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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외교

‘위안부 운동’ 30년…원칙론·현실론 처음으로 한 자리에

등록 2021-05-27 16:13수정 2021-05-28 14:02

학자·원로·활동가·언론인 20여명 회의
‘고노 담화에 기반한 해법 모색’엔 모두 공감
12·28 합의를 인정할지엔 첨예히 견해 갈려
와다 명예교수 등 일본 원로 7인 ‘3월 제안’에
“한국 사회도 진지하게 응답해야 할 의무 있어”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 온 사회 원로, 활동가, 학자 20여명이 26일 오후 서울 평창동 ‘대화의 집’에 모여 허심탄회한 속내를 나눴다. 이 모임을 준비한 대화문화아카데미와 서울대 일본연구소에선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공감대를 넓히기 위해 이 모임을 정례화할 계획이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 온 사회 원로, 활동가, 학자 20여명이 26일 오후 서울 평창동 ‘대화의 집’에 모여 허심탄회한 속내를 나눴다. 이 모임을 준비한 대화문화아카데미와 서울대 일본연구소에선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공감대를 넓히기 위해 이 모임을 정례화할 계획이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그동안 일본군 ‘위안부’ 운동은 같은 색깔을 가진 그룹들이 각자 따로따로 움직여왔습니다. 다양한 생각을 가진 이들이 오늘처럼 한 자리에 모인 것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1991년 8월14일 김학순 할머니의 첫 공개 증언 이후 30년째를 맞는 위안부 운동을 어떻게 성공적으로 마무리해야 할까. 이 무거운 주제를 논의하기 위해 26일 오후 2시 반 서울 평창동 ‘대화의 집’으로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애써온 사회 원로, 활동가, 학자, 언론인들이 모였다. 이홍구 전 국무총리, 이부영 동아시아평화회의 운영위원장, 이삼열 대화문화아카데미 이사장, 최상용 전 주일대사, 이정옥 전 여성부 장관, 김현철 서울대 일본연구소장,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김창록 경북대 교수 등 20명이다. 이들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어떻게 풀 것인가-사회적 대화를 위하여’란 주제로 대면과 온라인을 겸해 진행된 이날 회의에서 그동안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던 속내를 털어놓았다. 이 행사 실무 준비를 맡은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는 “위안부 피해자들이 제기한 소송에 대해 한국 법원의 엇갈린 판결이 나왔고, 피해자들의 자연 수명이 가까워 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할지 대해 다양한 입장을 가진 이들이 흉금을 터놓고 의견을 나누기 위해 이 자리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행사 사회를 맡은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도 이날 행사의 목적을 “서로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이라 정의했다.

한국 사회의 원로와 주요 인사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은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등 일본 사회 원로 7명이 지난 3월24일 ‘위안부 문제 해결을 향해-우리들은 이렇게 생각한다’라는 제목의 성명에서 자신들이 생각하는 사실상 ‘마지막 해법’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일본 원로들은 한·일 양국 정부를 향해 지난 2015년 12·28합의의 의미를 재확인하고 이 합의의 정신을 한층 더 높여가기 위해 노력해 줄 것을 요구했다. 스가 요시히데 총리를 향해선 1993년 고노 담화와 1995년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한다는 일본 정부의 입장에 기초해 12·28 합의에 나온 “일본 정부의 책임을 통감한다”는 표현을 다시 한번 문서로 정리한 뒤, 그 뜻을 아이보시 고이치 주한 일본대사를 통해 생존 피해자들에게 전해 줄 것을 권고했다. 한국 정부에게는 일본이 화해치유재단에 출연한 10억엔 중에 남은 돈 5억4000만엔에 한국 정부 예산을 보태 ‘위안부 문제 연구소’를 만들도록 일본 정부와 협의하라고 요청했다. 이 자리에 모인 한 원로는 “일본 원로들의 마지막 외침에 한국 사회가 성실히 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모인 이들은 역사 연구와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1993년 고노 담화의 정신을 되살려 한-일 두 나라 정부가 새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원칙엔 합의를 이뤄냈다. 하지만, 일본 원로들의 권고와 달리 12·28 합의를 존중해야 할지에 대해선 의견이 첨예하게 갈렸다. 현실주의적 입장에 선 이들은 “생존 할머니들이 살아계시는 짧은 시간에 뭘 할 수 있는지 현실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 “당위가 아니라 현실적 실천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원칙론을 주장해 온 쪽에선 “12·28 합의는 이미 너무 오염돼 도무지 재활용할 수 없다”, “일본과 다시 섣불리 타협하기보다 이용수 할머니 등이 주장하는 국제사법재판소(ICJ) 회부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위안부 운동 30주년을 맞는 올해 7~8월을 잘 활용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남기정 교수는 “정의기억연대의 1500번째 수요집회가 열리는 7월15일과 김학순 할머니가 첫 증언을 내놓은 지 30주년이 되는 8월14일 사이 한달이 위안부 문제 30년을 마무리하고 피해 생존자 이후의 시대를 준비하는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고, 최봉태 대한변협 일제피해자인권특별위원회 위원장은 “고노 담화가 나온 8월4일부터 8월14일까지를 한-일의 화해 주간으로 만들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모임이 끝난 뒤 논의 내용을 정리한 원로들은 “우리 노력이 당장 정책화되진 않을지라도 한국 사회의 진정 어린 노력이 일본 사회에 전달될 것으로 본다”, “서로 입장이 다른 이들이 모였다는 것 자체에 큰 의미가 있다. 서로 경청하고 공감대를 넓혀갈 수 있도록 이 모임을 더 지지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행사를 준비한 대화문화아카데미와 서울대 일본연구소는 이 모임을 가급적 정례화 해 위안부 문제의 해법에 대한 사회 내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도록 노력할 예정이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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