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한-미 양국이 외교차관 전략대화를 통해 한-미 동맹의 ‘역할 확대’에 대해 심층적인 논의를 했다고 밝혔다. 최근 미-중 갈등의 핵심이 되어 있는 홍콩 사태에 대한 대응에서 한국이 더 큰 역할을 맡아달라는 주문이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조세영 외교부 제1차관은 8일 스티븐 비건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와 제8차 외교차관 전략대화를 마무리 한 뒤 기자들과 만나 “한-미 동맹이 6·25전쟁 이후 지난 70년 간 한반도 및 동북아 평화와 안전에 ‘핵심 축’으로 역할을 해오며 끊임없이 진화·발전했다는 점을 평가했다. 또 다양한 분야에서 글로벌 파트너십으로 확장되고 있는 한-미 동맹의 미래 발전방안에 대해 심도 있는 의견 교환을 했다”고 밝혔다.

조 제1차관은 이어 현재 한-미 간 최대 현안으로 남아 있는 방위비 분담금 협정에 대해선 “조속한 시일 내에 상호 수용가능한 합의를 도출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해 가기로 했다”고 밝혔고, 일본이 ‘대북·대중관이 다르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는 한국의 ‘확대 주요 7개국 회의(G7)’ 참여에 대해서도 “긴밀히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고 전했다. 비건 부장관은 “미국은 지금까지와 같이 한국을 방어하고 한반도에 강한 관여를 해 갈 것”이라고 운을 뗀 뒤 “한-미 양국이 굉장히 많은 부분에서 함께 직면해 있는 많은 지역 이슈와 지역적인 도전에 대해 토론할 기회를 가졌다”고 말했다.

조 제1차관과 비건 부장관이 모호한 ‘외교적 언어’를 사용한 탓에 이날 외교차관 전략대화를 통해 한-미 간에 구체적으로 무엇을 논의했는지 명확히 파악되진 않는다. 하지만, 조 제1차관의 발언 중에 도드라지는 표현이 두개 눈에 띈다. 하나는 한-미 동맹이 ‘글로벌 파트너십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언급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의 신 남방 정책과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조화로운 협력을 계속해 모색해 나가기로 했다”는 부분이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글로벌 파트너십’이라는 용어는 미-일 양국이 지난 2015년 4월 미-일 가이드라인(방위협력지침) 개정을 통해 그동안의 ‘지역동맹’이었던 미-일 동맹의 역할과 범위를 전 세계로 확장(글로벌 동맹)하며 사용한 표현이다. 이후 미-일은 중국과 동남아 국가들 사이에 영토 분쟁이 진행 중인 남중국해 등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연합 군사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미국은 최근 중국이 홍콩판 국가보안법을 제정해 홍콩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크게 제안한 직후 항공모함 2척을 동원해 남중국해에서 군사훈련을 벌이는 등 중국에 대한 군사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이와 관련해 한국의 역할 확대를 요구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일단 “조화로운 협력을 계속 모색”하는 차원에서 이날 논의를 마무리한 것으로 짐작된다. 양국은 이날 발언에서 중국과 홍콩을 구체적으로 거론하진 않았다.

이날 회의엔 한국에선 조 1차관, 고윤주 북미국장, 박장호 북핵외교기획 부단장, 한우용 1차관 보좌관 박은경 북미1과장이 참석했고, 미국에선 알렉스 웡 대북특별부대표, 스티븐 비건 부장관,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 미미 왕 부장관 전략 보좌관 등이 나섰다. 양국 대표단은 코로나19 감염 우려 탓에 악수 대신 눈빛과 말인사로만 반가움을 표시했다. 한국 쪽의 당국자는”미국에서 악수를 못하게 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첫 해외출장이라서 매우 조심하고 있다. 코로나 걸리면 다시는 못 온다는 압박이 강한 것 같다"고 말했다.

비건 부장관이 가져온 ‘대북 메시지’는 이후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회견 이후 공개된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