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들어 나란히 지지율이 떨어진 문재인 대통령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코로나19 3차 대유행 등의 여파로 한-일 양국 모두에서 정부 지지율이 크게 떨어졌습니다. 오늘은 한-일 양국에서 동시에 발생한 ‘지지율 급락’ 현상이 2021년 1월 말 들어서는 조 바이든 행정부 이후 동아시아 정세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일본의 사정을 둘러봅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의 28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스가 요시히데 총리를 ‘지지한다’고 답한 이들의 비율은 전체 응답자의 42%를 기록해 지난달 56%보다 14%포인트나 급락한 것으로 확인됩니다. 지난 20일 공개된 <아사히신문>의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정권 지지율은 전달 56%에서 17%포인트나 떨어진 39%를 기록했습니다. 9월 중순 탄생해 이제 갓 100일이 넘은 스가 정권 입장에선 정권의 ’지속 가능성’을 우려해야 할 정도의 큰 위기에 직면하게 된 셈입니다.
스가 정권의 지지율이 떨어진 것은 코로나19 3차 대유행과 함께 국내적인 돌발 사건들이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집권 직후인 9~10월엔 일본 정부가 일본학술회의에 추천된 학자 가운데 6명을 임의로 배제한 ‘일본판 블랙리스트’ 사건이 발생했고, 지난달 하반기엔 현재 일본 정계를 벌집 쑤시듯 뒤집어 놓은 아베 신조 전 총리의 ‘벚꽃을 보는 모임’(桜を見る会) 사태가 터져 나왔습니다.
‘벚꽃을 보는 모임’이란 아베 전 총리가 매년 4월께 여러 인사들을 도쿄 신주쿠에 있는 도심 공원인 ‘신주쿠 교엔’이란 곳에 초대해 개최했던 ‘하나미’(봄철에 일본인들이 즐기는 벚꽃을 보는 소풍)를 일컫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게 왜 문제냐구요? 아베 총리가 자신의 지역구인 야마구치현 사람들을 도쿄에서 열리는 이 행사에 임의로 초대해 전야제(전날 밤 파티) 대금 일부를 지불했다는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입니다. 도쿄지검 특수부는 아베 총리가 퇴임한 직후인 지난 9월 말부터 이 의혹에 대한 본격 수사를 시작해 2016년부터 2019년까지 4년 동안 아베 전 총리 쪽에서 전날 파티비용 중 일부인 708만엔(약 7500만원)을 보전해줬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보전액과 참가자수를 토대로 단순 계산을 하면, 아베 총리 쪽에서 지역구민인 유권자들에게 1인당 3000엔꼴의 향응을 제공한 셈입니다. 도쿄지검 특수부는 지난 24일 아베 전 총리의 비서를 약식 기소하면서도, 당사자인 아베 전 총리는 “올해 11월이 될 때까지 이 사실을 몰랐다”며 불기소 처분했습니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24일 도쿄에서 ’벚꽃을 보는 모임’과 관련해 도쿄지검 특수부로부터 불기소 처분을 받은 뒤 임한 기자회견에서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이로서 아베 전 총리는 형사처벌을 면하게 됐지만, 정치적 책임까지 피할 순 없었습니다. 아베 전 총리가 그동안 국회 답변 등에서 야당이 제기한 벚꽃을 보는 모임과 관련된 의혹 제기에 100여 차례 넘게 거짓 답변을 했다는 사실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만천하에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크리스마스이기도 했던 지난 25일 일본 국회 운영위원회에 불려 나온 아베 전 총리는 ‘거짓 답변’ 문제에 대해 “모든 국회의원에게 깊이 마음으로부터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는 ‘아베 정권의 계승’을 내세운 스가 정권에게도 큰 악재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베 정권의 ‘2인자’인 관방장관이었던 스가 총리 역시 여러 기자회견에서 아베 총리처럼 거짓 답변을 쏟아낸 꼴이 됐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보여주듯 <니혼게이자이신문> 설문에서 일본인 74%는 아베 전 총리의 설명에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제 한국의 상황을 볼까요? 여론조사 기관인 리얼미터의 26일 자료를 보면,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하 긍정적 평가는 전주보다 소폭 떨어진 36.7%를 기록했습니다. 지난 11월 4주차에 43.8%를 기록한 뒤 벌써 4주 연속 40%대를 회복하지 못하는 흐름 입니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진 1차 원인은 물론 코로나19 3차 대유행입니다. 여기에 부동산 가격 폭등, 추-윤 갈등, 백신 늑장 확보 등 악재가 더해지며, 지지율 역시 이른바 ‘콘크리트’가 그대로 노출되는 40% 아래로 가라 앉은 모습입니다.
한-일 양국 모두에서 정부의 지지율이 크게 떨어진 이 현상은 2021년 이후 ‘한반도 정세’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요?
문재인 정부는 내년 1월 말 바이든 행정부 출범에 맞춰 2기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재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쓸 것으로 보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일본의 협력’입니다. 지난 2018년 1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신년사와 2월 평창겨울올림픽을 계기로 시작된 1기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2019년 2월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의 ‘결렬’로 멈춰서고 말았습니다. 지난 3년 간의 동안의 과정을 복기하며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미-일 동맹은 한-미 동맹보다 ‘상위 동맹’이며, 그로 인해 일본에겐 동아시아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현상 변경’을 가로 막을 수 있는 강력한 ‘비토 파워’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건조한 정상회담을 통해 북-미 중재에 나섰다면, 아베 전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을 ‘도널드’라고 친근하게 부르며 수시로 ‘골프 라운딩’을 즐겼습니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안이한 양보’ 하지 않도록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이 같은 뼈 아픈 사실은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 <그 일이 있었던 방>을 통해 세밀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결국, 지난 3년의 교훈은 ‘재팬 패싱’을 전제로 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가동은 쉽지 않으며, 일본의 협력은 필수불가결하다는 사실입니다.
정부 또한 이를 인식했기 때문일까요.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월 스가 정권이 탄생한 뒤 적극적인 대일 유화 메시지를 쏟아냈습니다. 문 대통령은 9월24일 이뤄진 스가 총리와 첫 통화에서 “양국 정부와 모든 당사자들이 수용할 수 있는 최적의 해법을 함께 찾아나가길 바란다”고 호소했습니다. 또, 지난 11월엔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방일(8~11일), 한-일 차관 전화회담(12일), 김진표 한일의원연맹 회장 방일(12~14일) 등을 통해 내년 도쿄올림픽 성공 개최를 매개로 한-일 협력의 계기를 찾아야 한다는 의견을 일본에 전했습니다.
한국은 내년 바이든 행정부 집권에 발맞춰 2차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재개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한-일 관계를 회복하려 했습니다. 이를 위해 올해 한국이 의장국인 한-중-일 3국 정상회의를 개최하고, 그 자리에 참석한 스가 총리와 한-일 정상회담을 개최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일본의 입장은 강경하기 그지없었습니다. 현재 한-일 관계 악화의 원인이 되어 있는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과 관련해 “관계 개선의 계기를 한국 쪽이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입니다. 지난 11월 한국 쪽의 움직임을 전하는 일본 외무성의 자료를 보면, “옛 조선반도 출신 노동자 문제 등에 의해 매우 엄혹한 상황에 있는 일한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기 위한 계기를 한국 쪽에서 만들어야 한다고 다시 요구했다”는 같은 표현이 세번 연속 등장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11월26일 왕이 중국 외교부장 앞에서 한-중-일 3개국 정상회의를 개최하고 싶다는 마음을 다시 한번 명확히 밝혔다.
돌이켜 보면, 2020년 12월은 2기 한반도 프로세스의 가동이라는 ‘대의명분’을 위해 한-일 관계 회복을 위해 한국이 ‘획기적 결단’을 내릴 시점이었을지 모릅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자신을 예방한 왕이 중국 외교부장에게 “코로나 위기와 유동적인 지역·국제 정세 속에서 한-중-일 3국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우리 정부는 제9차 한중일 정상회의 의장국으로서 정상회의의 조속한 개최를 위해 함께 노력해 나가기를 희망한다. 한국은 도쿄·베이징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적극 협력할 것이다. (이 두 행사가) 동북아 평화와 안정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추-윤 갈등과 백신 늑장 확보 논란으로 지지율이 급락한 문재인 정부는 끝내 결단을 내리지 못합니다. 대통령 지지율이 30%대로 급락한 상황에서 지지율에 다시 한번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대일 타협’을 시도할 정치적 환경이 못 된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의 상황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이 정말로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진지한 타협안을 제시했다면, 임기 1년짜리 ‘단기 정권’으로 출범한 스가 총리 역시 내년 7월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일본인 납치 문제 등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서라도 적극 호응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려면 스가 총리 역시 ‘단기적 지지율’ 하락이란 출혈을 감수해야 합니다. 한국에선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12.28 합의에 대해 한국의 ‘일방적 양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아베 전 총리 입장에서도 극우·보수 세력의 기대를 저버리는 상당한 정치적 모험을 감행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지지율 급락으로 인해 일본에서도 한국과 과감히 관계 개선에 나설만한 정치적 여유를 찾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스가 정권의 등장과 도쿄 평화 올림픽을 계기로 한-일 관계를 회복하려는 정부의 시도는 일단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내년 1월20일 동맹 간 협조를 중시하는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면, 한-일 양국에게 조속한 관계 개선을 요구할 것으로 보입니다. 전임 오바마 행정부 때도 그랬지만 트럼프 행정부 역시 한-일 역사 갈등에서 결코 한국의 손을 들어주지 않습니다. 바이든 행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이 일본을 2기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끌어들이기 위해 ‘선제적 결단’을 내리지 않는다면, 앞으로 사태 전개는 우리에게 유리하지 않을 것입니다. 멍하니 가만히 있다간 오바마 행정부 때처럼 수세에 몰려 12·28합의를 받아들이고 사드 배치를 수용하는 상황에 몰릴지도 모릅니다. 2기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가동을 절실히 원하는 것은 일본이 아닌 한국입니다.
다행이도 아직 때는 늦지 않았습니다.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뒤 동아시아 전략의 뼈대를 잡아가는 내년 봄 정도가 마지막 기회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결단할 수 있을까요?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