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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화 “직권상정하라니…지금이 국가비상사태냐”

등록 2015-12-16 17:31수정 2015-12-18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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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화 국회의장이 16일 오전 국회에서 내년 20대 총선 선거구 획정 및 쟁점법안의 입법 지연 사태에 관한 입장을 밝히는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의화 국회의장이 16일 오전 국회에서 내년 20대 총선 선거구 획정 및 쟁점법안의 입법 지연 사태에 관한 입장을 밝히는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의화 국회의장이 16일 여야가 이견을 보이고 있는 노동 5법과 기업활력제고특별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에 대해 “직권상정할 수 없다”고 거듭 쐐기를 박았다. 전날 청와대가 현기환 정무수석을 국회로 보내 직권상정을 압박하고, 이날은 새누리당 지도부가 소속 의원 전체의 서명을 받아 직권상정 요청 서한까지 냈지만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은 것이다.

정 의장은 16일 오전 11시30분 의장 집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뉴스’ 측면에서만 본다면 ‘선거구 획정은 연말께 직권상정하겠으나, 나머지 쟁점법안은 직권상정할 수 없다’는 기존 입장에서 달라진 게 없었다. 그래서 정 의장의 참모들은 “어제(15일) 여야 지도부가 의장 주재 마라톤협상을 마친 뒤 그 결과를 언론에 브리핑했기 때문에 의장이 똑같은 얘기를 또 할 필요는 없겠다”고 건의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 의장은 전날 기자들에게 약속한 대로 기자간담회를 예정대로 진행했다. 시작 시각만 애초 오전 11시에서 30분 늦춰졌다.

정 의장이 기자간담회를 자청한 이유는, 쟁점법안에 대한 직권상정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개인 취향대로 뭉개고 있는 게 아니라, 국회법상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점을 설명하려 했다는 것이다. 정 의장이 최근 “쟁점법안은 직권상정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뒤 정 의장에게는 “경제가 어려운데 왜 법안들을 처리 안 하려고 하느냐”는 항의가 여당은 물론이고 일반인들로부터도 잇따랐다고 한다.

“쟁점법안 직권상정 안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것”
청와대, 밥그릇 챙기기 비판에 “저속한 표현”

정 의장은 이날 기자간담회를 시작하면서 “(경제 일반 법안들에 대해)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할 수 있는 것을 의장이 안 하는 것으로 국민들에게 호도되는 부분이 있을까봐 그것을 불식해야겠다”고 말했다. 그는 준비해온 <헌법·국회관계법> 소책자를 가리키며 국회법 85조를 설명했다. 국회선진화법이라고 불리는 개정 국회법 제85조에는 국회의장이 본회의에 안건을 직권상정(심사기간 지정)할 수 있는 경우는 △천재지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의장이 각 교섭단체 대표의원과 합의하는 경우로 엄격히 제한돼 있다. 지난 18대 국회 임기 말인 2012년 5월 새누리당이 주도해서 통과시킨 법이다.

의사로서 부산 동래봉생병원 소유주이기도 한 정 의장은 “내가 CEO 출신이고 국회 재정경제위원 6년을 해서 지금 우리나라 경제상황이 상당히 어렵다는 것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잘 인식하고 있다”며 “그러나 현 경제 상황을 그렇게 (직권상정이 가능한 비상사태로) 볼 수 있느냐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고 잘랐다. 정 의장은 이어, “어제 청와대에서 메신저(현기환 정무수석)가 왔길래, ‘그렇게(직권상정)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찾아봐 달라’고 부탁했다”며 “국민 여러분께서는 제가 안 하는 것이 아니고 법적으로 못 하기 때문에 못 하는 것이라는 것을 꼭 알아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정 의장은 국회선진화법을 주도해놓고서 이제 와서 직권상정 요구라는 “무리한 초법적 발상”을 하는 새누리당 지도부에 대한 불만도 큰 것으로 보인다. 정 의장은 이날 오후 새누리당의 원유철 원내대표와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가 소속 의원 전원의 명의로 쟁점법안 직권상정 요구서한을 전달하려 하자, 이를 사실상 거부하고 의장실을 나가버렸다. 이 과정에서 서로 언성도 높아졌다.

정 의장은 “국회선진화법상 일반 법안은 직권상정을 할 수 없는 거 알지 않느냐. 조원진 수석부대표도 (2012년 5월) 국회선진화법에 찬성하지 않았나”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럴 시간에 야당을 만나서 설득하라”고도 했다.

“무턱대고 직권상정해서 처리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나!”(정 의장) → “(야당 등이) 권한쟁의심판 내겠죠!”(조 수석부대표) → “그러면 의장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혼란스러워지는 거야”(정 의장)이라고 논쟁이 오가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정 의장은 여당의 직권상정 요구서한을 사실상 거부하고 다른 일정을 이유로 의장실 밖으로 나갔다.

전날 청와대가 “선거구획정만 처리하고 쟁점법안은 처리 안 하면 국회가 밥그릇만 챙기려 한다는 비판을 받을 것”이라고 밝힌 데 대해서도 정 의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국민들로 하여금 굉장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문제”라며 “아주 제가 봤을 때 저속한 그런 표현은 합당하지 않다”고 직설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정 의장은 다만 연말까지 재획정이 안 되면 법적으로 무효화되는 총선 선거구 획정에 대해서는 “마지막 중재노력을 해볼 생각”이라며 “12월말까지 가서 확실히 입법 비상사태가 도래할 수밖에 없다 하는 시점이 되면 여야가 함께 동의할 수 있는 안을 직권상정할 수 있다고 본다”고 재확인했다.

정 의장은 야당이 요구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해서는 “(새누리당의 반대로) 도입하기 불가능하다는 개인적 결론에 도달했다”고 밝히고, 역시 야당 요구사항인 선거연령 18살로 인하(현행 만 19살) 방안을 새누리당이 적극 검토해줄 것을 주문했다.

정 의장이 ‘친정’인 새누리당 및 청와대와 갈등을 빚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5월 새누리당 내 경선에서 친박계의 지원을 업은 황우여 의원을 물리치고 국회의장 후보에 선출됐을 때부터 예고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정 의장은 지난 6월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국회법에 대해 개정안을 마련해 정부에 이송하는 등 의회를 대표해 박근혜 대통령과 대립했다. 지난 10월에는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강행에 대해 “절차가 잘못됐다”(관훈클럽 초청토론회)고 꼬집었다. 긴장 관계를 이루고 있는 정 의장과 박근혜 대통령,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모두 15대 국회(1996~2000년)에서 의정 활동을 시작한 ‘15대 동기’다.

정 의장이 친정과의 불화를 감수하고 원칙을 고수하는 것은 ‘의장 퇴임 후’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여권의 한 인사는 “정 의장이 의회민주주의 원칙과 소신을 꺾어가면서 청와대 뜻에 따라가면 대권 도전이든 다른 형태든 정 의장 개인의 미래에도 큰 오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황준범 기자

관련영상 : 선거구 획정, 한상균의 소요죄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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