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워싱턴DC에서 진행된 한미 방위비 협상. 주미한국대사관 제공
미국이 방위비분담금으로 지난해보다 50% 남짓 늘어난 연간 13억달러(약 1조5910억원)를 요구했다. 애초 미국이 요구한 50억달러보다는 낮아졌지만, 우리 정부의 구상과는 여전히 거리가 먼 수치여서 당분간 한-미 간 줄다리기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7일(현지시각) 제11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협상과 관련해 “한국 정부에 13억달러 분담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이 금액이 “꽤 합리적”이며 “최종 제안”이라고 <연합뉴스>에 말했다. 그는 또 “우리는 너무 많이 내렸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무엇을 했나”라고 했다. 미국이 대폭 양보했다는 취지로, ‘13억달러’를 기정사실화하는 전략을 취한 것이다.
미국이 제시한 13억달러는 두 나라가 지난해 제10차 협정에서 합의한 1조389억원에서 약 50% 오른 수준이다. 이는 한-미 방위비 협상대표단이 지난 3월 말 잠정 합의했으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거부한 ‘13% 인상’(총액 약 1조1740억원)과도 차이가1 크다. 양국 모두 새 협정 기간을 5년으로 하는 데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인상 규모는 ‘13% 대 50%’로 간극이 크다. 미국은 더구나 첫해에 13억달러로 인상할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5년간 점진적으로 올려서 마지막 해에 13억달러가 되도록 하는 방안도 있지만, 올해 11월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당장의 성과물이 급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도 한국이 방위비분담금을 많이 내기로 합의했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그는 백악관에서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의 미군 철수를 검토 중이라는 언론 보도에 대한 기자 질문에 답변하다가 한국을 언급했다. 그는 “(사우디처럼) 매우 부유한 나라들을 우리가 공짜로 지켜주고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며 “한국은 매우 고맙게도 우리에게 상당한 돈을 내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받아들이기 힘든 액수”라는 입장이다. 한때 실무 대표단 사이에 합의했던 13% 증액안이 “가능한 최고 수준”이라는 것이다. 또 미국이 언론에 ‘13억달러를 요구했다’고 공개한 것에 대해서도 “언론을 통해 증액 요구를 압박하려는 것”이라며 마뜩잖아하는 분위기다. 정부 관계자는 “(지난 3월 말) 막판 최종 타결을 하지 못한 뒤 양국 사이에 전화, 이메일 등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은 하고 있지만 구체적이고 유의미한 논의가 이뤄진 것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물밑에선 정부도 미국의 강력한 증액 압박에 어떻게 대응할지 부심하고 있다. 정부 일각에선 한-미 방위비분담 협정이 5년 단위로 맺어지면, 애초 합의한 대로 13%를 증액하되 5년 동안 매년 큰 폭으로 올려주는 방식으로 미국의 증액 요구를 수용하는 방안이 검토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과거엔 협정 기간 동안 물가상승률만큼 방위비분담금을 증액했으나 이번엔 물가상승률 이상의 상당액을 늘린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5년 동안 인상 폭은 특별한 규정은 없다”며 “두 나라가 서로 원칙을 갖고 협상을 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밝혔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김소연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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