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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외교

“진압 안하면 공산화” 미국에 5·18 실상 감춘 신군부

등록 2020-05-15 20:23수정 2020-05-16 14:19

미 국무부 비밀해제 문건 43건 제공
12·12 반란 뒤 전두환 만난 미 대사
“전, 의심할 여지 없이 제 잇속만 차려”

외교부 “광주 집단발포 명령자 등
진상규명 자료 추가 요청할 것”
분수대 앞 광장, 민주의 커뮤니타스. ⓒ나경택, 5.18기념재단 제공
분수대 앞 광장, 민주의 커뮤니타스. ⓒ나경택, 5.18기념재단 제공

12·12 군사반란과 5·17 비상계엄 확대 조치 당시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미국대사가 전두환·이희성 등 신군부 인사들과 나눈 대화 내용을 본국 정부에 보고한 기밀문서가 15일 공개됐다. 미 국무부가 우리 외교부에 최근 보내온 비밀해제 외교문서 43건 중 일부로, 1980년 5·18 민주화운동을 전후해 주한미국대사관이 본국 정부와 주고받은 전문이 대부분이다.

이날 공개된 문서에는 글라이스틴 대사가 신군부 반란 수괴인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을 어떻게 평가했는지도 잘 나타나 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전두환이 12·12 반란을 ‘쿠데타나 혁명이 아니라 박정희 대통령 암살 사건을 조사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강변한 데 대해 “길고 상세하며 의심할 여지 없이 자기 잇속만 차리는 설명을 했다”고 평가했다. 문서에는 전두환이 당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세력의 반격을 막기 위해 미국한테 도움을 요청한 사실도 적시됐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전문에 “전두환은 현재 상황이 표면적으로는 안정됐지만, 군부 내 다수의 정승화 지지자가 향후 몇주 동안 상황을 바로잡으려 행동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전두환과 동료들은 (반대 세력의) 군사적 반격을 저지하는 데 우리의 도움을 받고 싶어한다”고 적었다.

1980년 5월18일 글라이스틴 대사가 본국에 보낸 전문에는 이희성 당시 계엄사령관이 5·17 비상계엄 확대 조치의 불가피성을 설명하면서 “(시위 대학생을 진압하지 않으면) 한국이 베트남처럼 공산화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 대목도 눈에 띈다. 신군부가 당시 학생운동을 ‘반미 공산주의자 세력’으로 왜곡하면서 자신들의 권력 찬탈 행위를 정당화한 것이다.

비상계엄 확대 직후 최광수 청와대 비서실장과 만난 뒤에는 “(최규하) 대통령이 계엄령(해제)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을지 최 실장은 의문을 가지고 있다. 정부가 (시위) 대학생들한테 유화 전술을 쓰는 것에 군부가 강하게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이날 공개된 자료에는 1980년 12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의 재판이 끝날 때까지 미대사관과 본국 정부가 김대중 구명을 위해 주고받은 문서들도 포함됐다.

이날 공개된 자료는 1996년 미 국무부가 정보공개법에 따라 언론과 시민단체 등에 제공한 것이다. 당시엔 문서의 상당 부분이 가려진 상태였지만 이번에는 온전히 공개됐다. 외교부 당국자는 기자들에게 “정부는 5·18 전후 6개월의 맥락을 따지기 위해 12·12 사태부터 1년 동안의 자료를 (미 정부에) 요청했다”며 “진상규명위원회 등 단체와 협력해 미국이 자료를 더 공개할 수 있도록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번에 공개된 문서에는 전두환이 광주민주화운동 폭력 진압의 최종 책임자였음을 입증하는 내용은 없다. 5·18 진상규명 단체 등은 집단 발포 등 유혈 진압과 관련된 내용은 한미연합사 등 군사 채널을 통해 보고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노지원 기자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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