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한국인노동조합 회원들이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 미국대사관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주한미군 한국인노동자에 대한 무급휴직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19일(현지시각) 끝난 한-미 방위비분담금 협상에서 한국 정부는 주한미군 노동자 무급휴직 사태를 막기 위해 우선 모든 임금을 지급하겠다며 인건비 부분을 먼저 타결할 것을 제안했지만, 미국의 공식 거부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17~1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개최된 11차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체결을 위한 7차 회의에서, 우리 쪽 대표인 정은보 방위비분담협상대사는 주한미군 노동자 무급휴직은 한미동맹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설득하면서, 협상 타결 때까지 한국 정부가 우선 주한미군 노동자들에게 모든 임금을 지급하겠다며 인건비 해결에 대한 양해각서(MOU) 체결을 제안했지만, 미국 협상단이 이 제안을 공식 거부했다고 외교 소식통들이 20일 전했다. 우리 쪽은 올해 편성된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 예산 가운데 한국인 노동자 인건비를 우선 지원하고, 전체 방위비 협정이 최종 합의되면 이에 포함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그러나, 미국은 인건비를 우선 타결할 경우 한국이 분담금 대폭 인상에 동의하도록 압박할 카드가 사라지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이미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들에게 4월1일부터 무급휴직을 실시하겠다고 통보한 상태여서, 사상 초유의 무급휴직 사태가 현실화될 우려가 커졌다.
정은보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 대사가 19일(현지시간) 제11차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체결을 위한 7차 회의를 마치고 미국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에서 귀국길에 오르고 있다.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정은보 방위비분담협상대사는 제임스 드하트 미 국무부 방위비분담협상대표와 애초 이틀 예정이었던 회의를 하루 더 연장해 사흘 동안 수시로 만나며 집중 협상을 벌였다. 주한미군 노동자 무급휴직은 막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정은보 대사는 로스앤젤레스를 떠나며 기자들에게 “방위비 총액 합의가 지연되면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 인건비 문제 해결을 위한 교환각서라도 먼저 체결하고, 필요하다면 두번에 걸쳐 국회 비준동의도 받겠다고 우리는 제안하고 있지만, 미측은 그것이 본 협상의 지연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명분을 갖고 공식적으로 반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무급휴직 예정일인 4월1일 이전에 미국과 다시 협상을 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4월1일 이전까지는 코로나19 등의 상황으로 대면 회의는 어렵다”며 “전화와 이메일 등을 통해 계속 협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애초 이번 방위비 협상은 1월 이전에 타결됐어야 하지만, 미국이 터무니 없는 인상 요구를 고집하고 있어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한국의 분담금 1조389억원의 5배 정도인 50억달러를 요구했다가 지금은 40억달러 안팎의 금액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 ‘10% 정도의 인상’을 넘어서기는 어렵다며 맞서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 국무부는 협상 뒤 “양국 간극은 큰 상태로 남아 있다”며 “한국측의 더 큰 집중과 유연성을 필요로 할 것”이라고 한국에 책임을 돌렸다고 <연합뉴스>는 보도했다. 미 국무부는 또 주한미군 한국인 근로자 9천여명 중 절반 가량이 무급휴직에 들어갈 것이라고 언급했다.
전국주한미군한국인노동조합은 20일 오후 서울 미국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미국은 9천명의 한국인 노동자뿐만 아니라 수만명의 주한미군과 가족들도 볼모로 협상을 하고 있다”고 미국의 태도를 비판했다.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과 미 국무부는 한미동맹의 정신을 무참히 짓밟고 한미동맹을 돈으로 사라고 강요하고 있다”며 “그 결과 방위비 분담금 협상은 전혀 타결될 수 없었고, 한국인 노동자 무급휴직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는 한미동맹의 정신을 훼손하는 역사의 오점이 될 것”이라면서 “이런 미국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 모두는 모두가 필수직이라는 강한 의무감을 가지고 끝까지 출근 투쟁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박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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