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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망신시키는 외교관들을 공개합니다

등록 2015-12-21 14:14수정 2015-12-21 15:38

감사원. 김봉규 기자
감사원. 김봉규 기자
[정치 BAR]
외국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고 동포와 관광객을 보호해야 할 재외공관에 근무하는 이들의 비리가 드러났습니다. 아내와 딸을 직원으로 채용하는가 하면, 공관 회식 뒤에 음주사고를 은폐하기도 했습니다. 감사원이 주러시아대사관을 비롯한 18개 재외공관 등을 상대로 감사 인원 12명을 투입해 한 달 가까이 실지감사를 진행한 결과입니다. 감사원이 12월21일 공개한 ‘재외공관 및 외교부 본부 운영실태’ 감사결과보고서에 담긴 각종 불법·탈법 행태를 공개합니다. 아래 사례는 일부일 뿐입니다.

대사관 한국문화원장, 딸과 아내를 직원·강사로 채용
나라예산 9천여만원 지급…거듭된 경고 무시하고 계속

# 사례1

A대사관 한국문화원장은 2012년 8월 자기 딸을 문화원 행정직원으로 채용했다. 채용 공고는 없었다. 재외공무원의 동반가족의 취업은 공관장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승인도 받지 않았다. 문화원이 한국인 행정직원을 채용하려면 본부(문화체육관광부 해외문화홍보원장)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절차도 생략했다. 그러곤 2013년 12월까지 인건비·출장비 등의 명목으로 딸한테 3만7329달러(한화 4400여만원)를 줬다. 이 문화원장은 2012년 8월, 자신의 아내를 문화원 산하 세종학당(한국어 교육기관)의 세종학당장 겸 전임강사로 채용했다. 이 문화원 산하 세종학당엔 한국어와 한국문화 교육을 맡은 강사가 7명이나 있는데도 ‘적임자가 없다’는 이유를 둘러댔다. 딸을 채용할 때와 마찬가지로 공관장과 해외문화홍보원장의 사전 승인을 받지 않았다. 이런 방식으로 자기 아내한테 2013년 12월까지 강의료 등의 명목으로 2만764달러(한화 2450만원)를 줬다.

2013년 12월 이런 사실을 파악한 대사가 해당 문화원장한테 ‘가족을 부당하게 채용해 문화원 업무에 관여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지시했고, 정무공사는 같은 취지의 ‘경고’를 했다. 그런데도 이 문화원장의 ‘가족 사랑’은 멈출 줄 몰랐다. 이 문화원장은 그 뒤로도 문화원 행정직원에서 퇴직한 딸한테는 문화원 행사 관련 진행 및 공보요원 사례금 명목으로 6회에 걸쳐 1만4080달러(1660만원)를, 세종학당장인 아내한테는 세종학당 및 문화원 행사 관련 출장여비 등 명목으로 8회에 걸쳐 6867달러(810만원)를 더 줬다. 이 문화원장이 2012년 9월부터 임기를 마친 2015년 3월까지 이렇게 해서 아내와 딸한테 쌈짓돈 마냥 쥐여준 국가예산이 7만9040달러(9316만원)에 이른다. 소속 공관장과 상사의 거듭된 경고에도 위법 행위를 멈추지 않은 이 간 큰 문화원장은 2015년 3월 임기를 마친 뒤 귀국해 한 국공립대학교의 교수로 일하고 있다.

대사관 참사관 음주운전에 접촉사고·뺑소니냈는데
본부에 보고않고 잡음없이 처리하라며 사건 은폐 지시

# 사례2

주우즈베키스탄대사관의 F참사관(별정직 4급 상당)은 일요일이던 2013년 12월1일 타슈켄트의 한 골프장에서 대사관 직원 등과 골프를 치고는 한식당에서 술을 마신 뒤 음주운전을 하다 접촉사고를 냈다. 현지인 차량을 들이받은 1차 접촉사고를 내고 아무런 조처도 없이 300m 정도 그냥 가다 다시 거리에 주차된 현지인 차량을 들이받았다. 음주운전, 연쇄 접촉 사고, 뺑소니에 해당한다. 사고 수습은 만취한 F참사관 대신 대사관의 사건사고 담당 경찰영사가 맡았다. 그런데 주우즈베키스탄대사관은 본부에 이런 사실을 보고하기는커녕 ‘외교부 본부나 대사관에 정식으로 통보되어 잡음이 일어나지 않도록 처리하라’고 F참사관한테 지시했다. ‘사건 은폐’ 지시다.

F참사관은 우즈베키스탄 외교부 관계자를 만나 ‘사건을 잘 처리해달라’고 부탁한 뒤, 1차 피해자한테는 2300달러, 2차 피해자한테는 500달러를 주고 합의했다. 사고 수습을 맡았던 대사관 소속 경찰영사도 우즈베키스탄 중앙교통경찰국 수사국 경찰관을 만나 ‘원만한 처리’를 부탁했다.

우즈베키스탄대사관의 이런 음주교통사고 ‘은폐’는, 재외공무원은 품위와 위신을 지켜야 한다는 국가공무원법과 재외공무원 복무규정을 어겼을 뿐만 아니라, ‘재외공무원은 교통법규 위반에 관한 법령 등 주재국의 법령을 준수하여야 하고 경미한 교통위반을 제외한 법률 위반의 경우에는 공관장은 즉시 장관에게 보고해야 한다’는 외교부 훈령(재외공무원 행동지침)을 위반한 것이다.

대사가 무보수 인턴 고용해 책자 제작 맡긴 뒤 “부실하다”며
아내 명의로 책자 인쇄하고 대사관 경비로 지급해 훈령 위반

# 사례3

주키르기즈스탄대사관은 2012년 현지 한국인 유학생 12명을 봉사활동 수료증을 발급하는 조건으로 무보수 비상근 인턴으로 고용해 <키르기즈 생활안내> 책자 제작을 맡겼다. 주키르기즈스탄대사는 2013년 이들이 만든 150쪽 분량인 책자의 내용이 부실하다는 이유로 자신의 아내한테 책자 발간을 책임지도록 했다. 대사의 아내는 6명의 현지 유학생과 대사관 행정원의 도움을 받아 350쪽 분량의 책자로 보완했다. 그런데 주키르기즈스탄대사는 이 책자의 발행처를 ‘대사관’으로 하되, 지은이와 저작권자는 자기 아내인 ‘P’ 개인 명의로 하도록 지시하고는 <중앙아시아의 알프스 키르기즈스탄>이란 이름의 책자 300부를 인쇄하는 데 들어간 비용 7000달러를 개인 비용이 아닌 공금 등으로 지급하도록 했다. 2000달러는 대사관 책자 발행 운영 경비에서, 나머지 5000달러는 대사관 관련 공사를 맡은 업체한테서 광고비 명목으로 받아 지급했다. 이 대사가 이 책자 발간과 관련해 사비로 지급한 금액은 한화 5만원뿐이다.

주키르기즈스탄대사의 이런 행태는 ‘경비 지출은 공사(公私)를 분명히 하라’는 재외공관장 근무지침과 공무활동을 위한 예산을 목적 외의 용도로 사용해서는 아니 된다’는 외교부 훈령(외교부 공무원 행동강령)을 위반한 것이다.

감사원은 ‘사례1’에 해당하는 문화원장이 임기를 마치고 교수로 복귀한 국공립대학교의 총장한테 국가공무원법과 교육공무원법 위반을 들어 정직의 징계처분을 하라고 요구하고, 문화체육관광부장관한테는 한국문화원의 직원 채용에 대한 지도·감독을 철저히 하라며 주의 조처를 내렸다. 감사원은 ‘사례2’와 관련해서는 외교부 장관한테는 F참사관에 대해 ‘적정한 조치’를 취하라는 통보를, 주우즈베키스탄대사한테는 주의 조처를 내렸다. ‘사례3’과 관련해서는 외교부 장관이 관련자한테 주의를 촉구하라고 요구했다. 감사원은 이번 감사를 토대로 징계 처분 1건, 주의 19건, 시정 조치 3건, 통보 10건을 해당 기관장 등한테 요구했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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