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아키바 다케오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과 취임 후 첫 전화회담을 했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한-일 의원연맹단 방일에 이어 도쿄 올림픽 성공 개최를 매개로 얼어붙은 한-일 관계를 개선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외교부는 12일 한-일 차관 전화회담 이후 자료를 내어 한-일 양국 차관이 “상호 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코로나19 확산 지속과 도쿄 올림픽, 한반도 상황 등 주요 현안들과 관련하여 한일 정부가 긴밀히 소통하고 대화할 필요성에 인식을 같이 했다”고 밝혔다.
이 자료에서 눈에 띄는 것은 최 차관이 아직 개최까지 상당한 시간이 남은 내년 도쿄 올림픽에 대해 “성공 개최를 기원했고, 아키바 차관은 이에 사의를 표현했다”는 구절이 등장하는 점이다.
최근, 한국에선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활용해 한-일 관계를 개선하고, 이 여세를 몰아 일본을 포용하는 형태의 2차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그동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조건 없이 정상회담을 하고 싶다”고 말해온 일본도 이에 대해 원칙적으로 환영하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스가 요시히데 총리는 지난 5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올림픽에 맞춰 도쿄를 방문하면 만날 것이냐는 질문에 “가정의 질문에 답하는 것은 삼가겠지만,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이 올림픽을 계기로 그동안 국정 최우선 과제로 내세워 온 일본인 ‘납치 문제’에서 성과를 낼 수 있다면, 스가 총리는 아베 신조 전 총리도 달성하지 못한 큰 외교성과를 얻게 된다. 외교부 당국자는 “최 차관이 올림픽 성공 개최를 위해 한-일 협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했고, 아키바 차관이 공감했다”고 말했다.
일본은 코로나19로 1년 연기된 도쿄 올림픽의 성공 개최를 위해 고심하는 중이다. 2013년 이 올림픽을 유치했을 때는 후쿠시마의 부흥을 상징하는 ‘부흥 올림픽’으로 자리매김했지만, 한-일이 협력해 내년 상반기 상황을 잘 관리하면 2018년 2월 평창겨울올림픽과 같은 ‘평화 올림픽’이 될 수도 있다. 스가 총리의 언급대로 아직 가정에 불과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이 올림픽 개막식 참석을 위해 도쿄를 방문한다면, 상황에 따라 남·북·미·일 정상이 한자리에 모이는 거대한 외교 이벤트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한-일 관계가 꼬인 상황에서 북한마저 2017년처럼 일본 열도를 통과하는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도발에 나선다면 올림픽의 성공 개최를 장담할 수 없게 된다. 이런 상황을 막으려면 올해 한국에서 예정된 한-중-일 정상회의를 통해 내년 이후 정세 안정을 위한 3개국 정상들의 허심탄회한 의견교환이 무엇보다 절실할 것으로 보인다.
길윤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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