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들이 4·13 총선을 앞두고 ‘의정활동 보고’를 활용한 마지막 홍보전에 공을 들이고 있다. 총선 91일 전인 ‘1월13일’까지는 의정보고 활동을 통해 사실상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현역 프리미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다. 의정활동 보고 과정에 쓰이는 ‘의정보고서’도 덩달아 진화하고 있다.
‘새누리당 호남 의원 1호’인 이정현 새누리당 최고위원(전남 순천·곡성)은 연말·연초를 의정보고회에 ‘올인’하고 있다. 지난달 23일부터 지역구를 면·동 단위로 쪼개 28번의 의정보고회를 열고 있다. 의정보고회는 공직선거법이 허용한 마지막 날인 오는 13일에야 마침표를 찍는다. 이 최고위원은 5일 하루에만 순천 지역구 3곳을 누비며 의정보고를 했다. 1~2번에 의정보고회를 몰아서하기도 하는 같은 당 영남권 의원들과는 대조적이다. 야당 후보들의 거센 도전으로 치열한 ‘방어전’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최대한 많은 의정보고회를 열어 지난해 공약 실현 성과와 예산 확보 실적을 유권자에 알리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 최고위원은 단순히 의정보고회의 횟수만 늘리지 않았다. 의정활동 실적을 압축적으로 담은 ‘의정보고서’에도 각별히 공을 들였다. 보고서는 의정보고회에 참석한 유권자에 배포될 뿐만 아니라, 유권자의 거주지로도 발송되기 때문이다. 이번 의정보고서는 8면짜리 ‘신문’ 형식으로 처음 만들어졌다. 신문 의정보고서에는 1면 머릿기사 제목이 <‘이’런 일들이 ‘정’말로 ‘현’실화 되고 있습니다!>로 달려있고, 8개 면의 기사·사진·광고에는 의정활동 성과들로 빼곡하게 채워졌다. 의원실 관계자는 “신문 의정보고서는 유권자의 눈길을 잡을 수 있고 내용의 객관성도 부각시킬 수 있다”고 했다.
같은 당 김학용 의원(경기 안성)도 ‘김학용표 의정보고서’ 개발에 신경을 썼다. 지난해 말 ‘2015년 의정보고서’ 외에도 ‘2012~2015년 종합 의정보고서’를 따로 만들었다. 총선을 앞두고 4년 의정생활을 홍보하는 ‘선거 맞춤형 보고서’인 셈이다. ‘2015 사진으로 보는 의정활동’ 사진첩도 별도로 제작했다. 유권자가 공을 들여 글자를 읽지 않고도 한 눈에 의정 활동을 볼 수 있게 하자는 취지다.
의원들의 입소문을 타고 ‘의정보고서 트렌드’가 생겨나기도 한다. 2015년 대표 트렌드는 모바일 의정보고서였다. 강기윤 새누리당 의원(경남 창원·성산)은 ‘서민근로자의 대변자’라는 제목의 ‘모바일 의정보고서’를 조만간 유권자들에게 배포할 예정이다. 모바일 의정보고서에는 인쇄된 의정보고서에 들어간 내용 이외에도, 강 의원이 국회 상임위원회와 대정부질문에서 질의하는 동영상과 지역 유권자를 만나는 동영상들도 담겼다. 얼마 전 유승민 의원도 원내대표 시절 ‘명연설’로 박수 받은 교섭단체 대표연설 영상 등을 담은 모바일 의정보고서를 뿌리기도 했다. 모바일 보고서는 인쇄 보고서와 달리 저렴한 비용으로 짧은 시간 안에 완성해 유권자에 전파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인쇄 의정보고서는 유권자 7만5000가구에 발송하는 데 3000만원 이상 들지만, 모바일 보고서는 100만원 안팎이다. 모바일 의정보고서 제작업체인 포유비아의 장태성 대표는 “(기존 의정보고서는) 인쇄하고 발송까지 며칠이 걸리지만, 모바일로는 2시간이면 완성된다”며 “동영상 등 콘텐츠를 수시로 바꿀 수 있고, 한번 만들면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등 모든 SNS에서 활용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휴대전화번호를 확보한 유권자에만 제한적으로 전송이 가능해 아직까지는 인쇄 의정보고서의 보완용으로 활용되는 정도다.
의원들이 모바일 의정보고서에 주목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공직선거법에 따라 의정활동 보고 행위는 선거 90일 전인 1월14일부터는 금지된다. 그러나 인터넷홈페이지, 전자우편, 문자메시지를 통한 의정 보고는 제한이 없다. 같은 내용으로 의정보고서를 만들어도 인쇄물은 발송이 금지되지만, 모바일로는 전송과 공유가 가능한 것이다. 또다른 의원실 관계자는 “(공직선거법의) 제한을 받지 않는 것이 모바일 의정보고서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했다.
명함이나 소책자 정도로 크기를 줄인 ‘포켓형 의정보고서’도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자신의 이력이 적힌 명함을 유권자에 돌리면서 의정 홍보도 쉽게 할 수 있다는 게 매력이다. 여야가 따로 없다. 새누리당에선 김태원·안효대·김종훈·신동우·이운룡·이종훈·함진규·장정은 의원 등이, 더불어민주당에선 김영주·유은혜·진성준 의원 등이 포켓형 의정보고서를 유권자들에 돌렸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인쇄 의정보고서는 대부분 쓰레기통으로 들어가지만 포켓용은 유권자의 주머니에 들어가기도 한다”며 “3~4만부에 200만~300만원 정도로 저렴하다”고 했다. 포켓형 의정보고서 열풍 이후, 선거홍보물 제작업체에선 연하장과 의정보고서를 접목한 ‘연하장 의정보고서’를 내놓는 등 ‘퓨전 의정보고서’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다.
보좌진들 사이에선 의정보고서가 ‘최대 스트레스’로 통한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짜내야 하고 엄청난 분량의 자료도 요약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쇄된 수만~수십만장의 보고서를 일일이 접고, 주소 스티커를 붙여야 하는 것도 그들의 일이다. “1년간 1만장이 넘게 찍은 사진에서 몇장을 추리느라 힘들었다”고 하소연하는 보좌진도 있다. 또다른 보좌진도 “의원이 사진 하나, 문구 하나에도 예민하게 굴어서 30번 넘게 시안을 수정한 적도 있고 (배송) 업체에서 몇 천 세대를 빠뜨렸다고 엄청 깨진 적도 있다”며 “의정보고서는 일년 농사의 수확이기도 하지만, 일년 중 최대 스트레스를 주기도 한다”고 했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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