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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입? 육성? 야구·정치판 달군 ‘스토브 리그’

등록 2016-01-19 12:18수정 2016-01-19 14:00

정치BAR_이승준의 핑퐁
시즌이 끝난 뒤 선수 영입과 연봉 협상 등을 진행하는 프로야구의 스토브 리그는 이제 마무리 단계입니다. 선수단 구성을 마친 각 팀은 따뜻한 외국으로 전지훈련을 떠나는 등 4월에 개막하는 새로운 시즌을 착실히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반면 정치권의 스토브 리그는 한창 진행 중입니다. 4월 총선을 앞두고 각 당은 인재 영입과 총선 전략 수립에 골몰하고 있습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과, 안철수 의원의 국민의당은 인재 영입을 경쟁적으로 발표하는 모습입니다. 반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1월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야당의 ‘인재 영입’을 “전략공천으로 선정하는 뿌리 없는 꽃꽂이 후보”라고 비판했습니다. 새누리당의 ‘새 얼굴’은 “상향식 공천으로 지역에서 출발하는 생명력 있는 풀뿌리 후보”라고 주장했죠.

프로야구 팀마다 조금씩 차이를 보이는 선수 육성과 자유계약(FA)선수 영입 스타일이 최근의 정치권 상황과 겹쳐지기도 합니다. 새누리당은 삼성라이온즈, 더불어민주당은 한화이글스·롯데자이언츠, 국민의당은 신생구단인 KT위즈, NC다이노스의 행보와 연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의당은 두산베어스·넥센히어로즈, 녹색당은 고양원더스에 비유할 법도 합니다. (특정 구단, 특정 정당을 폄훼하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1. ‘있는 집 자식’? 새누리당과 라이온즈의 시스템 야구

삼성라이온즈는 한때 한국 프로야구계의 ‘악의 축’이었습니다. 2004년 삼성은 리그를 대표하는 거포와 유격수인 심정수·박진만 등 FA선수들을 잡는데 166억원을 들이부었습니다. 당시 삼성 선수단 연봉총액이 39억원 정도였다니 엄청난 돈이었죠. 재계 1위인 모기업의 자금력을 유감없이 자랑한 라이온즈는 그뒤로 ‘돈성’이라고 불리며 팬들의 비판을 한몸에 받았습니다. 2004년에 2위, 2005년과 2006년에 우승했지만 그뒤로는 또 중위권이었습니다.

비싼 선수를 돈으로 사오는 게 성적으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라이온즈는 그 뒤로 외부 FA영입보다 육성 시스템 구축에 힘을 쏟았습니다. 당장 1군에서 뛸 수 없는 신인들을 육성하는 ‘B.B.아크(Baseball Building Ark·다른 팀으로 치면 3군)’를 만들고 능력있는 코치진을 다수 투입해 유망주 육성에 집중했습니다. 또 부상 선수들의 재활을 전담하는 STC(삼성트레이닝센터)를 만들어 야구 생명이 끝난줄 알았던 선수들을 부활(?)시키고 있습니다. STC는 팬들 사이에서 ‘죽은 자도 살리는 곳’으로 통합니다. 탄탄한 시스템 구축은 ‘화수분 야구’로 이어졌습니다. 다른 팀들은 부상이나 병역 의무 때문에 생기는 공백을 메우는 데 어려움을 겪는데 라이온즈는 자체적으로 키운 선수들이 1군으로 올라와 제 몫을 하는 ‘선순환 구조’가 구축됐습니다. 이는 4년 연속 통합우승(시즌1위·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라이온즈의 ‘장기집권시대’를 열었죠.

영입된 외부인사는 ‘꽃꽂이 후보’라는 김무성 대표의 발언은 시스템 야구를 향한 삼성라이온즈의 자신감과 겹쳐집니다. 지지 기반이 탄탄하고 정당 시스템이 안정적인 새누리당 입장에서 ‘인재 영입’이라는 이벤트는 필요없다는 자신감의 표현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새누리당이 당내에서 좋은 정치인을 육성하고 키워 선거에 내세울 것이라는 전망에는 아직은 물음표를 찍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1월10일 갑작스레 인재영입이라며 발표한 전희경(41) 자유경제원 사무총장, 박상헌(52) 정치평론가, 최진녕(45) 전 대한변호사협회 대변인 등 6명을 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교과서 국정화에 앞장섰거나, 종합편성채널 출연 외에 뚜렷한 경력이 없는 인사들이라는 혹평이 정치권 안팎에서 쏟아졌습니다. 안정적이고 탄탄한 시스템을 자랑하면서 기대에 못미치는 행보를 한 것입니다. 새누리당은 라이온즈처럼 화수분 야구의 길을 갈 수 있을까요?

2. “더 이상의 실패는 없다” 더불어민주당과 이글스·자이언츠의 절치부심

한화이글스와 롯데자이언츠는 이번 스토브 리그에서 ‘큰 손’이었습니다. 이글스는 불펜투수인 정우람(84억원), 선발·불펜 모두 활용가능한 심수창(13억원)을 FA로 데려오는 데 97억원을 썼습니다. 지난시즌에도 이용규·정근우를 잡는 데 큰 돈을 썼죠. 자이언츠는 투수인 손승락(60억원), 윤길현(36억원)을 영입하는 데 96억원을 지출했습니다. 두 팀 모두 열혈 팬, 고정 지지층을을 보유한 구단입니다. 수년간 중하위권에 머물며 가을야구를 못하고 있는데 더 이상 팬들을 실망시킬 수 없는 상황이죠. 두 팀에 라이온즈의 시스템 야구를 주문하는 것은 ‘사치’일 수도 있습니다. 당장 성적을 내려면 어느 정도 검증된 선수들을 데려와 팀 전력을 단기간에 강화시켜야 한다는 판단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연이은 선거 패배와 탈당·분당에 몸살을 겪으며 당 기반 자체가 무너진 더민주는 최근 인재 영입을 연이어 발표하고 있습니다.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 김병관 웹젠 의장, 김빈 디자이너, 양향자 전 삼성전자 상무, 김정우 교수 등 대중적 인지도가 있거나 각 분야의 전문가들, 또 스토리가 있는 분들입니다. 침체된 당 분위기를 바꾸고 지지자들에게 총선 승리 희망을 주기 위한 카드로 외부 인사 영입, 새 피의 ‘수혈’을 선택한 것입니다.

한화이글스가 ‘승부사’ 김성근 감독을 데려오듯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을 모셔오기도 했습니다. 두 분 모두 자신의 분야에서 독보적인 성과를 내신 분들인 동시에 누구도 컨트롤하기 힘든 강한 개성을 가진 분들이라는 공통점이 있기도 하네요.

정치학자나 정당에 오래 몸을 담으신 분들은 깜짝쇼 형식의 인재 영입에 비판적 견해를 보입니다. 변호사나 벤처기업인 등 전문가의 경험도 중요하지만, 정치라는 전문 분야 역시 오랜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행정부를 견제해야 하는 입법부에 초선 국회의원들이 많다보니 국회의 정부 견제 기능이 떨어진다는 우려도 많습니다. 더민주 입장에서도 이러한 우려와 비판을 수긍하지만, ‘없는 집 자식’ 입장에서 당장 4월 총선에서 성과를 내야한다는 절박감이 더 큰 것 같습니다.

물론 더민주에게도 롤모델은 있습니다. 작은 규모, 소소한 자금력으로도 전력을 유지하는 넥센히어로즈의 길이 있습니다. 넥센히어로즈는 철저한 계산에 바탕을 둔 선수 구성과 육성으로 최근 몇년간 가을야구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메이저리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명단장 빌리 빈에 비유되는 이장석 대표와 제갈량의 지략을 갖췄다는 염경엽 감독은 한정된 자원으로 외부 선수 영입 없이 박병호·강정호·손승락·서건창·조상우 등의 스타를 키워내고 팀 전력을 업그레이드 했습니다.

3. 신생팀의 딜레마…국민의당과 다이노스·위즈

2013년에 1군무대에 진입한 신생팀 NC다이노스는 첫해 7위에 머물렀지만 2014년·2015년 시즌 모두 3위에 올라 우승을 노리는 팀이 됐습니다. 이호준이라는 베테랑 타자를 중심으로 나성범·이재학 등 신인들이 조화를 이루며 무시할 수 없는 팀이 됐습니다. 지난해 1군 무대에 들어와 최하위를 기록한 KT위즈 역시 이번 스토브 리그에서 넥센히어로즈의 베테랑 유한준을 영입해 기존의 어린 선수들과 조화를 꾀해 올시즌 도약을 노리고 있습니다. 신인들 위주의 팀에 ‘야구를 할 줄 하는’ 베테랑의 존재는 큰 도움이 됩니다.

안철수 의원이 창당을 추진중인 국민의당 역시 신생팀 전략을 취하는 모습입니다. 더민주를 탈당한 김한길·문병호·최원식 의원 등을 영입해 신생팀에 부족한 부분을 채웠습니다. 또 윤여준·한상진 등 원로급 인사에게 창당준비위원장을 맡겼습니다. 정치와 정당을 잘 아는 인사들을 배치해 단기간에 팀다운 팀을 만들려는 모습입니다.

물론 국민의당은 곧 딜레마에 직면할수 있습니다. 당장 기본 전력은 갖췄지만 팀 색깔을 빨리 찾지 못할 경우 다른 정당과 차별화를 꾀하기 힘듭니다. 이는 좋은 성적으로 이어지기 어렵습니다. 또 베테랑 위주의 팀을 구성할 경우 경기 운영은 안정적일 수 있지만, 우승을 노리기 위해서는 파이팅 넘치는 신인들의 활력도 필요합니다. 물론 신생팀은 괜찮은 선수 영입이 쉽지 않기도 합니다. 국민의당은 신생팀의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4. 정의당에 필요한 화수분 야구, 고양원더스의 성공을 꿈꾸는 녹색당

정의당은 최근 수도권 후보를 발표하는 등 발빠르게 총선 채비에 들어갔습니다. “정의당은 다릅니다”, “정의당을 크게 써주십시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있습니다. 노회찬·심상정이라는 ‘슈퍼스타’를 배출한 정의당은 최근 조성주 정의당 미래정치센터 소장, 김종대 국방개혁기획단장 등의 인재를 수혈했지만 그 이상의 새로운 인물을 내세우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도 사실입니다. 연습생 김현수를 메이저리거로 키운 두산베어스나 ‘만년 유망주’ 박병호를 슈퍼스타로 키워낸 넥센히어로즈의 선수 육성 전략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이계삼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 사무국장, 하승수 공동운영위원장 등으로 이뤄진 녹색당은 이번 총선에서 외인구단의 위력을 보여주려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변방의 선수들로 구성된 외인구단 ‘고양원더스’는 프로야구 팬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며 선수들을 키워내 프로야구 1군무대에 진출시키는 기적을 일궈냈습니다. 녹색당의 도전이 우리 정치권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올 수 있을까요?

겨울 내내 땀을 흘린 프로야구 팀들과 각 정당들이 4월에 좋은 성과를 내길 기대해봅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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