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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성당에 ‘DMZ 철조망’으로 만든 십자가 온 까닭은

등록 2021-11-01 12:32수정 2021-11-01 16:24

정치BAR 이완의 정치반숙

‘철조망, 평화가 되다’ 행사
산티냐시오 성당에서 전시
문재인 대통령이 10월 30일 로마 산티냐시오 성당을 찾아 ’철조망, 평화가 되다’ 행사를 지켜보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10월 30일 로마 산티냐시오 성당을 찾아 ’철조망, 평화가 되다’ 행사를 지켜보고 있다. 청와대 제공

남북한 군인들이 총부리를 겨누던 휴전선 비무장지대(DMZ)의 철조망. 가시 돋힌 철조망들이 지난 10월30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십자가로 부활하는 특별한 행사가 있었습니다.

세계를 움직이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개막하기 전날. 문재인 대통령은 프란치스코 교황을 면담하는 등 바쁜 일정을 쪼개 산티냐시오 성당을 찾았습니다. 이곳에서 열린 ‘철조망, 평화가 되다’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회의 설립자인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가 수호성인인 이 성당은 천장화로도 유명한 곳인데, 이날은 바닥에 136개의 십자가로 만든 한반도 지도가 놓여 있었습니다. 흰색 옷을 입은 어린아이들이 촛불을 들고 한반도를 돌았고, 조민경 소프라노가 성악 공연을 했습니다.

이번 평화의 십자가는 더욱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한반도를 가로지르고 남북한을 하나로 갈라놓는 250km의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에는 수없이 많은 철조망이 설치돼 있습니다. 그리고 그 철조망에는 여러분들이 아시다시피 아주 날카로운 가시들이 촘촘하게 달려 있습니다.

오고 갈 수 없다는 금지의 선이면서 적대와 대립의 상징이 철조망입니다. 우리 정부 들어서 남북한의 대화가 이루어지고, 군사합의가 이루어지고, 적대행위를 중단하기로 그렇게 합의를 함으로써 남북한의 군사적 긴장이 많이 완화되고 그만큼 평화가 증진되었습니다. 그에 따라 우리 정부는 철조망의 일부를 철거했는데 그 녹슨 철조망이 이렇게 아름다운 평화의 십자가로 변신한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은 이곳에서 “성경에는 전쟁을 평화로 바꾼다는 그 상징으로 창을 녹여서 보습을 만든다는 그런 구절이 있다”며 “오늘의 이 십자가는 그 의미에 더해서 이제는 고향으로 돌아가서 헤어진 가족들을 만나고 싶다는 수많은 남북한 이산가족들의 염원과 이제는 전쟁을 영원히 끝내고 남북 간에 서로 평화롭게 지내고 싶다는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의 간절한 염원과 기도가 담겨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십자가들은 박용만 한국몰타기사단(전 두산그룹 회장) 대표가 만들었습니다. 박 대표는 로마에서 기자들과 만나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갈등 중에 제일 큰 갈등이 무엇일까를 생각해보니까 역시 남북갈등이더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번 작업에 착수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습니다.

남북의 대립과 갈등의 가장 큰 상징은 휴전선의 철조망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그 철조망을, 철조망은 입찰해서 사야 됩니다. 폐철조망인데 수거하는 것을 입찰해 가지고 제가 샀어요. 그 철조망을 갖다 서울대학교 권대훈 교수팀한테 부탁해 가지고 십자가로 다시 부활을 시킨 거죠. (박용만 대표)

박용만 대표는 특히 2018년 남북관계가 개선되었을 때를 회상했습니다. 그는 “3년 전에 휴전선 판문점에서 열린 만찬에 제가 경제인으로 유일하게 참석했다. 가을에 평양 방문했고, 그때 백두산도 갔다 왔고, 그때 아마 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국민 여러분들께서 굉장히 희망을 가지고 기쁜 마음으로 그 일련의 행사들을 아마 지켜보셨으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분위기가 달라져서 경제 협력은 지금 언제 될지 잘 모르는 상황이 됐고, 두 가지의 극단적인 상황을 비교하면서 생각해 보니까 그렇게 쉽고 가까이 왔던 평화가 또 이렇게 멀리 가기도 하고 이런 것을 보면 우리 마음속에 가까이 와 있는 평화를 좀 우리가 쥐어야 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평화는 가까이 있는 것, 우리 옆에 있는데 설사 체제가 다르고 두 나라로 살아가더라도 총칼을 앞세우지 말고 평화 속에 대화를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서로의 차이점도 평화 속에 차이점을 가지고 갈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러니 평화은 마음먹기에 따라서 평화라는 플랫폼 위에 모든 일을 올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생각이 이 십자가를 통해서 전해졌으면 하는 생각을 했고요. 그래서 오늘까지 오게 됐습니다. (박용만 대표)

문 대통령은 주요 20개국 정상회의 참석 등을 마치고 31일 로마를 떠나며 “‘로마의 평화를 지키는 것은 성벽이 아니라 시민의 마음’이라 했다. 한반도의 평화 역시 철조망이 아니라 우리 국민들의 마음에 있을 것이다. 비무장지대 철조망을 녹여 만든 '평화의 십자가'를 로마에서 세계와 나눈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었다”고 평가했습니다.

교황을 만나고 평화의 십자가 행사를 하는 것 모두 천주교 쪽이 한반도 평화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주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입니다.

다만 이번 주요 20개국 정상회의 참가국 정상들의 관심은 코로나19 대응과 기후위기 등에 맞춰졌습니다. 로마를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오스트레일리아의 핵잠수함 계약 파기 문제로 관계가 어색해진 프랑스를 달래는 등 다른 유럽 현안을 다루느라 한반도 문제는 이번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못한 듯합니다. 문 대통령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한반도 평화를 향한 노력이 쉽지 않은 여정임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주요 20개국 정상회의의 장면이었습니다.

로마/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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