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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D-2년…아직은 몰랐다, 차기 대통령

등록 2015-12-31 20:03수정 2016-01-05 10:53

정치BAR_돌아보니 희망도 낙담도 섣부르네

다음 대선까지 2년도 안 남았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이후 이 시점에 차기 대통령이 확실히 드러났던 경우는 없었다. 박근혜·이명박 대통령은 역대 어느 후보와 견줄 수 없을 만큼 강했지만 위험 요인이 잠재돼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인제 대세론을 뒤엎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고 김대중·김영삼 대통령은 눈앞에 어른거리는 대권을 향해 조심히 한 발 한 발 내딛고 있었다. 역대 대통령들의 대선으로부터 ‘D-2년’ 상황을 정리했다.

박근혜, ‘역대 최강’과 신기루 사이

2011년 1월, 박근혜 의원은 독보적인 차기 대통령감이었다. 2010년 6월 세종시 수정안을 부결시키며 존재감을 드러낸 그는 12월20일 ‘한국형 복지모델’을 공개하며 대선 엔진에 시동을 걸었다. 12월27일에는 정책연구소까지 띄웠다.

2011년 새해를 맞아 각 언론사가 벌인 여론조사를 보면, 박 의원은 30~40%의 지지율로 유시민 국민참여당 정책연구원장, 오세훈 서울시장, 손학규 민주당 대표, 김문수 경기지사 등을 멀찌감치 따돌렸다. <문화방송>(MBC) 조사에선 42.3%로 ‘마의 40% 벽’을 뚫기도 했다.

그에 대한 지지는 연령과 지역, 지지정당을 가리지 않았다. <한겨레> 2010년 12월27일 조사를 보면, 20대(29.2%)와 30대(32.7%)에서도 2위 유시민 정책연구원장을 15%포인트 이상 따돌렸고 대구·경북(56.4%)은 물론 광주·전라권에서도 22.6%의 지지율로 1위를 차지했다. 손학규 대표(16.9%)와 정동영 최고위원(14.4%)의 지지율을 웃도는 수치였다. 민주당 지지자의 20.2%, 민주노동당 지지자의 19.2%, 진보신당 지지자의 14.5%가 박 전 대표를 ‘선택’했다.

하지만 지지층 중 절반이 ‘마음을 바뀔 수 있다’고 답해 높은 지지율이 신기루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특히 박근혜를 지지한다는 한나라당 성향 응답자의 45.9%가 지지 후보 변경 가능성을 표시했는데, 실제 2011년 가을 ‘안철수 현상’이 시작되자 박근혜는 허무하게 1위 자리를 내놔야 했다.

[관련 영상] ‘2017 대선’, 절박한 쪽이 이긴다 /김보협의 더 정치

이명박, 청계천에서 승천 준비

한나라당 지지자들에게 2006년은 정권 탈환의 꿈이 더욱 커지는 해였다. 2005년 10월 청계천 복원에 성공한 이명박 서울시장은 12월 <한겨레> 여론조사에서 22.3%의 선호도를 얻어, 부동의 1위를 달리던 고건 전 총리(18.9%)를 2위로 밀어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15.5%로 3위였다. 여권의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4.9%,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은 1.3%로 존재감이 없었다.

이명박이 박근혜를 제치고 야권 후보 중 1위로 치고 나가기 시작한 것도 청계천 복원 이후였다. 이명박은 30대와 40대, 화이트칼라 및 자영업자, 대학 이상 계층에서 선호도가 높았다. 이명박의 급부상은 ‘청계천 효과’뿐 아니라 박근혜가 있어서 가능했다.

“이 시장은 강정구 교수 사건과 사립학교법 사태도 비켜가고 있다. 박근혜 대표가 ‘수구꼴통’이라는 ‘독박’을 쓰고 있는 동안, 이 시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음으로써 합리적이라는 이미지를 챙기고 있다.”(<한겨레> 2005년 12월30일 성한용 칼럼)

당시 이명박은 대중들에게 ‘개혁적’인 사람으로 비쳤다. 국회의원, 대학교수, 정치부 기자 등 전문가 조사에서 이명박은 대선 예비후보 중 박 대표 다음으로 보수적이라고 꼽혔지만 일반인 조사에서는 정동영, 김근태 다음으로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대선 2년 전부터 그렇게 형성된 ‘이명박 대세론’은 그의 숱한 도덕적 흠결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노무현, 경쟁력은 1위지만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 11월2일부터 1박2일간 울산·부산·경남을 찾았다. 일정 내내 노무현 해양수산부 장관을 동행시켰다. 일주일 전 대구·경북을 찾았을 땐 김중권 민주당 최고위원을 데려갔다. 민주당 안팎에서 ‘영남후보가 뜨면 재집권할 수 있다’는 이른바 ‘영남후보론’이 점화되던 때였다. 노무현은 그 중심에 있었다.

그의 경쟁력은 2001년 새해 벽두부터 주목받기 시작했다. 2001년 1월 20~21일 실시된 <한겨레> 조사에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와 맞붙을 경우 오차범위 밖(43.1% vs 35.3%)에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인제 민주당 최고위원(43.1%)도 이회창(39.0%)보다 앞섰지만 오차범위 안이었다. 노무현의 경쟁력은 여러 잠재적 지표 속에서 꿈틀대고 있었다. <한겨레21>이 2000년 9월 실시한 ‘대중이 선호하는 차세대 리더’ 조사에서도 노무현은 1999년에 이어 2년 연속 1위에 올랐다.

그러나 대중들은 그를 ‘대통령감’으로 여기지 않았다. 2001년 1월 <한겨레> 조사에서 ‘누가 대통령으로 바람직한가’를 묻자 노무현은 2.7%를 얻어 군소후보군에 속했다. 이인제(10.8%)와 이회창(10.1%)이 단연 앞섰다. 본인은 그 이유를 이렇게 분석했다.

“국회의원을 한 번 반밖에 못했다. 정치세력의 중심에 서거나 중요한 정치적 과정에서 주역 노릇을 못해봤다. 또 지금까지 정치적 모험과 도전을 여러 차례 감행했다. 남이 보기엔 아슬아슬하고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 신중하지 못하고 안정감 없는 사람으로 봤을 것 같다. 앞으로 장관 일을 열심히 하면서 역량을 증명하고, 경제를 비롯한 국가관리에 관한 공부를 더 할 생각이다.”(2001년 1월 <한겨레>의 노 장관 인터뷰)

김대중, 불안한 ‘4수의 꿈’

1996년 벽두의 최대 관심사는 4개월 앞으로 다가온 총선이었다. 야권의 가장 강력한 대선 후보인 김대중은 95년 7월, 정계 복귀를 선언하고 9월에 민주당을 쪼개서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다. 96년 총선 승리를 통해 97년 대선 승리를 노린 디제이는 이종찬씨 등 민정당 출신들을 영입하며 외연을 확장하고 있었다.

여당인 신한국당도 총선 체제를 꾸리며 차기 구도가 출렁이기 시작했다. 96년 1월, 박찬종 전 의원과 이회창 전 총리가 잇따라 입당하면서 치열한 당내 경쟁을 예고했다. 김윤환과 이한동(민정계), 최형우, 김덕룡(민주계), 총리로 발탁된 이수성까지 다자 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특히 이회창의 정계 데뷔는 큰 관심을 끌었다. 김영삼 정권에서 이회창은 감사원장과 총리를 역임했지만 대통령과의 불화로 총리직을 사임하며 대쪽·개혁 이미지를 대중에게 강하게 남겼다.

이회창의 신한국당 입당 평가는 엇갈렸다. 96년 1월22일 <한겨레> 여론조사에서 입당을 “잘했다”는 응답이 31.9%, “잘못했다”는 응답이 28.8%였다. 대선 후보가 되지는 못할 것이라는 응답(40.3%)이 될 것이라는 응답(29.9%)보다 많았다. ‘정치 신인’의 권력투쟁이 쉽지 않을 거라는 게 보통의 시각이었다. 그러나 ‘정치 신인’ 이회창은 특유의 카리스마로 빠르게 당을 접수하기 시작했다.

김영삼, 다된 밥에 재 뿌릴라 살금살금

노태우 대통령은 1990년 12월27일 개각을 단행해 막강 친위체제를 구축했다. 총리서리와 체육청소년부장관으로 등용된 노재봉·박철언이 핵심이었다. 이들은 김영삼 민자당 대표와 정치생명을 걸고 격돌했던 이들이었다. 김영삼 쪽은 충격과 허탈감에 빠졌다.

노재봉 총리서리는 50대였다. 개각은 세대교체론에 불을 댕겼다. 김영삼 대표, 김대중 평민당 총재 등 두 김씨의 정계 퇴진을 겨냥한 것으로 보였다. 노 대통령이 노재봉을 자신의 후계자로 점찍고 밀어주기 시작했다는 의심이 나올 법했다. 민자당의 민정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세대교체론이 퍼져나갔다.

그러나 91년 1월5일 노 대통령이 선을 그었다. “국민이 세 김씨에게 역할을 맡겼다. 인위적 세대교체는 안 된다”고 말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김영삼 대표 외엔 대안이 없지 않으냐’는 현실론이 힘을 얻은 것이라는 추측이 나왔다. 노 대통령 발언 뒤 김영삼은 세대교체론을 주도하는 민정계 인사들을 잇따라 따로 만나 다독였다. 각개격파였다.

김원철 김태규 기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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