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코로나19 확산을 막겠다며 한국에서 들어오는 이들에 대한 격리 방침을 발표한 5일 김포국제공항 국제선 청사 모습이 썰렁하다. 연합뉴스
일본이 5일 코로나19를 이유로 한국에서 입국하는 사람을 14일 동안 사실상 격리하기로 결정하면서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한-일 관계 전반에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나라인 일본이 한국 정부와 사전에 충분한 협의도 없이 입국제한이라는 칼을 빼들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코로나19 확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던 일본이 이날 기습적으로 한국·중국에 입국제한 카드를 꺼낸 것은 도쿄올림픽 취소 가능성 등 위기에 몰린 아베 신조 총리의 정치적 ‘꼼수’라는 해석이 나온다. 일본에선 요코하마에 정박한 크루즈선 내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소극적 대처에 이어 ‘검사 난민’이라는 용어가 유행할 정도로 바이러스 검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등 이해하기 어려운 정부 조처에 대해 국내외 비판이 거셌는데, 이번 조치로 국면을 전환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특히 아베 총리가 ‘부흥 올림픽’이란 명분을 내세워 정치적 명운을 걸고 추진해온 도쿄올림픽이 연기 또는 취소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에 제대로 준비도 없이 졸속 결정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일본이 과연 한국과 중국 입국자를 2주간 격리시킬 지정시설을 확보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일본은 한국에도 큰 타격을 미칠 중요한 결정을 하면서도 사전에 한국 정부와 충분한 협의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날 오후 3시께 일본 언론을 통해 처음 보도가 나왔고, 외교부 당국자는 “일본 정부로부터 이와 관련해 공식 통보를 받은 일이 없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이날 밤 주한일본대사관의 소마 히로히사 총괄공사를 불러 정확한 설명을 요구했으며, 6일께 도미타 고지 일본대사를 초치해 엄중 항의할 예정이다.
갑작스러운 이번 조처로 한국인들의 피해가 작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일 갈등에 따른 불매운동으로 1년 사이 26%가 줄긴 했지만 지난해 한국인 558만4600명이 일본을 찾았다. 관광뿐 아니라 학업, 비즈니스, 친지 방문 등 인적 교류가 많아 이번 조처로 혼란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새 학기는 4월에 시작하는 만큼, 상당수 한국 유학생들은 한국에 머무르고 있을 가능성이 커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 일본 내 한국 유학생은 1만7천여명이다.
현재 코로나19로 한국발 입국을 제한하고 있는 나라는 99곳인데, 일본까지 동참하면서 한국의 부담도 커졌다. 그동안 한국에 대한 입국제한은 주로 방역 능력이 충분하지 않은 국가들을 중심으로 이뤄져왔으나, 의료·방역 능력을 갖춘 일본이 ‘2주 별도 시설 대기’를 결정하면서 한국을 상대로 입국제한 조처를 자제해왔던 다른 국가들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당장 한국에 대한 추가 입국 강화 조처 가능성을 언급한 미국이 어떻게 나올지 우리 정부의 고민은 한층 깊어졌다.
외교부는 그동안 강경화 장관이 각국 외교장관들에게 일일이 전화해 과도한 대응을 자제해줄 것을 요청하고 주한대사관 대상 설명회, 대사 초치 등 입국제한 확대를 막기 위해 외교력을 총동원해왔다. 이런 가운데 5일 오스트레일리아(호주)에 이어 일본까지 입국제한에 나서면서, 한국의 외교력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일본의 이번 결정은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와 일본의 대한국 수출규제 등 현안을 놓고 어렵게 논의를 이어오고 있는 한-일 관계 전반에도 또 다른 대형 악재다. 가뜩이나 일본에 대한 국민 정서가 좋지 않은데, 온 나라가 코로나로 고통을 겪는 중에 일본이 입국제한 결정을 내린 데 대해 반일 감정이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일본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국 관련 조처도 강화될지 주목된다. 일본 내 코로나19 확진자가 빠르게 늘고 검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지만, 한국은 후쿠시마 원전 주변(철수 권고)을 제외하곤 한국인의 일본 여행에 대해 사실상 아무런 제약을 두지 않고 있다. 코로나19가 확산함에 따라 지난달 29일 일본 전역에 ‘1단계(여행유의)’ 여행 경보만 발령한 상태다.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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