다.

북한 체제 안정에 대한 보장, 군사적 공격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없으면 핵을 내려놓지 않겠다는 것이 북한의 입장인데, 북한의 말은 뭐든지 거짓말이라고 단정하고 압박으로 풀어야 한다는 논리가 미국에도 유행하고 우리 사회를 지배한다는 것이 비극이다. 이런 식으로 해선 안된다.

북한이 핵능력을 이만큼 키운 동기나 원인이 무엇인지, 미사일 사거리가 왜 늘어났는지를 곱씹어보고 원점으로 돌아가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야 한다. 제재가 약해서 그렇다, 국제사회 준비 안됐으니 우리가 선도해야 한다는 것은 잘못이다.”

-북핵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하는 것인가?

“북핵 문제는 제재와 압박으로 해결이 안되는다는 것이 입증됐다. 유엔 안보리 제재가 4개나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북핵 능력은 날로 강화되고 미사일 기술은 날로 고도화됐다. 제재와 압박이 소용 없었다는 반성은 안하고 제재와 압박이 약해서 그렇게 됐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해가 안된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로 받아내려는 것이 너무 분명하고 어떤 면에서 미국도 알고 있다. 그런데 그걸 주기 싫어하는 것이다. 미국 입장에선 북핵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고 나면 중국 압박 카드도 없어지고, 한국 무기시장도 없어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 정부는 거기에 앞장을 서고 있다. 이 정부는 자신이 선택한 대북정책이 결국 우리 민족과 우리 국가의 이익이 되는 것인지, 미국 군산복합체의 이익이 되는 것인지 모른채 가고 있다.”

정세현 전 장관의 진단과 해법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에서 나온 것입니다. 문재인 전 대표의 대안과도 일치하는 것입니다. 물론 정세현 전 장관의 견해가 다 옳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시각은 ‘북한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근본적 해답’을 찾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거칠고 단순한 시각과 큰 차이가 있습니다.

어느 쪽이 더 지혜롭고 현실적인 시각인지, 어느 쪽이 한반도와 우리 민족의 장래에 이로운 시각인지 차분히 따져 보시기 바랍니다.

2005년 9·19 공동성명은 제4차 6자회담의 결과물입니다. ‘6자회담의 목표가 한반도의 검증가능한 비핵화를 평화적인 방법으로 달성하는 것임을 만장일치로 재확인’한 것입니다. 이런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계획을 포기할 것과, 조속한 시일 내에 핵확산금지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조치에 복귀할 것을 공약하였다.”

“미합중국은 한반도에 핵무기를 갖고 있지 않으며, 핵무기 또는 재래식 무기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공격 또는 침공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대한민국은 자국 영토 내에 핵무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1992년도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남북 공동선언」에 따라, 핵무기를 접수 또는 배비하지 않겠다는 공약을 재확인하였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가 2월19일치 중앙일보에 칼럼을 썼습니다.

“한국이 중국·러시아와 관계를 정상화한 상황에서 북한과 미국·일본의 국교정상화는 북핵체제 해체의 최소 필수경로가 된다. 이 처음 길로 다시 돌아가자. 정전체제 절반을 붕괴시킨 한·중-한·소 수교와 남북기본합의-한반도 비핵화-유엔 동시가입을 함께 이뤄냈던 노태우-이홍구의 ‘사실상의 두 국가’ 전략의 지혜 절반을 마저 채워 완성하자.

정전체제의 나머지 절반을 해체해 한·중-한·소 관계 수준으로 북·미-북·일 관계가 개선되면 비핵화와 한반도평화협정은 불가능하지 않다. 비핵화, 북·미 관계 개선, 한반도평화체제의 3중연동을 말한다. 우리는 한·미 동맹, 한·중 국교정상화 및 제일교역국가화, 주한미군 주둔, 미국 핵우산, 국제 지지를 확보하고 있다는 자신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럴 때 비핵화는 대화와 제재의 결합이 지름길이다. 양자택일이 아니다. 북핵 위기 초기 ‘대화 국면’ 동안 이뤄낸 북·미 대화-남북대화와 북핵 동결-핵 능력 강화 지연의 교환은 상당한 소득이었다. 만약 외환위기 시점에 북핵 위기까지 악화됐다면 경제와 안보의 이중국가위기는 정말 극복하기 어려웠을 것임에 틀림없다. 오늘의 심화되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북핵으로 인한 안보 위기를 시급히 극복해야 하는 연유다.”

박명림 교수가 제시한 해법은 결국 북한 핵문제를 한반도 평화의 틀 안에서 입체적, 포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최근 제가 접한 북핵 해결 방안 가운데 가장 깊이가 있으면서 동시에 현실적인 처방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관련영상] ‘박근혜발 북풍’, 대통령의 무지와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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