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최악의 상태로 방치돼 있는 한-일 관계와 관련해 “외교장관 회담이 조기에 개최되길 희망한다. 어떤 형태로든 일본 외무상과 만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정 장관이 일본과 형식에 구애 받지 않고 만날 수 있다고 밝히면서, 조 바이든 행정부가 4월 말 미국에서 추진 중인 한-미-일 3개국 외교장관 회담이 성사될 것으로 보인다.
정 장관은 31일 오전 외교부 청사에서 진행된 내신 기자단 기자회견에서 지난 2월 초 취임 후 전화 회담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과 접촉 계획을 묻는 질문에 “어떤 형태로든 만날 용의가 있다. 한-일 간 양자회담이든 (4월2일 예정된) 한-미-일 안보실장 회의처럼 한-미-일 3국 회담이든, 또 제가 가든지 일본에서 한국에 오든지 언제든지 만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정 장관은 이어 “일본과 소통 강화를 위해 아시아태평양 국장이 오늘 일본으로 출발했다. 일본의 상대 국장과 만나 고위 실무급 협의 채널을 재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지난 17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 25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과 회담했고, 4월2일 중국에서 왕이 외교장관과 회담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악화된 한·일 관계 탓에 모테기 외무상과는 아직 전화 회담도 하지 못하고 있다.
한-일이 쉽게 마음의 앙금을 털어내지 못하자 미국 정부가 나서기 시작했다. 한-일 외교장관이 양자 회담을 열기 껄끄러운 상황이라면, 미국이 한-미-일 3개국의 틀을 활용할 의향이 있다는 소식이 워싱턴발 언론을 통해 새어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31일 “모테기 외무상이 4월 하순에 미국을 방문해 블링컨 미 국무장관, 정의용 한국 외교장관과 회담하는 조정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조정에 들어갔다’는 말은 3개국 외교장관 회담을 연다는 원칙에 일본이 동의하고 한·미 양국과 일정 조율을 시작했다는 의미다.
정 장관은 이어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한-일 간 역사 현안에 대해선 정부가 그동안 밝혀온 기조를 재차 강조했다. 정 장관은 “강제징용 문제는 (2018년 10월30일 나온) 우리 대법원 판결이 있기 때문에 이를 존중하는 범위 내에서 현실적 방안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그 현실적 방안을 (일본에) 제시하고 있다”며 “일본이 적극적으로 응해주면 대화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선 “이 문제는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해야 한다. 일본이 2015년 위안부 합의 정신에 따라 반성하고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면 문제의 99%는 해결될 수 있다. 일본의 마음에 따라선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는 견해를 밝혔다.
길윤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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