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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과 안철수 ‘소명론’ 데칼코마니

등록 2021-06-20 22:55수정 2021-06-21 02:30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온전히 정치하라는 뜻으로 착각하면 곤란”
‘국민이 불러서 나왔다’는 소명론, 통할까

“내가 처음부터 정치하겠다고 한 게 아니지 않으냐. 난 국민한테 소환돼서 나왔다. 그러니 날 소환한 국민이 가리키는 길로 가야 하는 것 아니냐. 국민의 열망과 바람에 따라 할 것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6월 초 친구 이철우 교수에게 했다는 말이다. 일종의 ‘소명론’이다. 정치인의 소명론은 위험하다. 신념윤리에만 치우쳐 책임윤리를 방기할 수 있다.

정치인은 종교인과 달리 세속의 일을 다룬다. 인간의 욕망과 갈등을 조정해 공동체의 안위와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그 대가로 정치인에게 돌아가는 것은 권력과 명예다. 정치인은 ‘욕심덩어리’일 수밖에 없다.

“국민의 뜻에 따라 나왔을 뿐, 나는 아무런 욕심이 없다”고 말하는 정치인은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사실은 정치인이 아니라고 봐야 한다. 윤석열 전 총장은 어디에 해당할까?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10년 전 정치를 시작하면서 소명론을 말한 적이 있다. 2012년 <안철수의 생각>의 여는 글은 “자고 일어나보니 세상이 바뀌어 있었다”는 말로 시작한다. 그는 “제가 정치에 참여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제 욕심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지금 저에 대한 지지는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만의 표현, 저에 대한 적극적 지지와 소극적 지지 등 여러 가지가 섞여 있다고 봅니다. 그러니 시민들의 열망을 무시할 수도 없지만 이를 온전히 정치하라는 뜻으로 착각해도 곤란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안철수 대표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에서 현재로 날아와 윤석열 전 총장에게 조언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9일 오후 서울 중구 남산예장공원 안에 있는 이회영기념관 개관식에 참석해 전시물을 관람한 뒤 취재진에 둘러싸여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9일 오후 서울 중구 남산예장공원 안에 있는 이회영기념관 개관식에 참석해 전시물을 관람한 뒤 취재진에 둘러싸여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안철수 대표와 윤석열 전 총장은 소명론 이외에도 여러 가지 닮은 면이 있다.

첫째, 공정을 핵심 가치로 내세우고 있다.

안철수 대표는 2017년 대선 공약집에서 공정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공정하고 투명한 입시제도 개선’, ‘공정 성장의 기초, 경제개혁’, ‘공정과 상생 기반의 건강한 미디어 세상’ 등이다.

윤석열 전 총장은 엘에이치(LH) 사태가 터지자 “이 나라 발전의 원동력은 공정한 경쟁이고 청년들이 공정한 경쟁을 믿지 못하면 이 나라 미래가 없다”고 했다.

안철수 대표도 공정, 윤석열 전 총장도 공정,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도 공정을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세 사람의 공정은 같은 것일까, 다른 것일까? 공정은 보수의 새로운 가치일까, 그냥 이 시대의 유행어일까?

둘째, 반정치주의다.

우리 유권자들은 기본적으로 기성 정당과 정치인에 대한 반감이 있다. 새로운 정치인의 등장에 환호하는 경향이 있다. 과거 정주영·고건·문국현·반기문 등 비정치인들이 돌풍을 일으켰던 것도 같은 이유다.

안철수 대표는 2012년 ‘반박근혜-비문재인’ 성향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윤석열 전 총장은 지금 ‘반문재인’ 성향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런데 반정치주의를 타고 정치에 진입한 사람은 오래지 않아 신선도가 떨어지면서 지지도가 낮아진다. 정치를 시작하는 순간 정치인이 됐기 때문이다. 반정치주의의 역설이다.

안철수 대표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윤석열 전 총장도 본격적으로 정치를 시작하면 곧바로 인기가 떨어지는 역설적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셋째, 결단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스타일이다.

두 사람 모두 중요한 순간에 결단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는 경향이 있다. 안철수 대표는 한때 별명이 ‘간철수’였다. 결정적인 문제를 앞에 두고 애매한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윤석열 전 총장의 별명 중에 ‘윤차차’라는 것이 있습니다. “차차 알게 될 것”이라는 말을 자주 해서 붙은 별명이다.

어쨌든 두 사람은 내년 3월 대선을 놓고 경쟁하는 관계다. 윤석열 전 총장이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 어떤 식으로든 격돌하게 될 것이다.

두 사람 모두 국민의힘에 입당해서 국민의힘 대선 후보 자리를 놓고 싸우게 될지, 국민의힘 경선이 끝난 뒤 야권 후보 단일화 국면에서 싸우게 될지, 아니면 내년 대통령 선거 본선에 각각 출마해서 겨루게 될지 알 수 없다.

‘국민에 의해 불려 나온’ 두 사람의 싸움은 누구의 승리로 끝날까?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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