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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야권후보는 홍준표? 그 가능성은…

등록 2021-09-05 13:59수정 2021-09-06 02:35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394
봉하마을 방문 “2002년 노무현 후보처럼”
여론조사 상승세…본선 경쟁력은 불확실
“합리적 보수 거듭나야” 2005년 다짐 눈길
홍준표 의원이 9월 3일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지를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준표 의원이 9월 3일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지를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추석 연휴를 앞두고 대선 정국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경선 투표와 개표가 시작됐습니다. 9월 4일 대전·충남 대의원과 권리당원 개표가 이뤄졌습니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득표율 54.81%로 과반 득표율을 차지했습니다. 이낙연 전 대표 27.41%, 정세균 전 국무총리 7.84% 순이었습니다.

9월 5일에는 세종·충북 대의원과 권리당원 개표 결과가 공개됩니다. 9월 12일은 70만명 규모의 1차 선거인단 투표 결과가 공개되는 ‘1차 슈퍼 위크’입니다.

국민의힘은 이른바 역선택 방지를 둘러싸고 샅바 싸움이 한창입니다. 역선택 방지는 명분도 부족하고 기술적으로도 어렵습니다. 무리해서 추진하다가는 자칫 판이 깨질 위험이 있습니다.

국민의힘은 12명의 후보를 9월 15일 8명으로 압축하고, 10월 8일 4명으로 압축합니다. 11월 5일 최종 후보를 결정합니다.

최근 판세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하락세, 홍준표 의원의 상승세가 두드러집니다. 홍준표 의원은 추석 연휴까지 윤석열 전 총장을 밀어내고 자신이 야당의 선두주자가 될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윤석열 전 총장 청부 고발 의혹 사건이 터졌습니다. 의혹이 사실이라면 검찰에 의한 국기 문란입니다. 여러 사람이 감옥에 갈 수도 있습니다. 홍준표 의원에게 진짜로 기회가 오는 것일까요?

홍준표 의원은 9월 3일 봉하마을에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 묘지를 참배했습니다. 방명록에 “2002년 노무현 후보처럼”이라고 썼습니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이 당내 경선에서 이인제 후보를 제친 데 이어 본선에서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된 것처럼, 자신도 윤석열 전 총장과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차례로 꺾고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입니다. 홍준표 의원은 봉하마을 방문에 앞서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진보에는 노무현이 있었다면

보수에는 홍준표가 있습니다.

2002년 노무현 후보처럼 국회의원들이 곁에 없어도

뚜벅뚜벅 내 길을 갑니다.

당원과 국민만 보고

오늘도 묵묵히 내 길을 갑니다.

오늘은 제가 두 번이나 도지사를 역임했던 경남에 왔습니다.

60대 이상과 TK만 평정되면

경선은 끝납니다.

홍준표 의원은 경남지사 시절이던 2014년 9월에도 봉하마을을 방문해 “훌륭한 대통령이었다”고 말한 일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홍준표 의원이 노무현 대통령을 진짜로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대통령 재직 시에 누구보다도 가혹하게 비난했습니다. 사석에서는 대통령이라는 호칭을 아예 붙이지 않고 ‘노무혀이’라고 불렀습니다. 퇴임 이후에는 봉하마을 사저를 아방궁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사후에도 “갈등과 분열의 리더십의 대표적인 정치인”이라거나 “뇌물 먹고 자살한 사람”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자신에게 필요할 때만 노무현 대통령을 불러내서 활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쨌든 노무현 대통령과 홍준표 의원은 좀 닮은 데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비주류라는 점이 그렇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왜 비주류인지는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홍준표 의원은 2005년에 <나 돌아가고 싶다>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책에 ‘한나라당 비주류’라는 글이 있습니다.

요즘 언론에서는 나를 두고 한나라당 비주류라고 부른다.

그 비주류라는 말이 나는 싫지가 않다.

초등학교 6년을 다니면서 집안이 어려워 삶의 궤적을 따라 5번이나 전학을 하는 바람에 전학 가는 학교마다 애들과 어울릴 기회가 없어 나는 늘 비주류였다.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도 그 당시 3류 학교였던 관계로 주류 세계에 편입되지 못하고 항상 주변만 맴도는 비주류였다. 합격한 육사를 포기하고 고대 법대에 입학했을 때 나는 주류가 될 절호의 찬스가 있었으나 생계에 쫓기는 바람에 또다시 비주류로 전락하였다. 캠퍼스의 낭만이 내게 있었던가?

고시에 합격하고 검사가 되었을 때 나는 드디어 한국사회 주류의 대열에 포함된 것으로 생각했으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그 사회에서도 만 11년간 나는 철저한 비주류로 이리저리 내몰려 있었을 뿐이었다.

정치판에 들어온 이후 10여년간 과연 내가 주류를 해본 일이 있는지 요즘 곰곰 생각해 보지만 나는 그것에 대해 부정적이다.

세상에서 주류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좋은 것인지 나는 평생 비주류를 해봐서 잘 안다.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눈을 감으면 세상이 행복해진다.

개그맨 전유성 씨의 말처럼 ‘조금만 비겁하면 인생이 행복하다’고 한다.

비주류를 오래 하다 보면 늘 편향된 사고를 갖게 되고 이해심이 부족해지고 조급증에 시달리게 된다. 철이 들고 난 뒤부터 나는 늘 이점을 경계해 왔다.

혹시 나의 편향됨으로 인하여 내 자식이나 내가 속한 집단, 세상이 손해나 보지 않을까? 평상심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느끼게 된 것은 철이 들고 난 뒤의 일이다.

나는 내 자식들이 한국사회를 긍정적으로 보고 사는 주류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비주류의 절박감이 느껴지십니까? 홍준표 의원은 이 책을 쓴 뒤에 한나라당 원내대표, 한나라당 대표, 경남지사, 자유한국당 대선후보, 자유한국당 대표를 했습니다. 전형적인 ‘보수 주류’의 이력입니다.

그런데도 지금 홍준표 의원에게서는 주류의 체취가 별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오죽하면 <조선일보> 김대중 고문이 홍준표 의원을 ‘독불장군’이라고 비판했겠습니까? 희한한 일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홍준표 의원이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을 거론하는 이유는 자신도 대통령이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잘 될까요?

2002년 노무현 후보와 2021년 홍준표 후보 사이에는 큰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2002년 노무현 신화의 탄생은 ‘본선 경쟁력’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새천년민주당 경선에서 앞서가던 이인제 후보가 대선후보가 되면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에게 ‘무난히’ 패배할 것이라고 생각한 민주당 지지층이 본선 경쟁력이 앞서는 노무현 후보를 앞세워 반란을 일으킨 것입니다.

그런데 홍준표 의원은 지금 본선 경쟁력에서 윤석열 전 총장에게 밀리는 상태입니다. 9월 2일 발표한 전국지표조사의 차기 대통령 적합도에서 홍준표 의원은 이낙연 전 대표와 함께 3위로 올라섰지만, 윤석열 전 총장과는 차이가 여전합니다. 보수 진영 적합도에서는 19%로 윤석열 전 총장을 바짝 추격했습니다.

9월 3일 발표한 한국갤럽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 조사도 비슷합니다. 윤석열 전 총장과는 차이가 큰 편입니다.

지지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폭발력일 것입니다. 2002년 민주당 지지자들은 노무현 후보의 본선 가능성에 회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한겨레21> <시사저널> 등 전문가 조사에서는 노무현 후보가 이미 앞서 있었습니다. 일종의 선행지표였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뒷날 자신이 대선주자로 나선 계기가 바로 이런 전문가 조사 결과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지금 홍준표 의원에게는 이런 선행지표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홍준표 의원의 폭발력이나 본선 경쟁력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양자대결 여론조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지금 대부분의 여론조사는 가상대결을 ‘이재명 대 윤석열’, ‘이낙연 대 윤석열’만 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재명 대 윤석열’, ‘이재명 대 홍준표’, ‘이낙연 대 윤석열’, ‘이낙연 대 홍준표’ 조사로 확대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만약 이런 가상대결에서 홍준표 의원이 이재명 경기지사나 이낙연 전 대표를 이기는 조사 결과가 나오면 순식간에 홍준표 돌풍이 불고 윤석열 전 총장은 와르르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가능할까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유권자들은 홍준표 의원의 강점과 약점을 잘 아는 편입니다. 홍준표 의원은 정치를 오래 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윤석열 전 총장과 같은 정치 신인 프리미엄은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홍준표 의원이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은 정공법밖에 없습니다. 집권 경험이 있는 보수 정당의 거물 정치인답게 가치와 정책으로 대결해야 합니다. 경제·복지와 외교·안보 분야에서 현실 적합성이 있는 공약을 내놓아야 합니다. 대한민국 20대 대통령으로서 국정을 안정적으로 이끌어 갈 정치인이라는 믿음을 국민에게 줘야 합니다.

홍준표 의원에게 다행인 것은 당내 여론이 조금씩 호전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국민의힘에서 오랫동안 의원 보좌관과 실무 당직자로 일했던 인사는 “윤석열 전 총장이나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왜 자신이 대통령을 하겠다는 것인지 그 이유를 정확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며 “당내 민심도 ‘차라리 홍준표가 낫겠다’는 쪽으로 조금씩 바뀌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전 총장의 청부 고발 의혹 사건이 홍준표 의원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심지어 11월 5일 국민의힘 경선에서 윤석열 전 총장이 대선후보가 된다고 하더라도 홍준표 의원에게 다시 기회가 돌아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무슨 얘기냐고요?

공직선거법은 당내 경선에서 진 사람은 후보자로 등록할 수 없게 되어 있지만, “후보자로 선출된 자가 사퇴·사망·피선거권 상실 또는 당적의 이탈·변경 등으로 그 자격을 상실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는 예외를 두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윤석열 전 총장이 대선후보로 선출된 뒤 청부 고발 의혹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 낙마할 경우 홍준표 의원 등 다른 사람들에게 대선 출마의 기회가 다시 열릴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지금은 가능성이 전혀 없는 얘기 같지만, 우리나라 대선에서는 늘 ‘상상 그 이상’이 현실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나 돌아가고 싶다>에서 홍준표 의원은 에필로그 뒷부분을 이렇게 썼습니다. 2005년의 홍준표가 2021년의 홍준표에게 보내는 메시지로 해석해도 좋을 것 같아서 소개합니다.

한국의 기존 보수 집단은 뼈저린 각성으로 새 출발을 하여야 한다. 더 이상 당신들은 이 사회의 주류가 아니다. 더 이상 이 나라는 당신들이 그동안 누려온 부패와 특권의 세상이 아니다. 합리적인 보수로 거듭나야 한다. 이 땅의 자유정신 신장과 진보좌파 극복을 위해 온몸으로 투쟁하는 깨끗한 보수로 거듭나야 한다. 그리하여 국민들로부터 사랑받는 보수가 되어 꿈과 희망이 있는 대한민국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다시 뛰는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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