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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외교

블링컨은 끝내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언급하지 않았다

등록 2021-03-18 20:37수정 2021-03-19 02:45

한-미, 대북·대중 전략 시각차

정의용 “북미협상 재개 희망”에도
블링컨 “북 핵위협 감축” 더 강조
‘중국 역할론’ 꺼내 다자접근 선호
한미연합훈련 축소 반대 분명히
로버트 랩슨 주한 미국대사 대리와 정은보 외교부 한미 방위비분담금 협상대사가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가서명식을 진행한 가운데 함께 참석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팔꿈치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로버트 랩슨 주한 미국대사 대리와 정은보 외교부 한미 방위비분담금 협상대사가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가서명식을 진행한 가운데 함께 참석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팔꿈치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바이든 신행정부의 대북 접촉 노력을 지지한다. 북-미 간에 비핵화 협상이 조속히 재개되길 희망한다.”(정의용 외교부 장관)

“미국과 동맹에 대한 북의 미사일·핵 위협을 감축시키고 북한 주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

조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뒤 처음 열린 한-미 외교·국방장관(2+2) 회의는 향후 미국 정부의 대북·대중 정책 방향을 확인해볼 수 있는 중요 시험대였다. 미국의 외교·국방 정책을 좌우하는 블링컨 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이 어떤 대북·대중 메시지를 쏟아내는지에 따라 내년 5월 임기를 마치는 문재인 정부는 물론 차기 정권의 대외정책이 큰 제약을 받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17일 한-미 외교장관 회담, 18일 2+2 회의 뒤 이뤄진 기자회견에서 나온 미국 쪽 발언을 모아보면 한국 정부의 지향과 ‘적잖은 괴리’가 확인된다.

2+2 회의 뒤 회견에 나선 두 나라 장관들은 다 같이 ‘철통같은 한-미 동맹’의 의미를 강조했지만 적잖은 부분에서 이견이 드러났다. 블링컨 장관은 한-미 동맹에 대해 “동북아, 인도·태평양 및 세계의 평화 안보 및 번영의 핵심축”이라는 입장을 다시 강조하며 “우린 동맹을 재확인할 뿐 아니라 더 발전시키기 위해 왔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두 핵심 관료가 첫 순방지로 한국을 택할 만큼 미국이 한-미 동맹을 중요시한다는 점을 일깨우며, ‘중국 견제’로 요약되는 미국의 외교정책에 더 적극적으로 협력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다만, 정 장관은 미국 등 4개국 안보 협력체인 쿼드에 대해선 “직접적 논의가 없었다”고 확인했다.

초미의 관심사인 대북정책과 관련해 한국 정부는 2018년 6월12일 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에 기초해 조속히 북-미 대화를 시작하면 좋겠다는 뜻을 거듭 밝혀왔다. 미국의 두 장관은 “북핵 문제는 시급한 사안이며 양국 간 긴밀한 공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에는 공감하면서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유산인 ‘싱가포르 정상회담’에 대해선 방한 기간 내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블링컨 장관은 싱가포르 공동선언에 포함된 ‘한반도 비핵화’ 대신 ‘북한 비핵화’란 용어를 고수했다.

이에 반해 정 장관은 17·18일 이틀 연속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진전을 위해 계속 협력해 나갈 것”이라며 꼬박꼬박 ‘한반도 비핵화’란 용어를 사용했다. 결국 공동선언에 한반도 비핵화란 용어는 포함되지 않았다. 정부 당국자는 “한반도 비핵화라 하면 주한 미군기지와 한국에 들여오는 전략 자산도 확인해야 하니 (미국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은 또 “연합훈련·연습을 통해 모든 공동 위협에 맞서는 연합준비태세를 유지”한다고 선언하며, 트럼프 행정부 때 북-미 대화를 촉진하기 위해 연기 또는 축소했던 연합훈련을 원래대로 시행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 대신 강조한 것은 북한의 ‘인권 문제’와 북핵 문제 대응을 위한 ‘다자적 접근’이었다. 블링컨 장관은 17일은 물론 18일에도 “북 주민들이 압제적인 정권 아래서 인권유린을 당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과 대화를 시작하더라도 트럼프 행정부 때와 달리 인권을 문제 삼으며 고강도 압박을 할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블링컨 장관은 이어 북핵 문제 해결에 한·일 등 동맹국뿐 아니라 “중국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는 견해를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북-미 간 양자 협상이 추진되며 모습을 감췄던 ‘중국 역할론’을 재차 끄집어낸 것이다.

또 다른 갈등 지점은 중국 문제였다. 블링컨 장관은 17일 “우리는 세계에서 민주주의의 위험한 침식을 목격하고 있다”며 중국이 홍콩·대만·신장·티베트·남중국해 등에서 벌이고 있는 ‘강압적 태도’를 강도 높은 어조로 언급했고, 18일에도 “우리는 중국의 공격적이고 권위적인 행동이 인도·태평양 지역에 어떤 결과를 낳고 있는지 논의했다. 세계적인 민주주의 후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중국의 반민주주의에 대항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고 밝혔다. 정 장관은 18일 오후 <연합뉴스티브이(TV)>에 출연해 “미-중 간 하나를 택하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그런 접근법은 불가능하다. 미·중이 우리한테 그런 요구를 해 온 적 없다”고 말했다.

길윤형 김지은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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