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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외교

정부, 미·중 동시 회담…대북정책 ‘양다리 외교’ 시험대

등록 2021-03-31 20:54수정 2021-04-01 02:45

미국선 한·미·일 안보실장 회의
중국에선 한·중 외교장관 회의

미 대북정책에 한국 의견 전하고
중국엔 남북관계 개선 역할 협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돌파구 기대
대만 코앞 ‘샤먼’ 장소 싸고 뒷말도
미-중 갈등의 최전선에 선 한국이 4월2~3일 워싱턴에서 개최되는 한-미-일 안보실장 회의와 미-중 갈등의 ‘화약고’인 대만이 내려다보이는 푸젠성 샤먼의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 동시에 참여한다.

정의용 외교장관은 “우리가 의도적으로 (시기를) 결정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지만,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재가동을 위해 미·중 양국을 동시에 활용하려는 문재인 정부의 전략적 의도를 읽어낼 수 있다. 대북정책 재검토 작업을 마무리 중인 미국에 한국의 의견을 최대한 전하면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중국의 역할’에도 기대를 걸어보겠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31일 서훈 국가안보실장이 4월2일(현지시각) 한-미-일 안보실장 협의를 위해 미국을 방문한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서 실장은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게서 미국의 대북정책 재검토에 대한 설명을 듣고 기타무라 시게루 일본 국가안전보장국장 등과 만나 한-미-일 협력 증진 방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할 예정이다. 에밀리 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도 30일 성명에서 한-미-일 3자 협의를 공개하면서 “협의 장소는 워싱턴 인근 메릴랜드주 애나폴리스에 있는 미 해군사관학교”라고 밝혔다. 서 실장은 3자 협의 뒤 미·일과 양자 협의에도 각각 임할 계획이다.

이와 동시에 한국은 민감한 양안관계를 상징하는 지역인 샤먼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3일 만난다. 외교부는 정 장관이 이 회담을 통해 “한-중 양자관계 발전방안을 모색하는 동시에, 한반도와 지역 및 국제문제 등에 대해 심도 있는 의견을 교환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장관의 이번 방중은 왕이 외교부장이 지난해 11월 한국을 방문한 데 대한 답방 형식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정 장관은 두 외교행사가 겹친 민감성을 인식한 때문인지 31일 기자회견에서 “한-중 외교장관 회담과 한-미-일 안보실장 회담은 의도적으로 결정한 건 아니고 우연히 시기가 겹쳤다. 미·중 모두 우리에겐 중요한 나라다. 미국은 유일한 동맹이고, 중국은 우리의 가까운 이웃이자 최대 교역국이다. 미·중은 우리의 선택 대상이 결코 아니다. (이들도) 우리에게 그런 요구를 해온 적이 없다”고 되풀이해 강조했다. 하지만 왕이 부장과의 만남과 관련해선 “한반도의 비핵화를 통한 보다 항구적인 평화정책에 대해 중국은 늘 우리 입장을 지지해왔다. 중국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매우 솔직한 건설적인 방향으로 협의를 하겠다”며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중국의 도움을 받고 싶다는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중국은 2022년 2월 열리는 베이징 겨울올림픽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을 ‘동시 초청’하겠다는 카드를 내비치며, 한국의 대미 접근을 견제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한국의 ‘양다리 전략’이 성공할지 여부다. 당장 한-중 외교장관 회담 장소와 관련해 뒷말이 나오고 있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강조하는 중국은 대만·홍콩·신장 문제는 어떤 일이 있어도 양보할 수 없는 ‘핵심적 이익’이라고 주장하며, 미국의 간섭을 배제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중국 공군기들이 잇따라 대만 방공식별구역에 진입하자, 존 애퀼리노 미 인도·태평양사령관 지명자는 23일 상원 군사위원회에서 “대만을 침공하려는 중국의 위협이 심각하다”고 경고했다. 대만 정부는 25일 4년마다 발표하는 국방계획에서 “중국이 대만에 대한 적의를 드러내 위협을 거듭하고 있다”며 보유 중인 공대지 미사일의 사정 거리를 늘릴 계획을 밝혔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30일 미·일 양국이 4월8일 워싱턴에서 열리는 정상회담 이후 발표하는 공동문서에서 “대만해협의 안정이 중요하다”는 내용을 명기하기 위한 조정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 속에서 미국의 또다른 동맹인 한국이 샤먼에서 외교장관 회담을 열면, 대만에 대한 중국의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 위성락 전 주러시아대사는 “한국이 지금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곤란하다. 곧 마무리되는 대북정책 재검토 결과에 한국이 아닌 일본의 의견이 대거 반영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길윤형 기자,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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