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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외교

요미우리 “한국 정부, 미 대선 전 ‘김여정 방미’ 중개 시도했다”

등록 2020-10-07 11:50수정 2020-10-07 12:44

10월 서프라이즈를 위한 한국 정부 노력 뒤돌아보기

북-미 대화 재개 위해 고심하던 한국 정부
3차 북-미 정상회담, 김여정 방미 등 중개 시도
문 대통령 ‘종전선언’ 등 ‘창의적 해법’ 고심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구체적 성과 거두지 못해

폼페이오 방한 취소는 ‘불행한 사고’라기보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순위 드러내는 판단인듯
2018년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공동성명에 서명하고 있다. 두 정상 옆에 배석한 김여정 북 노동당 제1부부장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눈길을 끈다.
2018년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공동성명에 서명하고 있다. 두 정상 옆에 배석한 김여정 북 노동당 제1부부장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눈길을 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갑작스런 ‘방한 취소’로 사실상 물 건너간 북-미 간 ‘10월 서프라이즈’를 위해 한국 정부가 기울인 외교적 노력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정부는 문재인 대통령이 9월 말 유엔(UN) 총회 연설을 통해 화두를 던진 ‘종전선언’과 김여정 조선노동당 제1부부장의 ‘방미’를 매개로 교착 상태에 빠진 북-미 대화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갑작스런 코로나19 확진 판정과 뒤이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한 취소로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요미우리신문>은 7일 한-미-일 협의와 관련한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문재인 정부가 11월 미 대선을 앞두고 김여정 부부장의 미국 방문을 중개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었다”고 전했다. 신문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교착 상태에 빠진 북-미 핵협상을 재가동시키기 위해 미 대선 전에 3차 북-미 회담 실시를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정부는 이 과정에서 11월3일로 예정된 대선 레이스에서 “고전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외교에서 점수를 따게 한다면 북한에게도 (향후)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점을 들어 대북 설득에 나섰다. 실제, 문 대통령은 6월30일 청와대에서 연 유럽연합(EU)의 샤를 미셸 상임의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과의 화상 정상회담에서 “그간 어렵게 이룬 남북관계 진전과 성과를 다시 뒤로 돌릴 수 없다는 것이 나의 확고한 의지”라며 “한국이 바라기로는 미국 대선(오는 11월) 이전에 북-미 간 대화 노력을 한번 더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은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2월 말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 2차 정상회담 실패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권위가 크게 실추된 상태에서 성공이 보장되지 않은 ‘제2의 모험’에 나서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떠오른 것이 김정은 위원장의 친동생이자 분신인 김여정 제1부부장의 방미 카드였다. 김여정 제1부부장이 미국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만난다면, 교착 상태에 빠진 협상 재개에 활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실제, 김여정 제1부부장은 지난 7월10일 내놓은 담화에서 “앞으로 독립절 기념행사를 수록한 디브이디(DVD)를 개인적으로 꼭 얻으려 한다는데 대하여 위원장 동지로부터 허락을 받았다. 위원장 동지는 트럼프 대통령의 사업에서 반드시 좋은 성과가 있기를 기원한다는 자신의 인사를 전하라고 하시였다”는 알쏭달쏭한 말을 통해 앞으로 대미 접촉 창구는 자신이 될 것임을 강하게 암시했었다.

남은 문제는 북한을 끌어내기 위한 ‘회담의 의제’였다. 신문은 “9월 이후 북-미 간 고위 관료 등의 교섭을 통해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실제, 이 시기 한국에선 최종건 외교부 제1차관(지난달 9~10일), 김현종 국가안보실 제2차장(지난달 16~20일),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지난달 27~30일) 등 주요 인사들의 미국 방문이 이어졌다. 한국이 짜낸 아이디어는 종전 선언이었다. 이는 북한이 대화 재개를 위해 새로 내건 주장과도 합치되는 흥미로운 카드였다. 김여정 제1부부장은 앞선 담화에서 “’비핵화 조치 대 제재 해제’라는 지난 기간 조-미 협상의 기본주제가 이제는 ‘적대시 철회 대 조미협상 재개’의 틀로 고쳐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김여정 제1부부장이 밝힌 ‘적대시 철회’란 것은 결국 북-미 간의 대립 상황을 끝내야 한다는 것이고 이는 사실상 종전 선언과 같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었다.

한국 정부의 이런 아이디어에 대해 북-미 양쪽 역시 상당한 관심을 기울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쪽 협상 대표인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은 지난달 28일 워싱턴에서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만난 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구축에 관한 ‘창의적 아이디어들’을 논의했다며 ‘북한의 동참’을 호소한 바 있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구축에 대한 ‘창의적 아이디어’란 사실상 종전 선언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종전 선언에 대해선 ‘초강경파’인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고려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얼마나 얘기가 잘 풀렸는지 이도훈 본부장은 이날 면담에 대해 (외교관 답지 않은 태도)로 “최근의 대화 중에 제일 좋았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북한의 입장도 마찬가지였다. 이를 보여주는 흔들리지 않는 증거가 있다. 남북 정상은 지난 9월 아래와 같은 내용의 호의적 내용의 친서를 주고받았다.

“부디 국무위원장께서 뜻하시는 대로 하루빨리 북녘 동포들의 모든 어려움이 극복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 국무위원장님과 가족분들께서 항상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 9월 8일 문재인 대통령)

“오랜만에 나에게 와닿은 대통령의 친서를 읽으며 글줄마다에 넘치는 진심어린 위로에 깊은 동포애를 느꼈습니다 . 보내주신 따뜻한 마음 감사히 받겠습니다 .”(9월12일 김정은 위원장)

불과 석달 전 북한이 개성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등 남북 관계를 벼랑 끝까지 몰고갔던 상황을 떠올려 볼 때 ‘기이하게’까지 여겨지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남북 간에 북-미 대화 재개를 위해 상당히 의미 있는 물밑 교섭이 이뤄졌음을 드러내는 흔들림 없는 증거로 해석할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파격 행보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난달 22일 발생한 한국 공무원 피살 사건에 대해 사흘 뒤인 25일 “남녘 동포들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더해 준 데 대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이례적인 표현을 써가며 사과했다. 이어 지난 2일엔 두달 동안 공식석상에서 자리를 감췄던 ‘대미·대남 접촉 창구’인 김여정 제1부부장을 김정은 위원장의 수해 복구 현장 방문길에 동행시켰다. 그리고 이튿날인 3일엔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내는 ‘위문전문’을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공개하는 등 대화 재개 움직임에 호응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김 위원장은 이 위로전문에서 “나는 당신과 영부인이 코로나비루스(바이러스) 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았다는 뜻밖의 소식에 접하였습니다”라며 “나는 당신과 당신의 가족에게 위문을 표합니다. 나는 당신과 영부인이 하루빨리 완쾌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라고 말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한이 실행됐더라면, 모두가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했던 극적인 북-미 접촉이 가능할 수도 있던 상황이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방한은 취소했지만, 6일 열린 중국 포위를 위한 안보 협의체인 ‘쿼드’ 외교장관 회의엔 참석했다. 이는 대선을 앞둔 미국의 정책 우선순위가 어디에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폼페이오 장관 트위터 갈무리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방한은 취소했지만, 6일 열린 중국 포위를 위한 안보 협의체인 ‘쿼드’ 외교장관 회의엔 참석했다. 이는 대선을 앞둔 미국의 정책 우선순위가 어디에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폼페이오 장관 트위터 갈무리

그러나 지난 2일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19 확진 판정이 모든 계획을 흔들고 말았다. 미 국무부는 확진 사실이 알려진 2일까지만 해도 순방을 강행한다는 계획이었지만, 4일 방한 취소 사실을 공개했다. 외교부는 “우리 정부는 불가피한 사정으로 폼페이오 장관의 방한이 연기된 점에 대해 아쉽게 생각한다”고 평했다. ‘아쉽게 생각한다’는 표헌은 일반적인 외교 문법에는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다. 한국 정부가 이번 결정에 얼마나 낙담했는지 절절히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폼페이오 장관의 방한 무산이 ‘오로지’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19 확진 판정 때문이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대통령의 코로나19 확진 판정이란 엄중한 상황에서도 ‘중국 포위’를 위해 도쿄에서 열린 미국·일본·오스트레일리아·인도 등 4개국의 안보협력 모임인 쿼드(Quad) 외교장관 회의 참석은 강행했다. 이는 대선을 앞둔 트럼프 행정부의 관심이 김빠진 맥주 신세가 되어버린 ‘북-미 대화’보다는 미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중국 봉쇄’에 기울어져 있음을 보여준다.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 7월 말 닉슨 기념도서관에서 진행한 대 중국 연설에서 중국 공산당에 맞서는 ‘자유주의 국가의 연대’를 제창한 뒤 연일 중국에 날 선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지난 9월 말 유엔 총회 연설에서 중국에 대한 맹공을 퍼부었을 뿐 북한에 대한 특별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폼페이오 장관의 방한 중지 결정은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 확진이 가져온 ‘우연적 사고’라기보다, 미국의 대아시아 정책 우선순위를 보여주는 ‘냉정한 정책 판단의 결과’로 해석하는 게 더 온당한 이해라 할 수 있다. 애초, 냉엄한 국제정치의 세계에 서프라이즈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8년 10월 일본 연설에서 강조했듯 기적은 기적처럼 오지 않고, 안타깝지만 서프라이즈 역시 서프라이즈처럼 오지 않는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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