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상춘재에서 <뉴욕타임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조만간 공개되는 미국 정부의 ‘대북정책 재검토’ 결과를 둘러싸고 한-미-일 당국 간의 치열한 물밑 힘 겨루기가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언론 인터뷰를 통해 한국 정부의 입장을 강한 어조로 밝히면서, 최종 결론 도출을 위한 막판 진통이 길어지는 모양새다.
잘리나 포터 미 국무부 수석부대변인은 23일(현지시각) 정례 브리핑에서 ‘대북 정책 재검토 결과가 몇주 안에 나온다고 한 지 한달이 넘었다. 한국 대통령이 5월 말에 올 때까지 미 행정부가 기다릴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둘 사이에 관계가 있냐’는 질문에 대해 “우리는 재검토에 구체적 시간표를 갖고 있지 않다. 바이든 행정부는 대북 정책을 철저히 부처 간 검토로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미국 방문 뒤에 재검토 결과가 공개되냐는 질문에 즉답을 피하면서, 예상보다 조금 더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취지로 답한 것이다.
미 국무부 기자회견에서 이런 질문이 나온 것은 문 대통령이 21일치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조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강한 어조로 밝혔기 때문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미-북이 하루빨리 마주 앉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라며 두 나라가 비핵화 조처와 그에 대한 대가를 “동시에” 주고 받는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방식의 비핵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트럼프 정부가 남긴 것(싱가포르 공동선언) 위”에서 “서로 신뢰할 수 있는 로드맵(비핵화의 일정표)”를 만들어야 한다는 구체적 방법론까지 제시했다.
문 대통령이 인터뷰에 임한 것은 지난 16일 열린 미-일 정상회담을 통해 대북 정책에 대한 바이든 대통령의 최종 판단이 일본 쪽으로 기울어지게 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 전날인 15일 기자회견에서 백악관 고위 당국자는 두 정상이 대북정책 재검토 결과를 “마무리할 기회를 가질 것”(have a chance to put the finishing touch)이라며, 결과가 곧 나올 것임을 강하게 암시했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와 대미 접근을 미국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언론 인터뷰를 통해 견제한 셈이다.
미-일 정상은 16일 정상회담을 통해 ‘새 시대를 위한 미-일의 글로벌 파트너십’이란 제목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을 보면, 두 나라는 향후 대북 접근과 관련해 △북한에 유엔 안보리 결의 준수 촉구 △(한반도 비핵화가 아닌) 북한의 비핵화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억지력의 강화(한미, 미일 연합훈련 강화) △확산 방지 등 네 가지 원칙에 합의했다. 하지만, 이견도 관찰됐다. 스가 총리는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미-일이 “모든 종류의 대량파괴무기와 모든 사거리의 탄도미사일에 대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는 해체’(CVID)에 합의했다”고 밝혔지만, 이 내용은 성명엔 포함되지 않았다. 중간에 선 미국의 팔을 한쪽씩 잡고 한국은 싱가포르 공동선언을 기초로 한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비핵화, 일본은 북한이 강하게 거부하는 ‘시브이아이디’ 쪽으로 잡아 끄는 모양새다.
문 대통령이 인터뷰가 공개된 다음날인 22일 노규덕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은 성 김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대행을 상대로 유선협의에 나섰다. 이 사실을 전하는 외교부 보도자료를 보면, “마무리 단계에 있는 미국의 대북정책 검토와 관련해 한-미 간 긴밀한 협력과 공조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는 표현이 나온다. 대통령이 인터뷰로 밝힌 한국의 입장을 실무선에서 재차 강조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국이 한국의 의향을 어디까지 받아들일지, 기대대로 문 대통령의 방미 이후로 검토 결과 공개를 미룰지 여전히 불투명하다. 외교부 핵심 당국자는”(재검토 결과는) 수일 내는 아니지만 곧 나올 것이다. 한-미 정상회담 이후라면 하반기까지 가는 것인데 너무 멀다. 그 전에 나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길윤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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