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오른쪽)가 27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연 `청년 앞으로! 새누리당 2030 공천 설명회'에서 한 청년 지지자에게 자신의 캐리커처를 선물받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저는 국가대표 흙수저입니다.”
27일 국회 의원회관 제2세미나실. 새누리당이 4월 총선 출마를 희망하는 40세 미만 청년 예비후보 21명을 상대로 공천룰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인천 중·동구·옹진군 지역구에 출마한 서명훈(39)씨가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서씨는 자신을 “청년, 장애인, 5·18민주유공자이자 농민의 아들, 국가대표 흙수저, 3남매 다둥이 아빠, 전남 함평 출신”이라고 했다. 그는 서경원 전 의원의 아들이다. 서 전 의원은 1988년 밀입북해 김일성 주석을 만나고 왔다가 간첩 혐의로 옥살이를 했다. 서명훈씨는 해병대에 입대해 1999년 연평해전 당시 연평도에서 도서방어 작전을 수행했다고 한다. 이후 공기업에서 일하다 1년간 육아휴직을 했는데 ‘여러가지 이유로’ 해고됐다. 그는 현재 ‘대한민국 아빠육아휴직 운동본부’라는 민간단체를 이끌며 아빠 육아휴직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다. 해병대 군복을 입은 그는 아내와 7살, 4살, 17개월짜리 아이 셋을 함께 데리고 나왔다. 그는 “정치신인과 청년, 장애인, 국가유공자에게 (공천에서) 가산점을 주는 이런 획기적인 정당이 있었습니까. 사회적 약자를 배려해준 당 지도부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21명 청년 예비후보 중에는 서씨처럼 스스로 ‘흙수저’의 삶을 살아왔다고 하는 이들이 여럿 있었다. 경기 성남 수정구에 출마한 변환봉(39) 예비후보는 “아버지는 사우디에서 10년간 건설노동자로 일하셨고 69살인 지금도 개인택시를 하고 계신다. 어머니도 파출부를 거쳐 식당 일을 하고 계신다. 부모님의 희생을 발판으로 노력해 변호사가 됐고 어느 정도 사회적 위치를 얻었다”면서 “노력한 만큼 꿈을 이룰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성훈(38·경남 양산) 예비후보도 “저는 지방대 콤플렉스가 있다”며 “금수저를 물지 않고 태어났더라도 그런 친구가 전문영역에서 노력해서 정치를 할수 있다면 그것이 우리 사회가 공정하고 발전해갈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들 가운데 가장 젊은 후보는 28살 배관구(부산 사하을) 예비후보와 최진범(인천 남동갑) 예비후보였다. 31살의 최재민(강원 원주시을) 예비후보는 이번이 벌써 세번째 국회의원 도전이었다. 청년후보들은 새누리당의 상향식 공천 제도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공천을 받기 위해 돈을 쓰거나 ‘권력자’ 주변에서 기웃거리지 않아도 되고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리라는 희망 때문이었다. 김세환(40·대전 중구) 예비후보는 “저 스스로 새누리당에 왔다. 이유는 단 한가지다. 당대표가 말한 오픈프라이머리 때문이다. 그것이 아니었다면 제가 빽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새누리당 입당하는 용기를 못 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영섭(38·서울 관악갑) 예비후보도 “새누리당의 상향식 공천은 큰 기회이자 도전이다. 상향식 공천이 아니었다면 지역 주민들을 만나고 얘기하는 게 아니라 여의도 어딘가에서 돌아다니고 있어야 할지도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공천룰에 대한 실무적인 이야기를 나누면서는 현실정치의 벽에 부딪히는 신인들의 고충을 쏟아냈다. 김세환 후보는 “지역구에 현직 의원이나 구청장 등이 경쟁 후보로 많이 나온다. 내가 청년신인이라 가산점 20% 받아 언론에서도 조명해준다. 하지만 항상 그 뒤에서 하는 말이 ‘20% 가산점 받아도 소용없다. 경선 후보를 2~3명으로 압축될 때 저 친구 분명히 빽 없어서 서류에서 떨어진다’고 말한다”며 “저는 정말 빽은 없지만 김무성 대표님 빽 믿고 있다”며 절실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현역 의원들은 예비후보로 등록하지도 않은 채 현역 프리미엄을 누리며 자유롭게 선거운동을 하지만 정치신인들은 선거운동에서 제한되는 불만도 토로했다. 이주형(40·경북 경주) 예비후보는 “우리는 당원명부가 없다. 경선에서 당원 투표 30%인데 그분들 상대 선거운동이 어렵다. 우리가 가산점 받도록 돼있지만 기존 정치인 기득권에 비해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이들의 불만과 질문에 시원한 답을 주지는 못했다. 박종희 사무부총장은 “당원명부는 개인신상정보라 예비후보에게 다 줄 수도 없고 악용 사례도 있다. 경선 등록 즉시 안심번호(휴대전화번호를 가린 임시번호)로 당원명부를 주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김무성 대표는 “그런 점을 감안해 가산점을 20% 준다. 더 주면 본선경쟁력이 약화된다. 20%도 상당히 높다. 그 정도로 만족하시라”고 했다. 대신 김 대표는 2030 후보에 한해서 선거 경비를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이 없는지 연구하겠다고 했다.
두시간가량 진행된 설명회를 끝까지 지키며 이들의 이야기를 들은 김무성 대표는 고무된 듯한 모습이었다. 김 대표는 “그동안 새누리당 안에서 인재영입이 없다고 얼마나 몰리고 당했는지 외로움을 많이 느꼈는데 오늘 2030 후보만으로도 이렇게 많은 인재들이 새누리당에 출마한 것을 보고 큰 감격을 느끼고 마음이 굉장히 행복하다”고 했다. 그는 선거운동에 활용하라는 뜻으로 21명 후보 모두 개별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다.
상향식 공천은 김무성 대표가 정치생명을 걸고 추진하는 그의 ‘작품’이다. 주변에선 그가 지난 총선 당시 공천에서 탈락한 경험 때문에 공천권을 당 지도부가 아닌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의지가 강하다고 한다. 친박계 등에서는 “물갈이를 위해선 전략공천이 필요하다”며 김 대표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아래로부터 공천이라는 명분은 있지만 실제로 이 방식이 현역에 유리할지, 신인에 유리할지는 누구도 장담 못한다. 또 상향식 공천제도에서는 당 지도부가 공천에 개입할 수 없다고 하지만, 김 대표는 서울 마포갑 경선에 나선 안대희 전 대법관에게 최고위원직을 줘 공정성을 훼손했다는 지적도 받았다. 대의명분을 등에 업고 출발한 김무성표 상향식 공천이 정치신인들에게 희망이 될지 실망으로 바뀔지, 상향식 공천의 흥행 여부는 3월께 확정될 공천 결과와 4·13선거결과에 따라 판가름날 것이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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