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평창겨울올림픽 개막식을 함께 관람하고 있는 김여정 부부장과 문재인 대통령 부부. <한겨레> 자료사진
북한이 7월23일 개막을 앞 둔 도쿄 올림픽에 “참가하지 않기로 토의 결정”했다는 방침을 전격 공개하면서, 이번 올림픽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재개를 위한 계기로 삼으려던 정부의 계획이 차질을 빚게 됐다. 북한이 불참 이유로 한반도 정세를 둘러싼 복잡한 정치 상황이 아닌 코로나19로 인한 ‘세계적 보건 위기 상황’을 제시한만큼 이 결정을 되돌리기 위한 정부의 설득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올림픽위원회(위원장 김일국)는 지난달 25일 평양에서 열린 총회에서 “악성 비루스(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의한 세계적인 보건 위기 상황으로부터 선수들을 보호하기 위해 위원들의 제의에 따라 제32차 올림픽경기대회에 참가하지 않기로 토의·결정했다”고 <조선체육> 누리집을 통해 5일 발표했다. 북은 이 발표에서 올림픽 불참 결정 이유로 코로나19 대유행 말고 대외정책적 고려 등 다른 요인은 언급하지 않았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아직 관련 보도를 내놓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9월 스가 총리의 취임을 계기로 경색된 한-일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적극적인 대일 외교를 전개해 왔다. 당시 정부가 일본을 설득하며 내세운 명분은 도쿄 올림픽이 ‘평화 올림픽’으로 치러질 수 있도록 한국이 도움을 아끼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방일(8~11일), 한-일 차관 전화회담(12일), 김진표 한일의원연맹 회장 방일(12~14일) 등을 통해 “내년 도쿄올림픽 성공 개최를 매개로 한-일 협력의 계기를 찾아야 한다”는 의견을 일본에 전했다. 특히, 박 원장은 스가 총리에게 “도쿄 올림픽의 평화적 개최와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이는 문재인 대통령밖에 없다”며 한-일 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역설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 시도는 일본이 ‘한-일 관계 회복의 계기를 한국이 만들어야 한다’는 냉담한 입장을 바꾸지 않으며 실패하고 말았다.
북한은 3월25일 평양에서 올림픽위원회 총회를 열어 7월 열리는 도쿄올림픽 불참을 결정했다. 조선체육 누리집 갈무리
문 대통령은 이후에도 도쿄 올림픽을 통해 남북 관계, 한-일 관계를 개선하고 그 여세를 몰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재가동하고 싶다는 의욕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1월21일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에서 “올해 도쿄 올림픽을 코로나로부터 안전한 대회로 성공적으로 치러낼 수 있도록 협력하면서 한-일 관계 개선과 동북아 평화 진전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고, 이목을 끌었던 3·1절 기념사에서도 “올해 열리게 될 도쿄 올림픽은 한·일 간, 남·북 간, 북·일 간 그리고 북·미 간의 대화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북의 올림픽 참가에 기대를 건 것은 한국만이 아니었다. 코로나19 대응 미숙과 장남의 총무성 관료 접대 문제 등으로 지지율이 크게 떨어진 스가 총리도 올림픽을 ‘분위기 반전’의 기회로 삼겠다는 속내를 여러 차례 밝혀 왔다. 30%대 후반에 머물고 있는 현재 지지율 추세가 고착화되면, 스가 총리는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잔여 임기(올 9월)를 때우는 1년짜리 ‘단임 총리’로 끝나고 만다.
그 때문에 스가 총리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혹은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이 올림픽을 계기로 방일할 경우 어떻게 하겠느냐는 국회 질의가 나올 때마다 ‘만나겠다’는 취지의 답변을 이어왔다. <마이니치신문>이 지난해 11월15일 김 위원장이 일본을 방문한대고 해도 “납치 피해자의 귀국 등 큰 성과를 얻지 못한다면 (거꾸로) 정권이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고 지적할 정도였다.
하지만, 냉정히 살펴 볼 때 이번 결정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였다. 2019년 2월 말 ‘하노이 결렬’ 이후 북한은 북-미 대화 재개의 조건으로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 등 ‘적대시 정책 철회’를 꾸준히 요구해 왔지만, 한·미가 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막바지 단계에 이른 조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 재검토 결과가 북한에 결코 호의적이지 않을 것이란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정부가 3월 초 한-미 연합훈련을 실시하자 김여정 부부장은 지난달 16일 담화에서 “남조선 당국과는 앞으로 그 어떤 협력이나 교류도 필요없”다며 “이번의 엄중한 도전으로 임기 말기에 들어선 남조선 당국의 앞길이 무척 고통스럽고 편안치 못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고, 이어진 30일 담화에서도 문 대통령을 ‘미국산 앵무새’라고 비꼬았다. 북한은 대화 불참의 이유로 “세계적인 보건 위기 상황에서 선수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들었지만, 올림픽 참가로 지난 2018년과 같은 정세 변화를 불러올 것이 예견됐다면, 코로나19 위기에도 과감한 결정을 내렸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아쉽다는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통일부 당국자는 6일 기자들을 만나 “정부는 이번 올림픽이 한반도 평화와 남북 화해·협력을 진전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왔으나 코로나19 상황으로 그러지 못하게 된 데 대해 아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남북이 국제경기대회 공동 진출 등 스포츠 교류를 통해 한반도 평화와 협력을 진전시킨 경험이 있는 만큼, 정부는 앞으로도 스포츠 등 여러 분야에서 이런 계기를 찾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가토 가쓰노부 관방장관도 6일 “국제올림픽위원회 등과 이뤄지는 조정이기 때문에 주시해 가겠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히면서도 “많은 국가들이 참가할 수 있도록 감염 대책을 포함한 환경 정비를 위해 계속해 노력해 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아사히신문>은 관련 소식을 속보로 전하며, “북한의 주장대로 코로나19 대책을 우선한 것이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3월25일 결정을 내린 뒤) 발표가 늦어진 것은 공개를 위한 내부 절차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는 한국 정부 당국자의 반응을 소개했다.
정부는 북이 제기한 ‘보건 위기’와 관련한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는 등 설득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정부가 해당 정보를 사전 파악했던 것으로 안다. 북을 설득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지난해 4월 올림픽 출전 선수들의 등록 마감 기한을 7월5일까지로 제시한 바 있다.
길윤형 기자, 이제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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