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이 눈앞에 다가오며, 회담의 성과를 둘러싼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 만남은 향후 4년 간의 한-미 관계의 큰 틀을 규정한다는 의미 뿐 아니라, 코로나19 대유행과 반도체 등 첨단 산업을 둘러싼 미-중 대결이 본격화되는 시기에 이뤄진다는 점에서 이전 어떤 정상회담보다 한국 사회에 깊고 넓은 영향을 끼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문 대통령은 17일 열린 수석보좌관 모두 발언에서 “방역에 만전을 기하고 백신 접종을 차질 없이 시행하며, 일상 회복의 시기를 조금이라도 앞당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이번 방미를, 백신 협력을 강화하고 백신 생산의 글로벌 허브로 나아가는 계기로 삼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밝혔다. 정부가 이번 회담의 핵심 의제로 백신 공급 등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한-미 협력 강화를 꼽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은 한동안 자국 내 방역을 우선시하는 모습을 보여 왔지만, 지난 13일 백신 접종을 완료한 이들에 대한 마스크 착용 의무를 없애는 등 빠르게 여유를 찾고 있다. 이번 회담을 통해 백신 공급 일정을 얼마나 앞당기고, 한-미 바이오 기업들 사이의 ‘백신 파트너십’을 어디까지 구체화할 수 있을지 관심을 끈다.
한-미 정상이 의견을 모아야 할 그밖에 주요 이슈로는 △대북 정책 △대중 정책 △반도체 등 첨단 분야 협력 등이 있다. 이 가운데 핵심 의제는 역시 북핵 문제다.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취임 4주년 특별연설에서 “긴 숙고의 시간도 이제 끝나고 있다. 미국과 북한 사이의 대화를 복원하고 평화협력의 발걸음을 다시 내딛기 위한 길을 찾겠다”며 북의 호응을 촉구했었다. 지난달 말 바이든 행정부가 ‘대북 정책 재검토’ 결과의 큰 틀을 공개하며, 외교를 통해 북핵 문제를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만큼 정부는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이 호응할 수 있는 한-미 공동의 유인책을 끌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쓸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먼저 한-미 양국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약을 담은 6·12 싱가포르 공동선언을 계승한다는 내용을 공동선언문 등에 집어넣으려 할 것으로 보인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보면, 북한이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워 온 ‘적대시 정책 철회’의 핵심 내용인 대규모 한-미 연합훈련의 조정(또는 정지), 미국이 강하게 집착하는 북한 인권 문제 등 난제를 어떻게 처리할지도 관심거리다.
미국이 추진 중인 대중 견제 전략에 한국이 어디까지 발을 담글지도 이번 회담에서 피해갈 수 없는 주요 이슈다. 일본은 지난달 16일 열린 미-일 정상회담에서 중국이 ‘핵심 이익’으로 꼽아온 대만 문제를 공동선언에 언급하며, 미국의 대중 전략에 한발 더 깊숙이 밀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견줘 한국 정부는 중국 견제를 위한 안보 협의체인 ‘쿼드’ 참여 등 이와 관련한 질문이 나올 때마다 “쿼드 참여에 대한 미국의 요청이 없었다” “한국의 신 남방정책과 미국의 인도·태평양 정책 간 조화로운 협력을 추진할 것”이라는 소극적 답변에 머물러왔다. 하지만, 최근 정부가 한-미 간 백신 협력을 강조하며 변화의 낌새를 보이고 있어, 기존 입장에서 의미 있는 변동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마지막 이슈는 반도체 등 첨단 산업 분야의 한-미 협력 강화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월25일 반도체 등 핵심 4개 품목의 공급망이 안전한지 100일 동안 점검할 것을 지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중국이 강세를 보이는 △5세대 통신망(5G) △인공지능 △빅데이터 분야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이를 뒷받침하는 기간산업인 반도체 등에서 강세를 보이는 한국·대만 등을 결집해 공급망 재편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기업들은 이에 적극 동참한다는 입장이어서 이번 회담을 계기로 대규모 대미 투자 계획이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길윤형 이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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