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파주시 이장단연합회, 임진강 상인연합회, 겨레하나 파주지회, 민통선 마을인 통일촌·해마루촌 이장 등이 지난 6월22일 오후 파주시 오두산전망대 들머리 장준하 공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북 단체들의 전단 살포 중단과 정부의 살포자 엄벌을 촉구하고 있다. 파주/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미 일각에서 지난 1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아직 일부 전문가들과 인권단체가 ‘원칙적 문제 제기’를 하는 수준이지만, 인권을 중시하는 조 바이든 행정부가 이 문제에 관심을 보일 경우 향후 한-미 관계에 새로운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미국의 소리>(VOA)는 16일 “한국 집권 여당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킨 이른바 ‘대북전단살포 금지법’이 한-미 동맹이 공유하는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는 취지의 미국 인사들의 우려 목소리를 소개했다. 기사를 보면, 시나 그리튼스 텍사스대 정치학 교수(전략국제문제연구소 한국 담당 객원연구원)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이번 조처를 통해 한국이 어렵게 이룬, 최대의 글로벌한 자산인 민주주의가 얼마나 훼손되는지 문재인 정부가 제대로 이해하는지 모르겠다. 실제 이 조처는 바이든 행정부와 가치에 기반을 둔 보다 광범위한 파트너십을 추구하는 한국 정부의 역량을 손상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데이비드 맥스웰 미국민주주의수호재단 선임연구원 역시 대북전단살포 금지법이 “미국과 한국이 공유하는 자유 가치와,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 경제, 법치주의, 인권의 가치에 위배된다”면서 “바이든 차기 행정부가 직면한 한국 내 첫 위기는 한미 간 가치와 인권의 차이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마크 피츠패트릭 전 국무부 비확산 담당 부차관보는 대북전단살포 금지법이 “부도덕”하다고 비판한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 수석의 <워싱턴포스트> 기사 내 언급을 트위터를 통해 인용하며 “동의한다”고 밝혔다.
“자유민주주의 핵심 가치 위배” 목소리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둔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재단(HRF)도 앞선 14일 성명을 내어 한국 정부를 비판했다. 이 단체의 토르 할보르센 대표는 법안이 “북한 주민들에게 대재앙에 맞먹는 비극”이라고 전제하면서, “탈북자들은 인터넷, 외부 우편, 검열되지 않은 정보에 접근할 수 없는 2500만 북한 주민들의 목소리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표현의 자유에 따른 민주적인 권리를 행사해 북한 주민들이 기본적인 권리를 되찾도록 돕고 있다. 한국 정부가 이들을 차별하고 2등 시민으로 대우하는 것은 부끄러운 시도”라고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미 정치권에선 크리스 스미스 하원의원(공화당)이 11일 개인 성명에서 ‘심각한 우려’를 밝혔고, 마이클 맥카울 하원 외교위원회 공화당 간사가 14일 <미국의 소리>에 보낸 성명에서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이다. 미국 의회에서는 초당적 다수가 폐쇄된 독재 정권 아래 있는 북한에 외부 정보를 제공하려는 노력을 오랫동안 지지해왔다”는 견해를 밝힌 상태다. 하지만, 트위터를 통해 홍콩 문제, 파리 기후협약 등 주요 외교 현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해 온 바이든 차기 행정부의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지명자나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은 별다른 의견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한 미국 내 비판은 북한 인권 문제를 오로지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미국의 전통적인 입장을 반영한다. 스미스 의원은 11일 성명에서 유엔(UN) 모든 사람이 표현의 자유를 가진다는 ‘시민적·정치적 권리규약’(ICCPR) 19조를 언급하며 “왜 문재인 대통령은 이 시민적·정치적 권리를 보호해야 하는 의무를 방기하느냐”고 물었다. 맥락은 좀 다르지만 지난 2년여 동안 대북 협상을 담당해 온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도 10일 아산정책연구원 연설에서 “(6·12) 싱가포르(합의의) 각 요소에 대한 진전이 이뤄지면 인권 문제 등 가장 민감한 문제도 다루길 바라왔다”면서 북-미 간 주요 인권 현안인 오토 웜비어 사망 문제, 북-일 간 인권 현안인 일본인 납치자 문제 등에 대해 길게 언급했다. 바이든 당선자 역시 지난 10월 말 이뤄진 미 대선 토론회에서 자국민 인권을 탄압하는 독재자라는 의미를 담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불량배’(thug)라고 불렀다.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해 “청와대가 옳은 일을 했다”는 견해를 밝힌 해리 카지아니스 미 국익연구소 한국담당 국장의 트위터
“전단 때문에 전쟁할 것인가?” 반론도
하지만, 실제 북한과 대치 중인 한국 정부의 입장은 더 복잡할 수밖에 없다. 남북 관계의 안정적 관리를 위해 북한이 극단적으로 반감을 드러내 온 대북전단 문제를 매듭지어야 했을 뿐 아니라 접경지역 주민들의 안전 문제도 고려해야 했기 때문이다. 미국에 북한 인권 현안이 양보해선 안 될 ‘원칙의 문제’라면, 한국엔 때로는 현실적 대응이 필요한 ‘외교 현안’인 셈이다. 한발 더 나아가 남북은 앞선 2018년 4·27 판문점선언 2조 1항을 통해 “군사분계선 일대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행위 중지, 그 수단 철폐”를 약속한 바 있다.
미국에서도 한국 정부의 이런 처지를 이해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예로 해리 카지아니스 미 국익연구소 한국담당 국장은 15일 자신의 트위터에 “청와대가 대북전단 금지에 대해 옳은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북한 수뇌부가 자신들에 대한 압박에 더 큰 압박으로 반응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전단 때문에 전쟁할 가치가 있냐”는 견해를 밝혔다.
길윤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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