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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인이 곧바로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

등록 2021-06-27 11:29수정 2021-06-28 09:43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384
대한민국의 미래 책임질 수 있는 비전 결여
국정 양대 축 ‘경제·복지’-‘외교·안보’ 문외한
‘감사원 직무 독립’-‘검찰 정치적 중립’ 위협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녘에 날아오른다”
윤석열 최재형. 스프레드팀 박선미
윤석열 최재형. 스프레드팀 박선미

최재형 감사원장이 28일이나 29일 감사원장직을 사퇴하고 대통령 선거 출마 가능성을 타진할 것이라고 합니다. 최재형 감사원장은 1956년생으로 65세입니다. 경기고, 서울법대를 나와 판사를 하다가 문재인 정부에서 감사원장에 임명됐습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29일 오후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할 예정입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1960년생으로 61세입니다. 충암고, 서울법대를 나와 검사를 하다가 문재인 대통령이 검찰총장으로 발탁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공부를 잘했고,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평생 판사와 검사를 지낸 법조 엘리트입니다. 만약 둘 중 한 사람이 내년 3월 9일 대통령 선거에서 대한민국 20대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법조인에서 대통령으로 직행하는 최초의 사례가 될 것입니다.

지난주 정치 막전막후에서 저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나 최재형 감사원장 같은 법조인이 곧바로 대통령을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오늘은 법조인이 곧바로 대통령을 하는 것이 왜 적절하지 않은지 그 이유를 한 번 더 짚어보겠습니다.

법조인에 대한 개념 정의부터 하겠습니다. 과거에 법조인(法曺人)은 판검사를 의미했습니다. 재조(在曹)에는 판검사가 있었고, 재야(在野)에는 변호사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법조인의 범위를 넓혀서 변호사, 법무사, 법대 교수,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까지 다 법조인이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법을 다루는 전문가’를 법조인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속되게 표현하면 ‘법률 지식으로 먹고사는 사람’ 정도가 될 것입니다.

법조인은 기본적으로 ‘판단하는 사람’입니다. 옳고 그름을 따져주는 사람입니다. 국가 공동체의 유지와 발전에 꼭 필요합니다.

그런데 법조인이 정치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좋은 정치인이 되기도 쉽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가장 큰 이유는 엘리트 의식 때문입니다.

문과에서 공부 잘하는 사람은 무조건 사법시험에 합격해 법조인이 되고, 이과에서 공부 잘하는 사람은 무조건 의사가 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개개인의 적성과 관계없이 그런 선택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법조인과 의사 중에 엘리트 의식이 강한 사람이 많은 이유입니다.

엘리트 의식이 강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신의 노력으로 자신의 지위를 획득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최재형 감사원장이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감사원에서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최재형 감사원장이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감사원에서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인은 다릅니다. 정치인은 기본적으로 공복(公僕)입니다. 정치인이 가진 권력은 국민이 위임한 것입니다. 선거를 통해 선출되지 않으면 정치를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정치인은 국민을 존중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법조인, 의사, 대학교수 등 엘리트 출신으로 정치에 입문하는 사람들이 곤란을 겪는 지점도 바로 여기입니다. 선거에 출마한 후보는 유권자를 상대로 선거 운동을 해야 합니다. 출근 시간에 전철 역 입구에 서서 허리 숙여 인사하고, 명함을 나눠 주고, 악수를 청해야 합니다.

유권자들은 후보에게 눈길도 주지 않습니다. 악수는 거절하기 일쑤입니다. 명함을 받아서 재수 없다고 그 자리에서 찢어버리는 사람까지 있습니다. 선거에 출마해서 이런 수모를 겪은 엘리트 출신 후보들은 집에 돌아가서 우는 경우도 많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박대를 당해본 것입니다. 그러고도 당선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엘리트 출신이지만 정치인으로 변신에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단련 과정을 거쳤다고 봐야 합니다. 어쩌면 엘리트에서 국민의 공복인 정치인으로 거듭나는 당연한 과정일 수도 있습니다.

정치 입문도 이럴진대 하물며 정치의 최고봉인 대통령에 도전하는 일은 어떻겠습니까?

대한민국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입니다. 대한민국의 독립과 영토를 보전하고 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집니다. 대한민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집니다. 행정부의 수반입니다.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내다보고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경제·복지와 외교·안보를 잘 알아야 합니다. 갈등을 조정하고 협상하고 타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일은 다른 어떤 직업보다도 정치인이 가장 잘할 수 있습니다.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을 제외하고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이 모두 정치인 출신인 것은 바로 그런 이유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독립운동가였고 초대 국회의장이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은 군 출신이었지만 국회의원과 정당 대표를 하면서 정치인으로 변신했습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은 국회의원을 여러 차례 지낸 대중 정치인이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회의원과 서울시장을 지낸 정치인이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의원과 정당 대표를 지낸 정치인이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비서실장, 국회의원, 정당 대표를 지낸 정치인이었습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3월 4일 사의를 표명한 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3월 4일 사의를 표명한 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자 이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법조인이 과연 대한민국 대통령을 잘할 수 있을까요? 잘할 수 없습니다. 법조인이 과연 대한민국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을까요? 당선되기 어렵습니다. 왜 그럴까요? 법조인은 정치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법조인이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는 어느 자리일까요?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검찰총장 정도일 것입니다. 그런데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검찰총장 출신 법조인이 곧바로 대통령에 도전할 수 있을까요? 어렵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대한민국 공동체를 이끌어갈 비전을 제시할 수 없습니다.

‘법조인’과 ‘법조인 출신 정치인’을 혼동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은 변호사 출신이지만 법조인이 아니라 정치인입니다. 1997년과 2002년 대선에 나섰다가 낙선한 이회창 총재도 국회의원, 정당 대표와 총재를 지낸 정치인이었습니다.

이번에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로 나선 이재명 경기지사,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양승조 충남지사도 법조인 출신이지만 정치인으로 봐야 합니다.

야권 대선후보 홍준표 의원도 검사 출신이지만 정치인입니다. 1996년부터 국회의원, 원내대표, 정당 대표, 경남지사를 지냈습니다. 검사 출신 원희룡 제주지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황교안 전 대표도 정무직 공무원인 법무부 장관과 국무총리, 그리고 정당 대표를 지냈으니 정치인으로 분류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결국 차기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사람 중에서 법조인에서 대선주자로 직행하려는 사람은 최재형 감사원장과 윤석열 전 검찰총장 두 사람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의 대선 도전이 부적절한 이유는 또 있습니다. 감사원의 직무 독립과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위협하기 때문입니다.

감사원법

2조(지위)

① 감사원은 대통령에 소속하되, 직무에 관하여는 독립의 지위를 가진다.

② 감사원 소속 공무원의 임용, 조직 및 예산의 편성에 있어서는 감사원의 독립성이 최대한 존중되어야 한다.

10조(정치운동의 금지) 감사위원은 정당에 가입하거나 정치운동에 관여할 수 없다.

검찰청법

4조(검사의 직무)

② 검사는 그 직무를 수행할 때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적법절차를 준수하며,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고 주어진 권한을 남용하여서는 아니 된다.

43조(정치운동 등의 금지)

검사는 재직 중 다음 각 호의 행위를 할 수 없다.

1. 국회 또는 지방 의회의 의원이 되는 일

2. 정치운동에 관여하는 일

만약 최재형 감사원장이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어느 한 정파를 대표하는 대선후보가 된다면 그동안 그들이 지휘했던 감사나 수사, 기소가 자신의 대통령 당선을 위해서였다는 비판을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요?

또 그들이 대통령에 당선이라도 되는 날에는 대통령 임기 동안 감사원이나 검찰의 모든 처분이 대통령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한 것이라는 비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감사원이나 검찰이 그런 비판에 시달리는 나라가 온전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저는 지금이라도 감사원 직원과 검사들이 나서서 두 사람의 대선 출마를 막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재형 감사원장,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대선주자로 나서게 한 것은 바로 문재인 대통령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인사를 잘못했다거나, 여권이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에 대한 불만을 과도하게 표출하며 정쟁화시켰다고 비판하는 선에서는 유효한 지적입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대통령 선거에 나서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최재형 감사원장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대선 출마 여부는 전적으로 그들의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집에서 배송이 돼서 직접 이렇게 확인을 해 보니까 ‘이거는 흠이 있어서 안 되겠다’ 그러면 반품을 하는 거예요. 그게 소위 국민적 검증 과정입니다. 그래서 국민적 검증 과정을 통과하고 또 검찰 사무만 하신 분이, 검찰 사무는 대통령 직무의 1%도 안 돼요. 그런 모든 국정을 전부 아우르고 통치할 수 있는 그런 자질과 능력을 갖추었냐, 그거는 또다시 검증받는 걸 또 거칩니다. 두 가지 과정을 거쳐야 되죠. 국정 운영 능력과 그다음 도덕성 문제. 그 검증 과정을 거쳐서 국민들이 ‘이 사람이 정권 교체의 적임이다’ 그렇게 판단이 되면 윤석열 총장도 좋죠.”

국민의힘에 복당한 홍준표 의원이 6월 24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에 복당한 홍준표 의원이 6월 24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준표 의원이 6월 25일 <시비에스>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해서 한 말입니다. 저는 홍준표 의원이 지적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프리드리히 헤겔이 ‘법철학’에 쓴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녘에 날아오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법률가의 지혜는 모든 일이 끝난 뒤에 정리하고 평가할 때 발휘할 수 있습니다. 최재형 감사원장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법률가입니다. 지금은 법률가의 시간이 아닙니다.

대통령 선거에 도전하고 싶으면 먼저 정치에 입문해서 국정 경험과 정치 경험을 쌓아야 합니다. 대한민국 공동체를 이끌 수 있는 비전과 노선과 정책을 갖춰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섣불리 나서면 당사자도 불행해지고 대한민국도 불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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