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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기자 노릇’ 하기의 괴로움

등록 2015-12-28 11:45수정 2015-12-28 14:43

정치BAR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지난1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지난1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야당 기자 노릇하기가 갈수록 버겁다. 야권이 쪼개진 요즘 같은 시절엔 어떤 기사를 쓰든 양쪽에서 돌팔매 맞을 각오를 해야 한다. 누구는 ‘안빠’라 침뱉고, 누구는 ‘문빠’라 조롱한다. 개의치 않는다. 정치에 관심을 갖다보면 특정 정치인에게 호감을 갖는 건 자연스런 현상이고, 그 정치인과 일체감이 강하면 다소 격한 언사도 쏟아낼 수 있는 법이다. 내가 그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정치를 명징한 ‘선악 구도’로 보지 않는다는 것 정도다.

‘밥그릇 싸움’이란 말만 해도 그렇다. 자기 공천이 불안한 데 가만히 앉아 처분만 기다리고 있을 의원들, 거의 없다. 친노-비노 갈등 역시 마찬가지다. 이른바 ‘깨어있는 시민’ 진영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친노=진보·정의, 비노=보수·기득권’이란 이분법, 내가 볼 땐 허상이다. 두 세력의 갈등은 깊고 오래됐을 뿐 아니라, 시간이 갈수록 강화되는데, 그 핵심은 ‘상호불신’에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1. ‘비주류(비노)’ 문제

비주류는 ‘문재인 사퇴’만 주야장천 떠든다. 가장 큰 원인은 문 대표와 주변의 친노 세력에 대한 불신이다. 지금의 친노-비노 갈등은 ‘밥그릇(공천권) 싸움’으로 단순화하기엔 사정이 그리 간단치 않다. 두 세력은 출신 배경(운동권 대 전문직)과 주요 지지 기반(수도권 대 호남), 지향하는 이념(중도진보 대 중도)에서도 적잖은 차이가 있다. 이런 이질성은 선거를 앞두고 ‘공천 갈등’의 양상으로 표출되는데, 선거가 반복되고 갈등이 누적되면서 ‘상호 불신’이 커지고, 이는 다시 두 세력의 이질성을 키우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게 지금의 새정치연합 상황이다.

비주류가 오로지 ‘문재인 사퇴’를 요구하는 것도 그렇다. 이들은 ‘조기선대위 구성-문재인 2선후퇴’라는 중재안을 ‘문재인 사퇴 요구를 잠재우기 위한 미봉책’으로 본다. 문 대표가 아무리 ‘2선’에 물러나 있어도 공천과 관련한 각종 기구(공천관리위, 전략공천위, 비례대표심사위 등)에 포진한 ‘친노·친문’ 성향 인사들을 통해 자신들에게 공천에서 불이익을 주려할 것이란 근본적 불신이다. 비주류는 이런 ‘비노 불이익 공천’의 대표적 사례로 2012년 총선 공천을 꼽는다. 당시 한명숙 대표 체제의 ‘친노 지도부’가 외부인사를 영입해 공천 기구를 꾸렸지만, 그 결과는 ‘노(친노)·이(이화여대 라인)·사(486) 공천’으로 나타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비주류는 ‘공천 공정성’을 보장하려면 문 대표가 대표직을 사퇴하고 공천과 관련한 모든 업무에서 ‘깨끗이’ 손을 떼는 방법 외엔 길이 없다고 주장한다. 여기엔 당내 권력투쟁에 능하고 열정적 장외 지지층을 가진 친노 세력에 대한 과도한 ‘공포감’도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2. ‘주류(친노)’ 문제

문재인 대표와 주변의 친노 인사들 역시 비주류에 대한 불신이 깊다. 이는 문 대표가 내놓은 몇 차례 발언에서도 확인된다. 문 대표는 자신을 비판하는 비주류 의원들을 줄곧 “지도부를 흔들어 공천 밥그릇을 챙기려는” 기득권 세력으로 규정해왔다. 이런 불신엔 오랜 ‘트라우마’가 작용하고 있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이 떨어지자 ‘후보 교체’를 요구하며 집요하게 흔들던 옛 ‘후단협’의 악몽이다. 문 대표와 주변 참모들은 비주류의 사퇴 공세를 두고 ‘전당대회라는 정당한 절차를 거쳐 선출된 대표를 재보선에서 참패했다는 이유로 흔들어대니, 과거 후단협과 다를 게 뭐가 있느냐’는 불만을 자주 토로해왔다.

문재인 특유의 ‘선지자 의식’도 비주류와의 공존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 같다. 지금 문 대표의 판단을 지배하는 것은 ‘내가 대표직을 내려놓으면 3개월의 혁신위 활동을 통해 당헌·당규에 반영한 혁신안이 무력화된다’는 생각이다. 혁신안의 핵심은 ‘시스템 공천’이다. 현직 국회의원에 대한 정량·정성 평가를 통해 하위 20%를 교체하고, 모든 공천을 공천 관련 기구들이 ‘정해진 룰’에 따라 하자는 것이다. 문 대표는 야당의 체질을 개선하고 체력을 강화하려면 계파갈등의 뿌리인 공천권을 시스템에 맡겨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한 것 같다. 그러지 않으면 기득권을 지키려는 현역 의원들의 지도부 공격이 계속되고 당의 리더십도 바로 설 수 없다는 보는 것이다.

물론 주변 참모진들에겐 문 대표가 자리를 지켜야 할 절박한 이유가 또 있다. 문 대표가 비주류의 퇴진 요구에 밀려 대표직을 물러날 경우 ‘대선 주자‘로서의 정치생명도 치명상을 입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3. ‘호남(광주)’ 문제

90% 안팎의 야당 대선후보 득표율이 만들어낸 호남(특히 광주)에 대한 ‘착시’가 있다. 그들의 압도적 다수는 진보(개혁) 성향이며, 제1야당에 강한 일체감을 갖고 있다는 확신이다. 하지만 호남 유권자는 균질하지 않다. 그들의 정치·사회 의식은 타 지역에 견줘 상대적으로(DJ의 영향으로 남북관계에서 특히) 진보적 성향을 띌 뿐, 그곳에도 진보-중도-보수가 다 있다(물론 보수층이 엷은 건 사실이다). 그들이 문재인 체제를 비토하는 것은 ‘친노’에 대한 정서적 거리감, 또는 누군가 말하듯 ‘영남 패권주의‘에 대한 반감 때문 만은 아닌 것 같다.

문재인은 2012년 대선에서 광주에서 92%의 지지를 얻었다. 안철수가 사퇴한 상황에서 정권교체를 위해 사실상 유일한 선택지가 문재인이었기 때문일 것이다(광주는 2012년 ‘안풍’의 진원지였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하지만 문재인은 대선에서 패배했다. 호남에서 문재인 대표가 고전하는 것은 이 ‘2012년 학습효과’ 때문이라고 본다. ‘친노가 주도하는 정당의 친노 후보로, 있는 표 없는 표 싹싹 긁어모아 대선을 치렀는데, 결국 안 되더라’는 것이다.

광주에서 좀체 얼굴 보기 힘든 박원순 서울시장을 서울 시민들보다 더 지지하는 것도, 한자릿수 대선 지지도의 안철수를 다시 살려낸 것도, 은퇴한 손학규에게 10%가 넘는 지지를 꾸준히 보내는 것도 그 ‘학습효과’가 아니면 설명이 쉽지 않다. 핵심은 ‘확장성‘이다.

4. 마지막으로, ‘호남 기득권’

문재인 대표는 탈당하는 호남의 현역 의원들을 일러 ‘엊그제까지의 개혁 대상’이라고 했다. 가만 있었으면 현역 평가 ‘하위 20%’ 커트라인에 걸려 제 목숨 부지 못했을 자들이란 뉘앙스가 풍긴다. 당 대표로서 위험한 발언이다. 현역 평가는 의정활동·공약이행도·여론조사·의원상호평가 등의 결과를 종합해 산출한다. 여기서 호남 의원들이 하위 20%에 해당하는지 아닌지는 속된 말로 ‘까보기 전엔’ 아무도 모른다. 현재로선 탈당한 의원들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의정활동이 부실했거나, 공약이행도가 낮다고 볼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들을 ‘개혁 대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하나다. ‘현역 재지지 여론’이 낮다는 거다. <한겨레> 조사에서 광주의 현역의원 재지지도는 19%에 그쳤다. 전국 평균(29%)보다 10% 포인트 가량 낮다. 하지만 광주의 낮은 현역지지도는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가장 큰 원인은 지역 국회의원에 대한 광주의 기대수준이 매우 높다는 데 있다. 그들의 기준점은 DJ다. 야당 정치를 주도하고, 중앙의 ‘판’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영향력 있는 정치인’을 바라는 거다(천정배는 이런 정서를 정확히 파고 들었다). 상황이 이러니 어지간한 ‘평균 실력‘으로는 ‘물짜’(‘불량품’의 호남 방언) ‘모지리’ 소리 듣기 십상이다. 이런 지역 정서를 활용해 그동안 야당 지도부는 ‘개혁 공천’이란 명분을 얻으려 물갈이가 손쉬운 ‘호남’을 전략적으로 희생해온 게 사실이다.

이런 현실에 눈 감은채 무작정 ‘호남 기득권’ ‘호남 토호 정치’라 비난해선 문제가 안 풀린다(토호는 호남 뿐 아니라 어디에나 있고, 권력이 있는 곳에 토호들은 줄을 댄다). 호남 정치인 문제는 내부에 공정한 경쟁 환경을 만들어준 뒤 지역 유권자의 선택에 맡기는 길 외엔 방법이 없다는 게 요즘의 내 생각이다. 그러려면 지금처럼 제1야당이 독식하는 구도가 아니라, 안정적인 ‘당 대 당 경쟁구도’가 만들어져야 한다. 이를 ‘호남의 배신’이니, ‘야당의 분열’이니 비난해선 안 될 일이다.

무책임한 양비론이라 비난해도 변명할 생각은 없다. 대안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공개적으로 특정 정치인을 향해 조언하고 자문할 만큼 식견도 실력도 없다. 방학한 아이들 데리고 광주로 내려가는 무궁화호 객차 안, 머리가 무겁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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