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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외교

이란 취재 다녀온 <한겨레> 기자의 코로나19 격리 검사기

등록 2020-02-28 14:58수정 2020-02-28 15:33

이란 정부, 22일까지 코로나 상황 제대로 안 밝혀
총선 투표소 유권자들 대부분 마스크 착용 안 해
23일부터 코로나 경고 수위 급격히 높아져
귀국 앞두고 계속 마스크 쓰고 비행기에서도 착용했지만 불안

인천공항 도착 뒤 검역 요원에게 상황 설명
의료진과 상의 거쳐 국립인천공항 검역소로 이송
1박2일 격리 대기 뒤 ‘음성’ 판정
제재로 약품 부족한 이란의 친구들 무사하길
23일부터 테헤란 시내 곳곳에 코로나19 감염 예방 포스터가 설치되고 시민들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고 있다.
23일부터 테헤란 시내 곳곳에 코로나19 감염 예방 포스터가 설치되고 시민들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고 있다.

지난 25일 오후 4시40분께, 이란 테헤란을 출발해 카타르 도하를 경유한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18일부터 일주일 정도 이란 테헤란에서 취재를 하고 귀국하는 길이었다. 21일 치러진 이란 총선을 중심으로, 미국의 경제 제재와 솔레이마니 사령관 암살 이후 긴장된 정세 속에서 살아가는 이란의 상황을 취재했는데, 22일께부터 이란의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해졌다. 혹시나 내가 주변 사람들을 감염시키면 어쩌지, 마음이 무거웠다. 비행 내내 잠깐의 식사 시간 외에는 한번도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비행기 안에서 여행 이력과 증상 여부, 연락처 등을 적는 검역서류를 작성했다. 목이 조금 따끔거리는 것 같아 ‘인후통’에 체크했다. 비행기에서 내리니, 사람 키보다 높은 기계로 체온을 체크하고 검역서류 내용을 확인했다. 기자는 검역 요원에게 그동안의 이란 취재 상황을 설명했다. 그가 우선 체온을 측정했다. 37.2도 정도로 우려할 만한 체온은 아니지만, 이란의 상황 때문에 검역 담당의사와 상의해 보겠다고 했다.

기자가 지난 18일 테헤란에 도착했을 때 이란 당국이 발표한 코로나19 확진 환자 숫자는 0이었다. 기자는 테헤란 시내의 대학들과 중동 최대 시장으로 불리는 ‘그랜드 바자르’ 등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많은 시민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아무도 마스크를 쓴 사람은 없었다. 19일 저녁 이란 정부는 종교 성지인 곰(Qom)에서 2명이 코로나19로 사망했다고 발표했지만, 정부나 국영언론의 초점은 온통 21일 총선이었다. 20일 기자는 마스크를 쓰고 거리로 나섰으나, 정치인들이나 시민들이 거의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있어, 인터뷰 때 마스크를 쓰기는 어려웠다. 21일 투표소 취재 때도 유권자들 가운데 마스크를 쓴 사람은 거의 없었다.

21일 테헤란 호메이디 에어스드 투표소, 마스크를 쓴 유권자는 보이지 않는다.
21일 테헤란 호메이디 에어스드 투표소, 마스크를 쓴 유권자는 보이지 않는다.

총선이 끝난 뒤 22일께부터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확진자와 사망자 발표가 급격하게 늘었다. 이란 친구들은 대규모 혁명기념일 집회가 열린 11일부터 코로나19가 번지기 시작했는데, 당국이 총선 이후에야 이를 공개했다고 했다. 쇼핑몰에서 손 소독제가 동났다. 23일 정부는 학교, 극장, 박물관 등의 문을 닫는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주변국가들이 이란발 코로나 확산을 우려하며, 이란과의 항공편을 잇따라 중단하고 국경을 폐쇄하고 있었다. 다행히 기자가 예약한 카타르항공은 아직 운항을 중단하지 않았다. 테헤란 시내 항공사 사무실로 가서 대기표를 받고 한참 기다린 끝에, 26일 밤 표를 24일로 앞당길 수 있었다.

24일 저녁 테헤란 이맘호메이니 국제공항에 도착해 탑승수속을 하러 가니, 끝없는 줄이 늘어서 있었다. 비행기는 만석이었다. 외국인들과 상류층 이란인들의 ‘피난 행렬’이었다. 이 때는 몰랐지만, 이 비행기가 사실상 이란에서 나오는 거의 마지막 항공편이었다. 25일 아랍에미리트와 카타르가 이란을 오가는 항공편을 중단했다. 러시아를 통해 나오는 항공편 일부가 아직 남아있다고 한다.

공항 검역 담당 요원에게 이런 상황을 설명하고, 이란 정부의 발표 전까지 마스크를 쓰지 않고 무방비로 대형 시장 등을 취재했다고 털어놨다. 담당자는 별도의 통로를 통해 기자를 공항 한켠에 마련된 검역 사무소로 데려다 주었다. 의료진이 체온을 다시 체크하고 독감 여부를 확인하는 검사를 했다. 그리고 나서, 증상으로만 판단하면 당장 바이러스 검사를 할 대상은 아니지만, 이란의 특별한 상황 때문에 바이러스 검사를 한 뒤 격리 상태에서 다음날 저녁 무렵까지 검사 결과를 기다릴 수 있다고 했다. 내가 모르는 상태에서 주변을 감염시킬 위험이나, 회사나 기자실 동료들의 상황을 생각해 검사를 부탁했다. 혹시라도 양성 판정이 나온다면 이란에서 기자를 만났던 이들에게도 소식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검사 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한국이 어느 나라보다도 적극적으로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검사와 예방 조처를 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인천국립검역소 2층에 1인씩 검사와 격리 관찰을 할 수 있는 방들이 마련돼 있다.
인천국립검역소 2층에 1인씩 검사와 격리 관찰을 할 수 있는 방들이 마련돼 있다.

검역사무실 안에는 기자를 포함해 2명이 검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감염 위험을 막기 위해 국립검역원 직원들이 한명씩 따로 차량에 태워 공항에서 5분 정도 떨어진 국립인천공항검역소 건물로 이송했다. 오후 7시50분께 4층 건물인 검역소 입구에 도착하니, 방호복과 마스크, 고글 등을 착용한 직원들이 나와 격리관찰실로 안내해줬다. 한명씩 격리돼 생활하는 관찰실에는 침대, 텔레비전, 책상, 욕실 등의 시설이 잘 갖춰져 있었다. 직원은 체온을 체크하는 법 등을 알려주고, 가래를 투명한 통에 뱉어서 검사용으로 제출하라고 했다. 오후 8시30분께 보호장비를 갖춘 의료진이 방으로 찾아와 검사를 시작했다. 먼저 뾰족한 도구를 코에 깊숙히 집어넣어 코에서 검체를 채취했는데, 10초 이상 도구를 집어 넣어 깊숙히 이곳저곳을 찌르는 과정이 상당히 고통스러웠다. 두번째는 입을 크게 벌려 ‘아’ 소리를 낸 상태에서 나무막대로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 검체를 채취했다. 검사는 보통 6시간 정도 걸리지만, 지금은 검사 대상이 너무 많아 다음날 오후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설명을 들었다.

검사가 끝난 뒤에는 조금 초조한 마음으로 대기하며, 정기적으로 체온을 측정해 전화로 알렸다. 26일 아침에는 36.2도, 점심에는 36.7도였다. 식사 시간마다 보호장비를 착용한 직원이 방에 도시락을 가져다 줬다.

국립인천공항검역소 격리 관찰실 내부
국립인천공항검역소 격리 관찰실 내부

기다리는 동안 인터넷에서 이란 상황을 체크했다. 26일까지 이란 정부가 발표한 확진자는 139명, 사망자는 19명, 사망률이 13% 정도로 다른 나라보다 너무 높은 것은 실제 환자수가 훨씬 많다는 의미라는 해석이 나온다.(27일현재 확진자 245명, 사망자 26명) 이란의 코로나19 확산은 미국의 제제를 버텨내기 위해 중국과 긴밀해진 관계, ‘진원지’인 곰이 이란은 물론 중동 전역에서 순례를 위해 찾아오는 종교 성지라는 특징, 그리고 이란 당국이 총선 투표율을 ‘정권 지지율’로 여기고, 투표 참여율이 낮아질까봐 총선 날까지 관련 상황을 제대로 경고하지 않았던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국립인천공항검역소 격리 관찰실 내부
국립인천공항검역소 격리 관찰실 내부

전날까지 기침을 하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이란의 코로나 상황이 거의 안정적”이라고 강조하는 기자회견을 했던 이란 복지부 차관도 25일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강경파 정치인 아마드 아미라바디 파라하니는 곰에서만 50명이 사망했다는 글을 24일 트위터에 올렸지만, 당국은 이를 부인했다. 심각한 문제는 미국의 초강경 경제 제재로 의료용품 등 인도적 교역까지 모두 차단돼 이란 의료시설에 코로나19에 대처할 약품과 검진 장비, 소독약, 보호장구 등이 매우 부족한 상황에서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상보다 조금 이른 26일 오후 2시55분께 방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결과가 나왔습니다. 음성입니다.” 얼마 뒤 담당 직원이 ‘미검출’이라고 쓰인 검사결과서를 전해준 뒤, 보건 당국이 매일 전화해 상태를 체크할 것이고, 스스로도 ‘능동감시’해 증상이 있으면 곧바로 연락하라는 주의 사항을 설명해 준 뒤, 새 마스크를 쓰고 퇴실하도록 안내했다. 검사 비용은 국가에서 부담한다고 했다.

국립인천공항검역소
국립인천공항검역소

이란의 지인들에게 소식을 전하니, “집으로 잘 돌아가서 다행이다” “건강하다니 기쁘다” “정부가 늑장 발표한 데 화가 나지만, 우린 잘 이겨낼 거야”라며 기뻐하고 격려해주는 따뜻한 사람들. 그곳의 친구들이 어려운 상황을 잘 이겨내길 바라며, 마음으로나마 그들과 함께 하고 싶다.

글·사진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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