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의용 외교장관이 남북이 합의한 ‘한반도 비핵화’ 개념엔 주한미군 철수와 미국이 한국에게 제공하는 확장억지(핵우산) 제거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28일 오전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이 한때 주장했던 ‘조선반도 비핵지대화’의 차이를 묻는 조태용 국민의힘 의원의 질문에 “북한의 소위 비핵지대화라는 개념은 1992년 1월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통해 사실상 소멸됐다고 본다”며 “주한미군의 주둔 문제와 확장억지 등의 문제는 한반도 비핵화와는 상관 없다는 게 우리 정부의 기본 입장이다. 이것은 우리가 그동안 북한 측에도 분명히 얘기를 했고, 북한도 충분히 이해를 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이어 남북이 4·27 판문점선언을 통해 확인하고 북미가 6·12 싱가포르 공동선언을 통해 약속한 한반도 비핵화란 1992년 1월 남북이 발표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담긴 “남과 북은 핵무기의 시험, 제조, 생산, 접수, 보유, 저장, 배비, 사용을 하지 아니한다”는 내용을 뜻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정의용 장관은 지난 25일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소개하는 기자회견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이 주장하는 ‘한반도 비핵지대화’의 차이를 묻는 질문에 “양자 사이에 큰 차이는 없다고 본다”고 답해 논란을 빚었다. 보수 언론은 이후 북한이 1970년대 주장했던 한반도 비핵지대화엔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는 확장억지와 핵무기를 탑재한 전략자산 전개 등을 제거하는 개념이 포함돼 있다고 밝히며 정 장관을 맹 비난했다. 특히, <동아일보>는 이튿날인 26일 사설에서 “그 차이가 큰데도 그걸 몰랐다면 외교 수장으로 자질 부족을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 장관은 ‘북한이 더 이상 비핵지대화 주장을 하지 않는다’고 밝히며, 남북이 생각하는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인식이 같다는 점을 재차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한반도 비핵지대화는 많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달성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자주 언급돼 왔다. 한국은 미국의 확장억지를 통해 안전보장을 받으면서, 북한에게만 핵무기를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달성하기 힘든 외교 목표이기 때문이다. 현재는 표면화되지 않았다 해도, 북-미 간에 비핵화 논의가 심화되어 갈 수록 이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
세계적으로도 비핵지대화는 핵확산을 막기 위한 유용한 대안으로 오랫동안 주목 받아왔다. 2009년 8월 채택된 유엔 안보리 결의 1887호를 보면, “비핵지대 조약을 체결하기 위해 취해진 조치들을 환영 지지하고, 지역 당사국의 자유로운 준비에 기초하고 1999년 유엔군축위원회 지침에 따라 국제적으로 인정된 비핵지대가 세계와 지역 평화와 안전을 증진하고 비확산 체제를 강화하며 핵 군축의 목표를 실현하는 데에 기여한다는 확신을 재확인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후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 모턴 핼퍼린은 2011년 동북아시아 비핵지대(NEA-NWFZ)론을 제창한 바 있다. 남북과 일본이 비핵지대의 ‘지대 내 국가’가 되겠다고 선언하면, 미-중-러 등 주변 핵 국가들이 핵은 물론 통상무기로도 이 나라들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실효성 있는 안전보장을 한다는 내용이다. 실제로 지구상엔 현재 중남미,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 5개 비핵지대가 있다. 그 때문에 평화네트워크 등 평화시민단체는 이런 예를 언급하며 한반도 비핵지대는 “남북한이 자주적으로 핵 문제 해결을 추구하면서도 국제적인 협력을 도모할 수 있는 방안”이라 주장해 왔다.
길윤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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