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7일부터 미국발 입국자에 대한 검역을 강화하기로 했다. 25일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 입국장에서 방역당국 관계자가 유럽발 항공기 승객들을 살피고 있다. 연합뉴스
스페인 유학생 김수연씨는 지난주 어렵게 비행기표를 구해 한국에 돌아왔다. 스페인의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외출금지령이 내려지고 학교가 문을 닫자 간단한 짐만 챙겨 급하게 들어왔다. 공항에서 건강 상태를 체크한 뒤 집에 돌아와 가족들과 최대한 거리를 두고 자가격리 중이다.
김씨는 “스페인에선 증상이 있어도 검사를 받기 어렵고, 코로나19 확진이 돼도 고령자와 위급한 환자만 입원할 수 있어 나머지는 집에 있을 수밖에 없다”며 “만일 스페인에서 확진자가 된다면 치료도 받을 수 없고 돌봐줄 가족도 없어 계속 불안했다”고 말했다. “한국이 훨씬 낫다”고 판단해 귀국을 결심한 것이다. 함께 사는 친구들이 기침을 할 때마다 불안감이 커지고, 아시아인들을 ‘코로나’로 부르는 혐오의 분위기도 힘들었다고 했다.
그는 “내가 있던 도시에 한국인 유학생도 많았는데, 대학들이 다 문을 닫았고 여행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귀국하려는 이들이 많지만 한국행 귀국 항공편은 300만~400만원을 줘도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전했다. 스페인은 24일 기준(현지시각) 코로나19 누적 사망자가 2991명, 확진자는 4만2058명으로 유럽에서 이탈리아 다음으로 심각한 상황이다.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확산되자 김씨처럼 국외에서 생활하던 유학생이나 교민들이 한국으로 귀국하는 사례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적극적인 검사, 투명한 정보 공개 등 ‘한국식 방역 모델’이 모범 사례로 부각되면서 좀더 안전한 한국으로 오겠다는 교민들이 많아진 영향으로 보인다.
외교부는 이달 31일, 4월1일(현지시각) 출발을 목표로 이탈리아에 임시 항공편 2대를 투입한다고 25일 밝혔다. 이번 항공편에는 밀라노와 인근 지역 430명, 로마와 인근 지역 151명 등 모두 581명의 이탈리아 교민이 탑승할 예정이다. 애초 이탈리아 한인회가 직접 항공사와 임시 항공편을 마련하려고 했으나 여러가지 어려움에 부딪혀 결국 정부가 나섰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이탈리아의 경우 확진자와 사망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데, 한국 국민들이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받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도 교민들이 대거 귀국하고 있다. 지난 23일 하루 기준으로 미국에서 한국으로 입국한 사람은 2418명인데 이 중 89%인 2144명이 한국 국적이었다. 미국 뉴욕발 인천 편도 티켓은 매진 행렬을 이어가는 중이다. 유럽도 비슷한 상황이다. 개별 귀국자가 늘어나고 있는 스페인과 독일의 경우 비행기표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지자 ‘집단 귀국’도 검토하고 있다. 스페인 한인회는 이달 30일까지 귀국 수요를 조사하기로 했다. 독일의 경우 한국과 독일을 왕복하는 항공 노선이 내달 일시적으로 끊길 예정이어서 교민들이 특별기 운항을 위한 수요 조사를 시작했다. 대한항공이 4월1일부터 8일 사이에 귀국을 희망하는 교민을 대상으로 한 특별기 운항을 검토하기 위해 재독한인총연합회에 수요 조사를 요청한 것이다.
필리핀, 몽골, 우즈베키스탄, 모로코, 볼리비아, 칠레 등에서도 한국으로 귀국을 희망하는 교민들이 늘어나면서 정부가 항공편 증편이나 비정기 운항, 다른 나라 임시 항공편 이용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지원하고 있다. 국외 교민들의 한국행으로 지난 16일 전체 입국자 중 절반을 차지하던 한국 국적자 비중이 23일엔 90%까지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김소연 박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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